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성도는 교육의 중요성을 믿는다. 이들이 가진 경전에는 "무릇 사람이 무지하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느니라"고 가르친다. 또한 말일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지혜와 지식은 어떠한 것이든 다음 세상에 그대로 가져가게 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얻은 예지는 어떠한 것이든지 다 부활할 때에 우리와 함께 부활하리라. 만일 어느 사람이 근면하고 순종심이 강하여 다른 사람보다 한층 많은 지식과 예지를 얻었으면 장차 오는 세상에서 그만큼의 유익을 얻으리라."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에게 최대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도록 강조해왔다.밀튼 베니언(Milton L. Bennion)이라는 교육자는 "몰몬 교회보다 더 자기 백성의 교육발전에 대해 완전한 지도를 하는 조직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지 의심스럽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육기간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시하고 자체의 교육제도를 발전시켜왔다. 몰몬이 가장 많은 유타주의 예를 들면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초기 성도들의 선조는 대부분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들이었는데 이들은 지식과 학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교회가 조직된 1년 후인 1831년에는 학교와 교수와 교재에 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1833년에 교회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예언자학교(The School of the Prophets, 선지자학교)로 불리는 성인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이는 성인교육에 있어서는 당시 세계의 선두를 달리는 일었다. 이 학교에서는 역사학과 정치학, 히브리어를 포함한 언어, 문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는 교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세상에 경고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의 부름을 보다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이 학교는 미주리주, 일리노이주 그리고 유타주 시절에 부모가 자녀와 함께 공부하는 성인교육의 효시가 된다. 1840년에 제정된 일리노이주 나부시의 헌장에는 시 경계내에 예술과 과학과 전문직업을 가르치는 나부시립대학(University of the City of Nauwoo)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였다. 1841년에 교육이 시작된 이 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시립대학이다. 이 대학의 교육 과목은 독일어, 불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와 같은 언어와 수학, 화학, 지학, 문학과 역사 등이었다. 이 학교는 같은 종류의 다른 학교에 비해서는 그 교육수준이 훨씬 높았으며, 교수진은 개척 도시로서는 유치하기 어려운 학문 수준이 상당히 높은 학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대학의 수업은 일리노이주 나부시에서 쫓겨나 대평원을 횡단하여 유타로 가는 고난의 여행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지도자 브리검 영은 이동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귀중한 논문을 한 질씩 준비하도록 지시하였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읽기를 즐기게끔 만드는 재미있고 유익한 모든 책과 지도와 도표와 도형을 준비하게 하였으며 다음 세대의 유익한 학문을 형성하게 될 각종의 역사, 수학, 철학, 지리학, 지질학, 천문학, 과학 그리고 각종 기술에 관한 글과 논문을 준비하도록 지시하였다. 솔트 레이트 계곡에 도착하여 몇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통나무집에서 수업은 다시금 시작되었다. 도로설치 법안이 통과된 후 다음으로 성안한 법률이 미시시피 강 서부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설립하는 법안이었다. 물질적인 부담이 컸지만 후기성도가 교육의 필요성과 가치를 망각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부 시립대학 헌장이 기초가 되어 1850년에 브리검 영에 의해 현 유타 주립대학의 전신인 데저렛대학(University of Deseret)이 설립되었다. 브리감 영은 이 대학 이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은 사람의 생각을 명석하게 하는 힘이 되며 세상일을 잘하게 하는 힘이 되며 인생을 잘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는 또한 훌륭한 학교 선생은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설파하였다. 이와 같은 결과를 뒷받침하듯 1850년에 제7차 미국 총인구조사에서 밝혀진 미국의 문맹률은 4.92%였으나 후기성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타주는 0.25%에 불과했다. 1923년에 미국 교육 현황을 조사한 결과 몰몬 사회는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 소유자가 전체 미국 인구의 평균치보다 3배나 더 높은 교육열을 나타냈다. 또한 대학 진학 및 재학률은 미국평균에 비해 2배나 높았다. 또한 대학원 재학, 석사, 박사 학위 소유자의 비율도 미국이나 세계 어느 단체보다도 높았다. 콜롬비아 대학교 명예교수인 손다이크 박사는 미국의 과학자와 현저한 업적을 남김 사람들의 출신을 파악하기 위해 카네기 재단의 요청으로 「미국의 명인전」 「교육계 지도자」 「미국의 과학자」 등의 책에 수록된 사람들을 각 주의 인구 비율로 주별 분포율을 분석한 결과 유타주가 가장 높았는데, 2위인 매사추세츠주보다 약 20%나 더 높았다. 과학자의 수도 유타주가 많았다. 2위인 콜로라도주보다 30% 정도가 앞서고 있다. 개척자들이 서부의 사막에 집을 집기 시작한 후 1세기가 끝나갈 무렵 후기성도는 교육적인 업적에 있어서 미국과 전세계를 통하여 남을 앞서는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토마스 닉슨 카버 교수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몰몬교도보다 건전하고 유익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으며 이들만큼 낭비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과 접촉을 가져본 적도 없다. 몰몬처럼 건강한 집단을 연구해 본적도 없다. 또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그처럼 큰 어려움을 감내하는 사람들도 없다. 이런 점이 바로 몰몬을 불모지 사막에서 도시를 건설하는 개척자로 성공하게 한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은 교육 수준이야말로 몰몬이 세상의 물질적인 부에서도 성공한 이유의 하나가 된다. 분석가들은 중상류층이 되는 비율에서 몰몬들은 미국의 기독교 정통주의자들을 휠씬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의 연구결과는 후기성도의 교육수준이 인구전체로 본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수준에 대한 이런 경향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후기성도 가운데 대학교육을 받은 비율이 전국 평균의 두배에 달하며 영국은 전국 평균보다 약간 높다. 멕시코에서는 중학교 이상 높은 교육을 받은 비율이 전국 평균의 두배를 넘고 캐나다에서도 대학교육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다. 아프리카에서도 후기성도 개종자의 교육수준이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2년에 뉴저지주에 있는 프린스턴 종교연구센터(Princeton Religious Research Center)는 미국내에서 교육수준과 종교적 열정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여 발표하였는데 일반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종교적 열정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스탠 올브레트(Stan L. Albrecht)와 팀 하튼(Tim B. Heaton)이 후기 성도를 상대로 연구한 결과로는 후기성도들의 경우에는 교육수준이 높아져도 종교적인 열정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 즉 어린이와 성인 모두 다양하고 풍부한 교회의 교육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한다. 존 위소(John a. widtsoe)라는 후기성도 교육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교육이 지식의 집합이면서도 정신을 훈련시키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교회 그 자체가 실제로 하나의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교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후기성도들에게는 세상의 교육과 영적 지식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후기성도들은 세상의 지적 교육을 경시하면서까지 영적 교육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지식은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서 추구해야 하나 영적 지식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종교적인 교육을 위해 노력해 왔다. 1890년부터 1929년 사이에 초등학교 1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는 신자 아이들에게 별도의 종교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평일에 학교 교육과 병행하는 종교교육을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종교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교회는 범세계적인 교회교육기구(Church Educational System)를 설립하여 다음과 같은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첫째로, 중고등학교 교육과 병행 실시하는 '세미나리'라는 교육이 있다. 이것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가까이에 건물을 준비하여 구약성경, 신약성경,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를 가르친다.
둘째로, 대학 캠퍼스 부근에 종교 교육원(Institute of Religion)을 설치하여 대개 1주일에 두번씩 종교교육을 시킨다. 모든 세미나리와 신학연구원의 과정은 무료로 되어 있다. 이 과정은 성인들에게도 개방되어 있고 통신과정도 마련되어 있다.
셋째로, 공적인 교육기관이 충분하지 않은 나라나 지역에는 교회가 직접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한다. 미국에는 유타주 프로보 시에 미국 최대의 사립대학인 브리감 영 대학교가 있고 하와이의 라이에 시에는 브리감 영 대학교의 하와이 캠퍼스가 있으며 아이다호주 렉스버그에는 브리감 영 대학교 아이다호 캠퍼스가 있고 솔트 레이크 시에는 후기성도 경영대학(L.D.S. Business College)이 있다. 그리고 멕시코와 남태평양 그리고 뉴질랜드에는 7개의 초등학교, 13개의 중학교, 9개의 고등학교와 1개의 초급대학이 있다. 1988년~1989년간의 통계를 보면 교회 교육기구는 전세계 90개국에 교육 조직을 두어 25만명의 세미나리 등록생과 12만4천5백명의 신학연구원 소속 대학생이 있고 교회 대학교에는 3만7천6백명, 기타의 각급 학교에는 9천3백명의 학생이 있다. 이 교회 교육기구의 직원은 4천1백명에 달하며 세미나리와 신학연구원에서 가르치는 교수와 선생은 모두 합쳐 15만명에 이른다. 교회는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기간의 하나로 브리검 영 대학교(Brighan Young Univercity)를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은 1875년에 엄격한 근로 정신을 가진 브리감 영 대관장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3만6천명이 등록되어 있는 미국 최대의 사립대학인데 미국에서 질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지난 5년간 학문적인 면에서 가장 괄목하게 발전한 학교로 인정받고 있으며 전국 교등학교 졸업생 중 1%의 우수 학생이 받는 전국 규모 메리트 장학금(Merit Scholarship) 수상자 진학률이 MIT와 더불어 전국에서 10번째로 높은 대학교로 인정받고 있고 1990년 머니 가이드(Money Guide)지는 우수 고등학교 졸업생의 입학수, 졸업후 취업률, 졸업후의 박사학위 취득률, 수업료, 학교시설, 교수진을 참고하여 1백개 전국 명문 사립대학교 중 브리검 영 대학교 순위를 4위로 꼽았다. 이 대학 졸업후의 박사학위 취득률은 코넬, MIT, 하버드, 스탠포드에 이어 다섯번째에 올라 있고 코카콜라 장학재단에서 수여하는 전국적인 장학생은 스탠포드, 하버드, MIT에 이어 4위에 올라 있다. 이 학교는 하와이에 분교를 가지고 있고 예루살렘과 수도 워싱턴 그리고 런던에 연구센터를 갖고 있으며 미국내 사립대학 중 가장 큰 학생 기숙사를 갖고 있다. 미국 전역의 사립대학교 중 학비가 가장 저렴하여 주립대학교보다도 싼 연 2천4백 달러 수준이다. 이 대학의 입학 조건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성적과 도덕적인 표준에 맞는 학생이면 종교, 성,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입학시킨다. 특히 이 학교의 언어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미 국방성의 연어교육 위탁기관이다. 이 학교는 65개의 언어를 교육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 한국어 분야에 대한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유일한 대학교다.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외국어 교육과정을 현상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비해 브리감 영 대학의 외국어 교육과정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에 따르면 미국대학의 평균적인 외국어 교육 규모는 1960년에는 학생 1백명 중 16명이 외국어 과목을 수강하였으나 1990년에는 그 비율이 8.5명으로 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비해 브리검 영 대학교는 현재 3만 6천명의 학생중 1만명 이상의 학생이 외국어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이 학교의 가장 인기있는 외국어 과목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불어, 일본어, 러시아어, 이탈리어인데 중국어, 한국어, 히브리어, 아랍어도 항상 개강되고 있다. 일본어는 하와이 대학 다음으로 큰 규모의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유럽의 여러 언어와 베트남어, 몽고어, 희랍어 및 아프리카와 중동의 여러 언어과정이 개설되고 있다. 이 학교 학생 중 4백60명 정도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1천4백여명은 일본어를, 4백여명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전세계 99개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학교는 체육분야에서도 대단히 전통 있는 학교로서 모든 운동팀들이 전국 대학교 10위 내에 랭크되어 있고 특히 미식 축구는 전국 우승과 지역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바 있다. 미식 축구에서는 명 쿼터백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브리감 영 대학이 배출한 명 쿼터백 스티브 영은 San Francisco 49ers에 입단한 후 소속팀에 시즌 최고 기록을 안겨줌으로써 AP통신이 선정한 1992년 풋폴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그는 또한 AP가 정한 1992년의 최고 공격수로 선정되었다. 이 학교의 무용단, 합창단, 교향악단 등 예술단의 질과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교수진 중 2백30명 이상이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국제감각이 뛰어난 대학이며 교수진 중에는 전국을 대상으로 한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연구소의 고문과 상담역을 맡은 사람이 많고 미국 내와 세계적으로 알려진 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이 학교는 장학금과 융자금이 많아 등록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학교 규율이 대단히 엄하고 전통적인 학풍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말일성도의 도덕적 표준에 맞는 생활을 요구한다. 즉 옷과 머리가 단정하고 정직을 최선으로 여기며 혼외 정사를 금하고 교내에서 술과 담배, 마약 등을 금한다. 그래서 후기성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브리감 영 대학교를 비롯한 각종 대학이 있는 유타주는 자녀들을 안심하고 유학 보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교육을 중시하는 후기성도들의 철학은 유명한 교육정책가를 많이 배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스털링 맥머린(Sterling M. McMurrin)은 케네디 행정부에서 연방 교육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았고 테드 벨(Ted H. Bell)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8년간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며 데이비드 가드너(David Gardner)는 레이건과 벨 밑에서 연방교육위원을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