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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결혼632

방황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께 방황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께 권고드립니다. 구주께서는 지속적인 사랑을 보이는 면에서도 완전한 모범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나아오라는 권유를 거절한 니파이인들에게 주님께서 위로하시며 하신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들이닥친 멸망 속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곧 내가 살려 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회개하고 마음의 뜻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면 암탉이 그 새끼를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기를 몇 번이라도 하리라.” 탕자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줍니다. 탕자가 가정을 잊지 않았듯이 여러분의 자녀도 그러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여러분의 사랑을 느끼고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올슨 에프 휘트니 장로님은 1929년 열린 연차.. 2020. 10. 8.
일부다처제 금지법 1852년 8월에 열린 특별 대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유타준주에 거주하는 많은 후기 성도들이 일부다처제라고도 하는 복수결혼, 즉 한 명의 남성이 한 명 이상의 여성과 결혼하는 관습을 시행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이 공식 발표는 널리 퍼진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해 줌으로써 수많은 미국인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정치인들은 그 시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후기 성도들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에 대한 권리를 옹호함으로써 복수결혼을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신문 기자들과 소설가들은 몰몬 여성들이 예속되어 있고 학대받고 있다는 과장된 이야기로 일부다처제에 반대하는 정서를 자극했다. 1856년에 공화당은 정당 강령에 “두 가지 야만적인 풍습의 잔재”, 즉 노예.. 2020. 10. 7.
일리노이주 퀸시 정착촌 일리노이주 퀸시는 몰몬 역사에서 후기 성도 난민들이 1839년에 미주리에서 쫓겨난 후 이주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퀸시 주민들이 몰몬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1834년과 1838년 사이에 미주리로 가던 후기 성도 무리가 그 마을을 지날 때였다. 1838~1839년 겨울에 미주리에서 쫓겨난 몰몬들 중 동쪽으로 향하던 수천 명의 성도들은 얼어붙은 미시시피강을 건너 퀸시에 일시적으로 정착했다. 날씨가 풀리자, 나룻배가 다시 다닐 때까지 카누 등의 작은 배를 타고 사람들이 강을 건너왔다. 몰몬 난민들이 도착하자, 퀸시의 인구는 1835년에 800명에서 1840년에는 2,300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퀸시 민주협회는 미주리 주민들이 성도들에게 했던 부당한 처사를 공공연히 비난하며 몰몬 난민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 2020. 10. 7.
은퇴라는 말은 행복의 계획에 들어 있지 않다 마차가 진창에 빠진 상황에서 아무리 감동적인 기도라 할지라도 단지 소리 높여 기도만 하는 사람보다는 밖으로 나가 마차를 미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력하고 싶어하는 것만으로는, 또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실천할 때 목표를 성취할 수 있으며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낼 수 없습니다. 목표를 마냥 뒤로 미룬다면 목표가 성취되는 것을 영영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고귀하고 성취감을 줄 수 있지만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위하여 너희 수고를 들이지 말라”라는 야곱의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가족과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희생하여 세상적인 부를 추구하고 대중의 인정을 얻는 데만 전념한다면 우리는 머지않.. 2020.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