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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왕국의 결혼652

복음을 전할때는 당당해야 하고, 어려움을 각오해야 존 테일러는 1837년에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근처에서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할 때, 모임이 끝난 후에, 지역 주민들이 존 테일러에게 타르를 칠하고 깃털을 붙이려 한다는 것을 교회 회원들이 알고, 존 테일러에게 모임을 취소하자고 충고했으나, 그는 더욱 단단한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하려 했다 존 테일러는 자유에 대한 미국의 전통과“생각하고, 말하고, 쓸 권리, 그들을 다스릴 사람들을 선택하고 독재자의 명령에 따르기보다는 속박에서 벗어나고, 자유를 향유하며, 자유를 그들의 후손에게 물려주거나, 그런 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걸고 맹세한 고귀한 조상들이 쟁취한 하나님을 예배할 권리”를 지니는 특권에 관해 간단히 말함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다음 이렇게 외쳤다. “‘저는 제.. 2020. 6. 23.
개종은 그의 친구와 친지들의 삶에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존 테일러는 침례를 받기 전에 팔리 피 프랫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 주변에 있는 농촌 지역을 방문했는데 농촌 지역 방문은 프랫 장로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프랫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테일러 씨의 지인이요 친구인 조셉 필딩 씨 가족을 방문했다.”(Autobiography of Parley P. Pratt [1985년], 128쪽) 조셉 필딩과 그의 누이인 메리와 머시는 곧 교회에 가입했다. 메리 필딩은 후에 하이럼 스미스의 부인이자, 제6대 교회 회장인 조셉 에프 스미스의 어머니, 그리고 제10대 교회 회장인 조셉 필딩 스미스의 할머니가 되었다. 비록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복음을 나누는 것은 그의 친구와 친지들의 삶에 축복을 가져다준다. 2020. 6. 23.
참된 교회가 있다면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존 테일러는 열 여섯 살에 성공회를 떠나 감리교회에 입교했다. 1830년에 제임스와 아그네스 테일러 가족은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으나 존 테일러는 가족의 업무를 정리하기 위해 영국에 남았다. 그는 1832년에 가족과 합류했다.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존 테일러는 레오노라 캐논을 만나 결혼했으며, 감리교도로서의 활동을 계속했다. 토론토에는 감리교도들과 함께 고대 교회의 특성을 좀 더 완전하게 알아내기 위해 신약전서를 연구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때가 되자, 그들은 모든 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들에게는 참된 교회를 회복할 권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836년 봄,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팔리 피 프랫 장로가 복음을 전하러 토론토로 갔다. 프랫 장로가 존 테일러를 처음 방.. 2020. 6. 23.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그는 성경을 읽고, 신학을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보냈다 존 테일러가 11살이 되었을 때, 그의 부친은 가족을 영국 웨스트몰랜드 헤일에 있는 작은 농장으로 이주시켰다. 존은 3년 동안 그곳에 있는 학교에 다녔으며 농사를 지었다. 14살이 되었을 때 그는 리버풀에 있는 나무통 제작자의 도제가 되었으며 나무통과 원형 술통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약 1년 후 그 사업이 실패하게 되자, 그는 컴퍼랜드 펜리스로 옮겨가 그곳에서 목재 선반공이 되기 위해 기술을 배웠다. 그 후 5년 동안 그는 목재 선반의 장인이 되었다. 존 테일러의 힘든 일과 초기 경험은 평생 동안 그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육체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 외에도, 그는 영적으로 성장했으며 회복된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었다. “유년기와 소년기에 그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 2020.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