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왕국의 결혼652 슬픔 뒤에는 기쁨이 따르는 법이지요 저는 어린아이의 장례식이 열리는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 위로의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랑스런 젊은 여성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녀는 애도를 표하고 할 수 있다면 위안을 주기 위해 장례식장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자신도 위로를 받기 위해 장례식장에 왔다고, 그녀의 첫째 아이가 최근에 사망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예쁘장한 작은 소녀를 팔에 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소녀의 미소 짓는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내밀고 아기의 어머니에게 “아이의 이름이 뭔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활기찬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이[Joy: 기쁨이라는 뜻]예요. 슬픔 뒤에는 기쁨이 따르는 법이지요.” 그녀는 제게 간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유일하.. 2020. 7. 25.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 참으로 직설적인 표현이 아닙니까!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혀는 한결같이 사악하다거나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은 “치명적인 독으로 가득” 하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하는 말의 일부가 파괴적이며, 심지어 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후기 성도에게 이것은 냉혹한 비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지한 간증을 나누고 열의에 찬 기도를 드리며 시온의 찬송가를 부르는 음성은 또한 질책하고 비판하고 곤란에 빠뜨리고 품위를 손상시키며 고통을 주고, 또 그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영을 파괴하는 음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라고 야고보는 탄식합니다. 그는 “내 형제 자매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향.. 2020. 7. 24. 침례 후에도 좀 더 깨끗해지기 위한 규정이 없다면 “우리에게 침례 후에도 좀 더 깨끗해지기 위한 규정이 없다면, 우리 각자는 영적인 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성신의 동반하심을 받을 수가 없고, 최후의 심판 때 ‘영원히 버림을 받[아야]’(니파이전서 10:21)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이따금 죄라는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해지도록 침례 받은 회원 각자를 위해 한 과정을 마련해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찬은 그러한 과정에 필수적입니다.”(“아론 신권과 성찬”, 리아호나, 1999년 1월호 댈린 에이치 옥스) 2020. 7. 24. 개선할 의사가 없고, 영의 인도하심에 따를 의도가 없다면 “저는 우리가 회개하여 개선되기를 바라고 신권의 제약을 받고 있지 않다면,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선할 의사가 없고, 영의 인도하심에 따를 의도가 없다면,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합당하게 성찬을 취하고 있는가? 아니면 개인의 회개와 개선을 위한 촉매제가 되는 성찬의 참 목적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찬의 아름다움”,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존 에이치 그로버그) 2020. 7. 24. 이전 1 ··· 73 74 75 76 77 78 79 ··· 1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