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왕국의 결혼652 이방인들에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간증합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 대해 브리검 영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셉 스미스는 선지자로 살다가 선지자로 죽었으며, 자신의 간증을 피로 인봉했습니다. 그는 살았을 때도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죽었을 때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결코 감히 조셉 스미스처럼 되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몰몬경을 출현케 한 사람은 아니지만, 몰몬경이 참됨을 간증합니다. 나는 사도로서 이 마지막 경륜의 시대의 이방인들에게, 그리고 또한 유대인들에게 간증합니다. 나의 느낌은 침례를 받았을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고 한 그 느낌 그대로입니다.”(Preston Nibley, Brigham Young, the Man and His Work [1936년]) 2020. 6. 20. 현 경륜의 시대 초기에 이러한 절차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교회 회장이 별세하면, 제일회장단은 해체되고 새로운 교회 회장이 부름 받고 지지받을 때까지 선임 사도의 인도 하에 십이사도 정원회가 교회를 관리한다. 현 경륜의 시대 초기에, 교회 회원들에게는 이러한 절차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사망한 후,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이었던 브리검 영은 1844년 8월 6일에 선교 사업을 하고 있던 미국 동부 지역에서 나부로 돌아왔다. 그는 나부로 돌아온 지 이틀 후에 조셉 스미스의 후계자를 택하는 모임을 감리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보좌였던 시드니 리그돈이 교회 회원들에게 자신을 교회 관리자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선지자 조셉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이 나부에 도착하기 전에,.. 2020. 6. 20. 선지자를 지지하기 위해 손을 들 때 스스로 어떤 의무를 지는가? 나중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 된 올슨 에프 휘트니는 1837년 커틀랜드 배도 기간 동안 브리검 영이 얼마나 선지자를 사랑하고 옹호했는지를 설명했다. “조셉 스미스가 용맹스럽고 두려움을 모르는 브리검 영을 곁에 두기로 한 것은 그에게나 몰몬이즘을 위해 잘한 일이었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바위와도 같이 확고한 그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용기와 더불어, 옳바른 판단력과 예리한 인식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직감과 판단은 번개처럼 신속했고,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천둥같이 꾸짖었다. 긴급 상황에 대처하고, 미래에 대해 긴 안목과 영감으로 대처하는 사람이며 위대한 영이며 사람들의 타고난 지도자였다. ” “그 어두운 시기, 어쩌면 몰몬이즘이 겪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 그 기초가 무너질.. 2020. 6. 19. 어둠이 뒤덮였던 이 무렵 나는 조셉의 곁에 가까이 서서 브리검 영은 이렇게 기록했다. “한번은 십이사도 가운데 몇 사람과 몰몬경의 증인, 그리고 교회의 다른 총관리 역원들이 [커틀랜드] 성전 다락방에서 평의회를 가진 일이 있었다. 그들이 논의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선지자 조셉을 폐하고 데이비드 휘트머를 교회 회장으로 임명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존 스미스와 히버 시 킴볼 형제 그리고 그곳에 참석한 몇 명은 그 의견에 반대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분명하고 강력한 태도로, 그들에게 조셉은 선지자이며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마음대로 조셉을 매도하고 중상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지자를 폐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다만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를 스스로 포기하고 선지자와 하나님께 자신을 묶어 놓은 줄을 끊고 지옥으로 떨어.. 2020. 6. 19. 이전 1 ··· 114 115 116 117 118 119 120 ··· 1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