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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결혼632

전쟁 같지 않은 유타 전쟁 유타 전쟁 유타준주의 후기 성도들은 1856년과 1857년에 영적 부흥, 또는 영적 “개혁”의 시기를 겪었는데, 이 시기에는 배도와 외부의 영향력에 맞서 강한 어조의 신랄한 설교가 행해졌다. 준주에서 생활하던 후기 성도가 아닌 주민들은 개혁의 열기가 고조되자 위협을 느끼고 대중지를 통해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연방에서 임명된 정부 관리들은 공공 정책을 두고 교회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였으며, 1857년에 입법회 소속의 후기 성도들은 미국의 새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에게 “부패한” 관리가 임명되는 것을 더는 참지 않겠다는 뜻을 알렸다. 이 메시지를 비롯해 여러 소문을 접한 뷰캐넌은 유타에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앨프리드 커밍이 브리검 영을 대신해 준주의 지사직에 오르도록 “.. 2020. 10. 5.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장애인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님들이 스스로‘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하고 자문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인간은 고대로부터 모든 고통은 어떤 면으로든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생겨났다는 개념을 배워 왔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교리입니다.고통은 무죄한 자에게도 찾아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는“필멸의 생애 동안 치유되지 않을지라도 앞으로 오는 세상에서 치유될 것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왕 나비가 못생긴 유충에서 나오듯이 영들도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만일 인간의 시각이 필멸의 생에 한정되어 있다면, 어떤 것들은 너무 불공평하고 또한 불변할 듯이 보이기 때문에 참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문제를 .. 2020. 10. 5.
목적을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초기 유타에서의 복수결혼과 가족 성경과 몰몬경에서는 하나님이 달리 공표하시는 특정 기간을 제외하면 한 남성이 한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표준이라고 가르친다. 조셉 스미스에게 주어진 계시에 따라 1840년대 초반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들 사이에서 복수결혼, 즉 한 남성이 둘 또는 그 이상의 여성과 결혼하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그 후로 반세기 넘게 일부 후기 성도들이 복수결혼을 했다. 복수결혼을 새로 시행하도록 승인하는 열쇠는 오직 교회 회장만이 갖고 있었다. 1890년에 주님은 교회 회장인 윌포드 우드럽에게 성명을 발표하도록 영감을 주셨는데, 그것을 계기로 결국 교회에서 복수결혼 시행이 종료되었다. 성명서로 알려진 이 발표문에서 윌포드 우드럽 회장은 복수결혼을 금지하는 미국 법률을 .. 2020. 10. 4.
유타에서의 복수결혼 조셉 스미스에게 주어진 계시에 따라, 1840년대 초 일리노이주 나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들 사이에서 복수결혼, 즉 한 남성이 둘 또는 그 이상의 여성들과 결혼하는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제도는 소수의 교회 회원들에게만 은밀하게 소개되었으며, 참여자들은 그 행위를 기밀로 지켜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성도들이 유타로 이주한 후, 교회 지도자들은 이 제도의 시행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으며, 1852년부터 1890년 사이에 후기 성도들은 공공연하게 복수결혼을 시행했다. 복수결혼을 공개적으로 가르쳤던 시기에 모든 후기 성도는 그 원리를 하나님이 주신 계시로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를 시행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남녀 성비 때문에 복수결혼이 보편적인 결혼 제.. 2020.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