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검은 열여덟 살 된 미리암 앤젤린 워크스를 만났는데 그녀의 가족은 [브리검이 일하고 있던] 들통 공장 근처에 살고 있었으며 찰스 팍스[브리검의 고용주]의 친구라고 했다. 1806년 6월 6일(혹은 6월 7일)에 아우렐리우스에서 태어난, 아사와 애비게일 워크스의 둘째 자녀인 미리암(때로는 앨젤린으로 부름)은‘푸른 눈에 물결 치는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으로 얌전하고 사랑스러운’여성이었다. [Susa Young Gates and Leah D. Widtsoe, The Life Story of Brigham Young (1930), 19] 그녀의 부친 또한 브리검의 부친처럼 독립 전쟁의 퇴역병이었다. 그는 존 이 살았던 홉킨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매사추세츠 주 워스터에서 서부 뉴욕으로 이주했다. 브리검과 미리암은 친하게 되었으며, 그는 그녀의 집까지 걸어갔으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브리검은 스물세 살에 윌리엄 헤이든의 부친에게서 말과 마차를 빌리고, 거리에 있는 집을 세내어 미리암과 결혼했다. “결혼식은 1824년 10월 5일(일부 자료에서는 10월 8일이라고도 함)에 어번과 벅스빌 사이에 있는 제임스 파인 여인숙에서 아우렐리우스 치안 판사인 길버트 위드의 주례로 거행되었다.”(Leonard J. Arrington, Brigham Young: American Moses [1985], 15) 브리검 은 헌신적인 남편과 아버지다. 그는 1829년에 가족을 뉴욕 주 멘돈으로 이주시켰는데, 조셉 스미스의 집에서 약 24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둘째 딸이 태어났으며 그의 아내는 결핵에 걸려 점차 몸이 쇠약해졌다. 사랑이 많고 사려 깊고 부드러운 브리검은 매일 일하러 가기 전에 아내가 편안한지 살피고 그의 자녀들을 돌보았다. “브리검 은 결혼 후, 하루에 30펜스를 받고 일을 했는데, 더 벌 수가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침이면 아내와 자신과 자녀를 위해 식사를 마련했으며,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고, 집안 청소를 한 뒤, 아내를 안아다 벽난로 옆에 있는 흔들 의자에 앉혀 놓고 저녁에 그가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 있게 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식사 준비를 하고 아내를 다시 침에 눕힌 뒤 나머지 집안 일을 마쳤다.” ( Gates and Widtsoe, The Life Story of Brigham Young , 5) 1832년 9월 8일에 그의 아내 미리암이 사망했다. 그녀는 멘돈에 매장되었다. 브리검은 후에 메리 앤 앤젤과 결혼했다. 그녀는 그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또한 브리검의 형제인 피네하스와 로렌조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듣고 브리검의 처남인 존 피 그린에게서 침례를 받았다. 1833년 봄에 그녀는 커틀랜드로 이주했다. 브리검은 커틀랜드에 도착한 직후, 그녀가 간증하는 것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1834년 2월 18일에 결혼했다. 그는 서른두 살이었고 그녀는 서른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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