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어려운 이웃과 성도를 도와주는 금식기금을 계속해서 모으고 복지사업으로 생산되는 충분한 양의 생활필수품을 항상 확보하고 있으므로 세계적으로 지진이나 홍수, 태풍과 같은 큰 재난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구호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와 같은 구호활동은 인종이나 국적,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도들은 경전에 쓰여 있는 다음의 가르침을 지키려 노력한다. "저들은 헐벗고 굶주리며 혹은 목마르고 혹은 병들고 또 잘 먹지 못한 자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고, 헛된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아니 하였으므로,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는 그들이 늙었거나 젊었거나, 속박된 사람이거나 자유로운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교회에 속한 사람이거나 속하지 않은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 조금도 치우침 없이 거저 나누어 주었느니라." 제1차 세계대전중 교회의 자선조직의 하나인 상호부조회(Relief Society)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동맹국의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구하고 미군의 식량으로도 사용하게끔 3만6천섬의 질이 좋은 밀을 미국 정부에 기증하였다. 1918년 연방하원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1936년에 시작된 복지사업이 성공함에 따라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유럽지역에 훨씬 대규모의 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교회는 주로 식료품, 의복, 주방용품과 의약품 등을 포함하는 92개 화차분 2천톤의 복지사업 생산품을 유럽의 성도들과 구호기간에 실어 보냈다. 이 외에 북미의 성도들은 계획을 세워서 추가로 수만 상자의 식품과 의복을 유럽으로 실어 보냈다. 당시 유럽에서 이 구호활동을 총지휘한 사람은 에즈라 태프트 벤슨(Ezra Taft Benson) 사도였는데, 벤슨 사도는 후일에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8년간 농무장관을 역임하였고 교회의 회장으로 교회를 대표하였다. 1953년 그리스에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었을 때 동방정교회, 가톨릭교회, 유태교회와 후기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공동으로 교회연합 이오니아 구호위원회(United Churches Ionian Relief Committee)를 구성하고 많은 양의 구호물자를 거둬서 그리스에 보냈다. 이러한 교회의 구호노력에 대하여 샌프란시스코 주재 그리스 총영사인 존 초우니스(John Tzounis)는 국왕의 감사장을 전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비밀이 아닙니다마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합니다. 귀 교회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호기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1971년부터는 복지 선교사제도(Welfare services Missionary Program)가 실시되어 보건 전문가들이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자기 비용으로 여러 나라에 파견되어 병원, 의원, 지역사회 보건기관에서 현지인을 훈련시키고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어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1973년에는 농업 전문가들이 자기 비용으로 농업 선교사(Agricultural Missionary)가 되어 중남미와 남태평양의 농민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안에 있는 인디안 보호지역의 농부들에게 지역 여건에 알맞은 농업 기술을 지도하고 가르쳤다. 1980년까지 7백68명의 복지선교사가 전세계에 파견되었으며 1990년까지는 추가로 3백50명의 특별한 기능을 가진 선교사(간호사, 의사, 직업훈련 교육자, 농업전문가)들이 동구권을 포함한 각국에 파견되어 보건문제, 농업문제에 대한 지도를 행하고 지도자 개발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1970년대에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로부터 수많은 난민이 생기자 교회는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실(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 for Refugees)'이 담당한 난민 수용소에 복지 선교사를 파견하여 태국과 필리핀과 홍콩에 와 있는 난민 중 미국으로 갈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어와 문화를 가르쳐 새로운 문화에 쉽게 적응하도록 하였다. 1983년에는 큰 지진을 만난 콜롬비아, 태풍으로 큰 재난을 겪은 타히티에 식량과 의복을 보내고 집없는 사람들에게 줄 건축자재를 구입할 기금을 보냈다. 1989년 대지진으로 5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아르메니아에는 각종 자재와 공구를 기증하여 집과 상가를 다시 짓도록 지원하였다. 1984년에서 1985년에 걸쳐 동북 아프리카 지역에는 한발과 내전으로 엄청난 기아가 닥쳐왔다. 교회는 1985년 1월 25일을 '아프리카를 위한 특별 금식일'로 지정하여 모든 북미지역의 성도들로 하여금 두끼를 금식하고 두끼 이상에 해당되는 후한 금식헌금을 내도록 격려하였다. 이 때 모여진 금식헌금은 6백40만 달러에 달하였으며 교회는 에티오피아와 수단 등의 현지에서 활약하는 적십자 국제위원회와 가톨릭 구호기관 등과 협력하여 식량과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였다. 몰몬교회의 금식일지정과 헌금모금에 자극받은 미국 연방의회는 전국적인 금식일을 선포하였으며 두번째 금식일에 교회는 성도들로부터 4백만 달러의 금식헌금을 모금하였다. 2차에 걸쳐 모여진 헌금 중 3분의 1은 영구적으로 아프리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농업개발사업에 쓰도록 결정되어 에티오피아, 차드, 니제르, 카메룬, 나이지리아, 가나 등에서 한발에 대비하여 수자원을 확보하고 농업개발하는 사업에 투입되고 있다. 최근에 아프리카에서만도 20개 이상의 개발사업이 교회의 지원으로 진행중이며, 중남미에서도 여러 개의 교회지원 개발사업이 진행중이다. 사하라사막 바로 밑의 니제르에서는 교회 기금을 지원받아 바람에 의한 토양침식을 막고 풍화작용을 줄여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립사업이 대대적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니제르 임업공사와 협력하여 서부 니제르의 마지아(Majia) 계곡에서 사하라 이남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조림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5백60km 떨어진 월로지역(Wello Province)의 게도바르(Geddobar) 계곡에서는 교회의 도움으로 관개수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공사는 댐을 만들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막고 24km의 농업용 운하를 옆으로 파서 물을 마른 땅에 끌어들이는 공사로서 1백만평 이상의 땅에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3개 마을 1천6백50개 가구 1만명의 주민이 농사를 짓게 되었으며 주민들은 관개수로 공사가 끝나기까지 연 20만명의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주민들 중에는 하루 10시간 반씩 일하기 위해 두시간 내지 세시간을 걸어와서 일하고 같은 시간만큼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공사는 현대적인 중장비가 동원된 것이 아니고 주민들이 가진 자재와 도구만을 사용하여 이룩한 공사이므로 주민의 자부심을 크게 높였을 뿐 아니라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고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었고 유지보수 역시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주민의 자조노력으로 이룩된 이 사업을 가장 모범적인 사업으로 손꼽았으며 다른 구호기관의 지원방법도 이렇게 하도록 제안하였다. 정부지도자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하기를 바랍니다. 이 사업은 사람들을 영원히 독립할 수 있게 하였으며 소득을 두배 세배로 늘리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아주 성공적인 실험이었는데 낮은 비용의 기술과 주민 자신의 노동력을 쓰는 그럼 실험이었습니다." 이 사업의 성공에 감탄한 에티오피아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낙농 협동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금을 이 지역 주민들에게 내놓았다. 케냐에서는 60km 밖에서 도수로를 통하여 물을 끌어 1천1백 세대에 공급하는 수도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두개의 대규모 지하수개발을 통하여 6백세대에 물을 공급하고 있고 교회가 운영하는 복지농장에서는 훨씬 생산량이 많은 주곡작물의 재배방법을 교육하고 종자를 나누어 주고 있다. 또한 우기에 많은 양의 빗물을 모아 두는 집수탱크를 교회 건물 옆에 설치하여 건기에 신자와 이웃에게 물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제분공장을 세우고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케냐와 아이보리 코스트에서는 천연두 예방접종을 위한 기금을 기부하여 이 두 나라에서는 천연두 발생률이 거의 영(零)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다. 볼리비아의 알티프라노에서는 싼 가격의 지하수개발, 양수용 풍차개발, 물탱크 건설, 비닐하우스 농법 등을 통해 식량증산을 추진하는 주민들의 자립노력을 지원하고 학교 건설, 보건 전문가의 양성, 새로운 식량자원의 개발 등에 도움을 주고 있다. 1991년에 교회는 의료시설 부족과 낮은 의료기술 수준으로 고생하고 있는 베트남에 의료지원사업을 전개하였다. 베트남의 의료수준을 한 단계 높여 주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일단의 후기성도 의사들이 베트남에 파견되었는데 이 의사들은 베트남에서는 시술할 수 없는 정형외과 수술 일곱 가지를 행하여 베트남 의사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필요한 의료기자재를 모두 기증하고 그 사용방법을 가르쳤다. 이들 의료 봉사단을 수행했던 총관리역원인 멀린 리버트(Merlyn R.Lybbert) 장로는 외교 및 종교성 장관 등 베트남 고위 정부 지도자들을 만나서 교회의 봉사활동을 설명하고 정부의 지원을 당부하였다. 1991년 러시아의 겨울은 러시아인에게는 너무나 길고 추웠다. 정부와 민간이 모두 배고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겨울이었다. 유럽의 후기성도들은 러시아에 있는 성도와 이웃들에게 즉시 먹을 것을 지원하기 위하여 나섰다. 미국의 성도들은 솔트 레이크 시티로부터 1만8천kg에 달하는 밀가루, 쌀, 마카로니, 식용유, 분유, 마른 야채, 비타민 등을 모스크바, 성페테르스부르그, 비보르그(Vyborg)와 탈린(Tallin)에 있는 성도들과 그 이웃에게 보냈으며 북부 독일의 성도들은 4천5백kg의 의류를 러시아로 보내서 추위에 떠는 성도와 이웃을 따뜻하게 했다. 구호식량의 일부는 고아원, 학교, 병원, 양로원 등에도 보내졌다. 1991년 한 해 동안에 교회가 행한 구호사업 중 하나는 이라크 정부의 박해를 피해 터키로 피난한 크르드족을 도운 것이었다. 교회는 1만3천장의 담요와 40톤 분량의 의복을 쿠르드족에게 보냈으며 의약품을 사서 피난민들에게 보낼 수 있는 기금을 구호기관에 기탁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자선구호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현지 구호기관을 별도로 세우지 않고 가톨릭 구제기구(Catholic Relief Agency)와 같이 이미 조직되어 현지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구호기관을 활용하고 있다. 교회의 구호사업의 구체적인 예를 또 한가지 들어보자. 최근 소말리아, 동부케냐,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의 아프리카 지역은 세기의 한발이라고 불리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1백년 만에 닥친다는 최악의 한발 속에서 소말리아의 내전은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가뭄을 피해 먹을 것과 물을 찾아서 그리고 전쟁이 없는 안전지대를 찾아서 수천, 수만명의 소말리아인들이 케냐 국경을 넘어 피난하고 있다. 1991년 1월에 3만5천명이었던 이 난민은 1992년 초에는 거의 5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한발과 내전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1992년 말까지 1백만명 이상의 난민이 케냐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전쟁 위험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호기관은 소말리아와의 국경에 접한 케냐땅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회는 구호를 위한 첫번째 조치로 1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45만kg의 식품과 다른 여러가지 필수품을 여기에 공급하였다. 이 구호조치는 1만3천명의 아이들을 3개월간 먹이고 산모와 임산부들에게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것인데 이 외에도 교회는 의복과 거처를 마련할 자재를 공급하고 음료수 개발과 소규모 농사를 돕기 위한 기금을 보냈다. 교회는 구호사업 책임자를 현장에 파견하고 현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대규모의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수없이 많은 신자들이 구호사업 참여를 신청하고 있다. 교회의 회장은1991년 12월 전세계의 모든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 구호사업을 전개하도록 촉구하였다. "우리는 성도들의 구호 열의에 감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열의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별도의 헌금을 감독이나 지부장에게 보내 주시면 이 헌금은 즉각 본부 구좌에 모여지게 됩니다. 또한 헌금은 본부에 있는 구호사업부로 직접 보내셔도 좋습니다." 교회는 구호물품이 난민들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도록 필요한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 첫째로 과거에 함께 구호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작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구호기관을 선택하고, 둘째로 모든 식품은 즉각 사용이 가능하도록 가공하여 포장한다. 이렇게 하면 낭비와 부정유출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식품과 생활필수품은 반드시 콘테이너에 넣어 봉하고 구호기관과 담당자를 정해서 발송한다. 교회는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가공공장을 돌려서 분유와 밀가루를 만들고 또한 콩과 옥수수도 가공하여 난민 수용소에 있는 엄마와 아이들이 필요한 양을 정확하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교회의 구호사업부는 비누를 준비하였다. 또한 구호품에는 씨앗과 간단한 농기구가 들어 있어서 난민들로 하여금 농사를 지울 수 있게 하였으며 식수와 농업용수를 개발하고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차량과 설비와 비품도 공급하였다. 1991년 12월 7일부터 5일간에 걸쳐 사모아 제도에는 발(Val)이라 불리는 열대성 태풍이 몰아쳐 17명이 죽고 모든 건물의 65%가 파괴되었다. 태풍이 강타한 지역은 농작물의 100%까지 쓸어가 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교회는 즉각 구호활동에 나서서 12월 13일에는 호주로부터 천막, 로프, 쌀, 밀가루, 설탕, 통조림 고기 등 30톤의 물자를 항공편으로 발송하였으며 며칠 후에는 12톤의 식량과 2백개의 천막을 보냈고 12월 말에는 추가적으로 쌀, 밀가루, 통조림 고기와 설탕을 긴급 수송하였다. 한편 시간이 지난 후에는 무너진 집을 복구하기 위하여 목재와 지붕자재를 보냈다. 이러한 식량과 자재는 현지 교회 지도자들의 손으로 개인별로 가정별로 수요를 파악하여 골고루 분배하였다. 1992년 8월 24일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남부지역에는 역사상 최대의 허리케인이 몰아쳤다. 시속 2백50km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앤드류(Andrew)는 남부 여러주를 강타하여 8만5천채의 가옥이 거의 폐허화되었고 25만명의 주민이 집을 잃었다. 지방정부, 주정부, 연방정부는 난민구제를 위한 신속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그날 오후 건축자재, 전동공구와 각종 구호물자를 싣고 플로리다에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주변 6개주에 사는 6천명 이상의 후기성도들이었다. 이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지시에 따라 10명, 50명, 1백명 단위로 인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즉각 3천채의 가옥에 임시 지붕을 만들어 주고 네 군데 교회 건물에 구호소를 설치하여 대형 트레일러 10대분의 비상식량과 물과 약품을 나누어 주었고 외국인 농부(주로 멕시코인) 집단 거주지의 부서진 가옥 7백10채를 긴급 수리하였고 2천1백 트럭분의 쓰레기와 부서진 물자를 수거하여 처리하였다. 플로리다의 재해구조작업을 지휘하기 위해 파견되어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미육군 7야전포병대의 찰스 래쉬(Charles R. Rash)중령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함께 일한 모든 단체 중에는 몰몬교회가 가장 잘 조직되었고 가장 효율적인 활동을 전개 하였습니다." 보다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각종 기술과 자원을 제3세계에 제공하는 것은 브리감 영 대학교 내에 있는 에즈라 태프트 벤슨 농업식량연구소(Ezra Taft Benson Agriculture and Food Institute)이다. 1975년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연구와 교육을 행하면서 세계 여러나라의 농업프로젝트를 돕고 있다. 이 연구소는 효과적인 소규모 농작물 재배방법을 개발한 후 이를 볼리비아, 에콰도르, 과테말라, 멕시코의 농촌에 적용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 연구소는 영양상태에 대한 평가도 행하고 이를 위한 훈련도 실시하고 있으며 소규모 농토에 적합한 영농기술, 예를 들어 소형 트랙터, 태양열 이용 양수펌프, 풍력이용 양수펌프 등을 사용한 기술을 개발하여 개발도상국에 보급하고 있다. 연구소는 개발도상국의 농업연수생을 교육하고 개발도상국 정부와의 협약으로 농업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농업용 장비와 의료용구를 모아서 개발 도상국에 보내기도 하고 단기 또는 장기로 그 나라에 거주하면서 농업개발, 위생과 영양문제를 지도하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관리도 행하고 있다. 1977년 후기성도인 트래셔(E. W. Thrasher)는 전세계 아동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을 교회가 담당하도록 1천4백만 달러를 기증하였다. 교회는 이를 재원으로 트래셔 연구재단(Thrasher Research Fund)을 설치하였다. 이 재단은 개도국 아동들의 영양 상태와 전염병을 연구하고 위생과 건강을 증진하는 여러 기술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매년 교회는 복지사업에서 사용하고도 항상 넘치는 잉여 생산물과 의복, 가정용품 등을 전세계의 자선기관에 기증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세상의 어느 종교보다도 신자들이 내는 헌금에 비해서 이웃과 성도들에게 나누는 몫이 큰 종교로 알려져 있다. 1992년 4월 13일 에즈라 태프트 벤슨 농업식량연구소는 멕시코 교육부와 15년 장기의 소규모 영농기술 제공 계약을 체결하였다. 미국의 농장크기는 40만평에서 1천2백만평에 이르지만 멕시코나 중남미 제국의 농민은 평균 3천평 농토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연구소측이 제공하는 소규모 영농기술은 3천평 농토를 가진 7인 가족이 농작물 종류를 잘 선정하여 영양부족 없이 자급자족하고 나머지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까지 하는 농업기술이다.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은 멕시코 농민들이 브리감 영 대학 기술진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영농기술을 멕시코 전역에 보급하는 것이다. 멕시코 교육부는 이 프로그램을 우선 40개 농과대학에 보급하고 다음에는 점진적으로 농업고등학교에, 그 다음에는 개별 농가에 보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계약에는 멕시코의 농과대학 하나를 소규모 국제영농센터로 선정하고 멕시코 각주에서 온 팀들을 모두 교육시키게 되어 있다. 소규모 영농프로그램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 온 훈련생들도 이 국제센터에서 훈련하도록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