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8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은, 유타주 출신 연방상원의원이며 법사위원장인 제이콥 가안(Jacob E. Garn)의 아들이 다른 몰몬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선교사로서 영국으로 출발하기 바로 며칠 전에 가안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속에 레이건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당신의 교회에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몰몬은 아니지만 몰몬의 가치관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레이건이 가안에게 보낸 편지는 20세기 후반에 미국의 대중이 몰몬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인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1983년 10월 전국적으로 실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몰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부정적인 반응을 압도하고 있다. 죠지 갤럽 2세는 조사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미국의 성인 인구의 1%만을 겨우 대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미국 성인 인구의 2%를 넘는다.)
매주 일요일 아침 많은 경건한 미국사람들은 CBS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서 아름다운 성가와 더불어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짤막한 말씀을 듣게 된다. 이것은 '음악과 짧은 말씀(Music And Spoken Word)'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세계 최고수준의 성가합창단으로 불리는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Mormon Tabernacle Choir)의 영감적인 노래와 짧지만 감동적인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1929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60여년간 계속되어 미국 방송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 프로그램은 세계 로타리클럽 총재를 역임하고 교회 십이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던 리차드 엘 에반스(Richard L. Evans) 박사가 시작하였는데 그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41년 동안 말씀을 담당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한국의 AFKN을 포함한 전세계 8백개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중계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은 음반으로, 테이프로, 라디오로, 텔레비전으로, 그리고 연주회에서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때때로 이 합창단은 세계를 무대로 연주여행을 떠나는데 교회를 알리는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91년 6월 이 합창단은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 동독과 서독, 스위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체모, 그리고 소련의 11개 도시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휩쓸었다. 수만 명의 청중이 연주회에 참석하여 영감적인 목소리를 직접 들었을 뿐 아니라 각국마다 중계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하여 수억의 유럽인들이 합창단의 노래를 즐겼다. 이 합창단은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에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녹화중계 되었다. 당시 이들의 노래를 직접 들어본 사람들은 웅장함 속의 조화와 마음을 울리는 영적 감동을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우리말로 부른 애국가는 애국가가 불리거나 연주된 이래 가장 웅장하고 감동적인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1851년에 시작된 이 합창단은 3백75명 정도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특색은 교회의 다른 모든 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원 모두가 무보수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이라는 점이다. 보수를 주는 상업적인 합창단이었다면 이와 같이 오랫동안 합창단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합창단은 만국 박람회와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행사나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노래하도록 초청을 받는다. 음악과 짧은 말씀 프로의 60주년 기념식에서 죠지 부시 대통령은 이 합창단을 '미국의 최고 보물 중의 하나'라고 격찬하였다.
몰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은퇴한 치과의사로서 인공 심장 수술을 받고 1백12일을 살았던 바아니 클라크(Barney Clark)박사와 그에게 심장수술을 했던 윌리암 드브리즈(William C. DeVries)박사는 모두 후기성도인데 교회는 이 두 사람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백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명예인 자유 훈장(Medal of Freedom)을 죽은 클라크 박사에게 추서 하도록 촉구하였다. 시애틀에서 거행된 클라크 박사의 장례식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보낸 특사와 연방정부 관리들과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는 대부분이 몰몬을 잘 안다. 솔트 레이크 시티 중앙에 있는 솔트 레이크 성전과 주위 명소에는 매년 4백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이것이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워싱턴의 워싱턴 몰을 찾는 사람에 필적하는 숫자다. 또한 동부에서 서부를 가거나 서부에서 동부를 가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들은 모두 솔트 레이크 시티를 들러 교회 지도자들을 만난다. 웨스턴 항공사와 팬 아메리칸 항공사를 흡수하여 세계 최대의 항공사가 된 델타는 서부 기지를 솔트 레이크 시티로 옮겨 관광객과 정치인들의 나들이를 한층 쉽게 해주고 있다. 세계적인 체인망을 갖고 있는 매리어트 호텔(Marriot Hotel)에 투숙하는 여행객들은 방마다 기드온 성경과 나란히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이라고 부제가 붙어 있는 물몬경을 볼 수 있다.
1992년 1월 미국의 권위있는 맥밀란 출판사(Macmillan Publishing Company)는 몰몬의 역사와 교리와 교회운영과 생활태도 등을 조합적으로 정리하여 몰몬 백과사전(Enyclopedia of Mormonism)을 출간하였다. 맥밀란은 특히 전문 백과사전과 인문과학, 사회과학, 역사 및 종교분야에 권위가 있는 출판사인데 1987년에 16권으로 된 종교사전을 발간한데 이어 5권으로 된 몰몬 백과사전을 출판한 것이다. 이 백과사전은 전체 1천2백개의 광범위한 주제에 대하여 7백35명의 학자들이 집필하였다. 이 책은 몰몬에 대해 의심을 가진 사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최근 개종자거나, 오래된 신자거나 누구라도 쉽게 내용을 찾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공공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 또는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영구 비치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다. 유명 출판사가 기획하여 만든 몰몬 백과사전의 출현은 몰몬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왜곡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1992년 3월 교회의 지도자 한 사람은 유럽을 방문하던 길에 로마 교황청의 바티칸 도서관(Vatican Library)에 들러 도서관장인 레오나르드 보일레(Leonard Boyle)신부에게 몰몬 백과사전 한 질을 기증하였다. 보일레 신부는 그 책을 감사하게 받아 들이며 도서관의 귀중한 장서로 보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방문자들을 도서관 경내로 안내하여 기원 818년경부터 씌어진 양가죽으로 된 희귀한 성경 원본들을 보여주고 자기가 손수 집필한 안내서인 [바티칸 라이브러리]를 선물로 증정하였다.
몰몬 이미지의 변화는 미국 영화산업의 예를 보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영화야말로 시대 흐름과 여론을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척도가 되는 것이다. 영화와 몰몬과의 관계도 물론 적대적인 것으로부터 우호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초기 영화에서 보는 몰몬은 19세기의 반(反)몰몬적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대중매체를 연구하는 학자인 리차드 넬슨(Richard A. Nelson)은 "초기 헐리우드 영화는 주로 몰몬 개척자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일부다처의 해악에 대한 공격을 많이 하고 있다 대부분의 초기 무성 영화제작자들은 적극적인 반(反)몰몬이라 할 수는 없어도 몰몬의 역사나 교회를 잘 모르는 데다가 유타에 관한 현실적인 정보도 미흡하여 센세이셔널하게 비판하는 쪽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고 초기 영화 시대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헐리우드와 솔트 레이크 시티가 화해하는 날이 왔다. 1921년 미국 상원에는 매 영화마다 30%의 영화산업세(Film Industry Tax)를 부과하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통과되면 영화의 수익성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는 상황이었다. 제작자인 윌리암 폭스(William Fox)는 당시 몰몬신자로서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리드 스무트(Reed Smoot)에게 영화산업세를 부결시키도록 부탁하면서 자기가 이미 제작해 놓은 몰몬에 비판적인 영화 두편을 상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법안은 부결되었고 영화도 상영되지 않았다. 이 때부터 헐리우드에서는 반(反)몰몬적인 영화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리차드 넬슨은, "몰몬들이 여인들의 혼을 뺏어 가려고 수작을 부린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사라졌다. 유타에 사악한 종교왕국을 세우려 한다는 왜곡된 부정적 이미지도 서부시대의 다른 유물과 더불어 사라졌다. 이제는 영화제작들은 유타와 그 주민에 대한 욕설로는 큰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
1940년대에 들어서서 헐리우드는 몰몬에 대하여 영웅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몰몬 작가인 바르디스 휘셔(Vardis Fisher)가 1939년 [하나님의 자녀들(Children of God)이라는 소설을 써서 하퍼북 대상(Harper Book Prize)을 받게 되자 1년 뒤 20세기 폭스사는 영화제작자 대릴 자낙(Darryl F. Zanuck)과 더불어 휘셔의 소설을 영화화하였는데 이것이 서사시적 대작 영화인 '브리감 영'이다. 이 영화는 오스카상을 받은 딘 재거(Dean Jagger)와 타이론 파워(Tyron Power) 등이 출연하여 공전의 히트를 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몰몬이 예의 바르고 박해받는 개척자들로 그려졌다. 그들의 신앙에 대해 편견 투성이인 동부지역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앙을 키우면서, 불굴의 의지로 거칠고 험한 서부 사막지대를 문명사회로 바꾸어 나가는 실천과정을 이 영화는 그리고 있다. 이로써 몰몬에 대해 지금까지 와는 완전히 다른 동정적인 분위기를 미국 사회 내에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여론은 몰몬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몰몬에 대한 박해를 존 스타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오클라호마 사람들에 대한 박해와 비교하게 되었다. 영화개봉에 앞서 여러 도시에서 계속된 시사회에는 출연 배우들이 직접 모습을 나타냈으며 실로 이 영화는 헐리우드가 교회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연된 적이 없고 편견을 가진 다른 기독교인들의 압력으로 앞으로 오랜 세월동안 상영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 '브리감 영'은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몰몬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좋지 않은 감정이나 악의를 씻어 버리고 좋은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다. 몰몬은 '아메리카의 개척자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새로이 인식되었고 분파적인 이단의 무리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고 미국사회의 본류에 당당히 들어가게 되었다. 주연배우인 딘 재거는 30년 후에 몰몬으로 개종하였으며 열렬한 교회의 대변인이 되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브리감 영'은 그 후에도 두차례나 더 영화화되어 상영되었다.
이후 헐리우드는 몰몬에 대하여 초기화 같은 적대적인 태도로 돌아간 일이 한번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도 몰몬은 일반적으로 정직하고 확고하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로 비추어지고 있다. 교회는 그 후에 브리감 영 대학내에 영화 스튜디오를 세우고, 내용이 좋은 종교 영화나 교육 영화를 직접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나중에 미디어 마케팅(Media Marketing)이라는 독립적인 영화제작사를 설립하였다. 이 영화사의 설립자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웨젤 위터커(Wetzel O. Whitaker)였는데 상업적으로 성공한 많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1960년에 설립된 이 영화사는 2만5천편이 훨씬 넘는 단편 내지는 중편의 교육 영화를 만들었다. 회사 관계자에 의하면 이 회사의 최대 고객은 가톨릭, 감리교, 여러 침례교단, 루터교, 안식교와 같은 다른 기독교회들이라고 한다.
오늘날 미국사회에서는 몰몬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 또는 왜곡은 거의 사라졌다.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s)이나 몰몬에 대해 무지하여 근본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편견과 오해와 왜곡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외에는 그들을 비판하거나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1830년 교회가 세워진 후 몰몬을 이단으로 몰아세운 것은 주로 침례교회의 근본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책자와 팸플릿을 통하여 죠셉 스미스의 시현을 비난하고,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공격하고 편견과 오해와 왜곡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바뀌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회적인 이슈에서 몰몬과 침례교는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신학체계를 갖고 있는 노골적인 적대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교회는 포르노, 낙태, 동성연애, 이혼, 마약, 알코올중독 등에 대하여 똑 같은 반대의견을 갖고 있으며 세속화된 인간중심주의, 남녀평등입법, 무신론적인 공산주의 등을 함께 반대한다. 더 나아가서 두 교회는 이런 반대운동에서 결속 내지는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두드러진 사례 중의 하나는 침례교회의 유명한 제리 폴웰(Jarry Falwell)목사가 이끄는 모랄 머조리티사(Moral Majority Inc.)와 몰몬학자인 클리언 스카우슨(W. Cleon skousen)이 이끄는 프리멘 연구소(Freemen Institute, 1984년 9월 이 연구소는 헌법연구센터, National Center for Constitutional studies로 이름을 바꾸었다)의 좋은 협력관계를 들 수 있다. 프리멘 연구소 부소장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자.
"제리 폴웰 목사와 우리 연구소 소장인 스카우슨 박사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구간이다. 스카우슨 박사는 1980년 7월 4일의 대규모 합동모임에서 강연하도록 폴웰 목사를 초청하였다. 폴웰 목사는 우리가 만든 자료를 많이 활용한다. 우리는 매달 그에게 자료를 보낸다. 그는 특히 '미국의 기적'이라고 이름붙인 기본과정을 좋아하는데 이 과정은 앵글로 색슨 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헌법의 역사를 13시간짜리 테이프로 기록한 것이다. 폴웰 목사는 스카우슨 박사가 쓴 것이면 어느 것이나 좋아한다." 모랄 머조리티사의 사무국장인 칼 토마스(Cal Thomas)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1981년 나는 솔트 레이크 시티로 가서 스카우슨박사와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공통적인 생각을 갖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의논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프리멘 연구소의 자료를 많이 검토하였는데 스카우슨 박사는 가치있는 자료를 많이 주었다. 나는 스카우슨 박사가 설명하는 사회복지제도(Social Security System)에 특별한 흥미가 있었다. 폴웰 목사님도 역시 그것을 좋아한다. 돌아온 후 나중에 더 많은 자료를 받았다. 앞으로 우리 양측은 공통으로 믿는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날이 올 것으로 본다.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폴웰, 프리멘에 매혹되다'라는 제목의 UPI 기자와의 회견 기사에서 폴웰 목사는 프리멘 연구소를 '이 나라의 지도적인 보수그룹'이라고 칭찬하고 브루킹스 연구소가 진보적 그룹을 대표한다면 프리멘 연구소는 보수적 그룹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폴웰 목사는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이 나라의 모든 보수적 그룹은 헌법 문제에 관하여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하고 있는 프리멘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크게 의존한다. 나는 그들이 하는 일에 최상의 존경심을 갖고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고 있다."
그 후에도 폴웰 목사는 솔트 레이크 시티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 하였는데 그 때마다 프리멘 연구소의 연구업적을 추켜 세우면서, " 우리는 스카우슨 박사가 말하는 대로 해야 한다. 그는 건국의 선조들이 정한 좋은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1980년 현법제정기념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카우슨 박사와 같이 찍은 폴웰 목사의 사진은 프리멘 연구소의 팸플릿에 인상적으로 실려 있다. 전통적으로 몰몬과 침례교가 불쾌한 관계를 유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침례교는 1998년도 총회를 몰몬의 안마당인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개최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편 미국의 장로교회는 1990년도 전국총회를 5월 29일에서 6월 7일 사이에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개최한 바 있다. 이때 전국적으로 2천5백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으며 이때 몰몬교회의 회장단은 환영의 뜻을 표시하였고 유명한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은 정기연주회에 장로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였다.
유럽에서도 과거에는 몰몬을 이단적으로 보는 견해가 강했다. 이는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과도 관계가 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미국은 스칸디나비아 4개국 중 3개국의 대사에 독실한 몰몬신자를 임명하였다. 이 사람들은 각각 그 나라에서 선교사로 봉사한 일이 있고 그 나라말을 유창하게 잘 할 뿐만 아니라 유럽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과거에는 신문에 몇 줄 정도 밖에 나지않던 몰몬에 관한 기사가 한 페이지까지 실리게 되었고 교회에 관한 이미지는 매우 좋아지게 되었다. 인구가 줄어들고 종교활동이 매우 부진한 이들 나라에서 몰몬신자는 계속 늘고 있다. 교회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성장을 계속하고 그에 따른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자 사람들 중에는 몰몬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왜곡을 증폭시키는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어 일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수익을 올리려는 우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에드먼드 덱커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드는 자들(The God Makers)]이라는 오류와 왜곡으로 가득찬 책을 쓰자 반(反)몰몬들은 이를 영화화하여 보통의 반(反)몰몬 선전보다 훨씬 큰 반응과 수입을 얻었다. 그들은 이 영화에 '몰몬 교회가 실제로 무엇을 믿는가를 보여 주는 깜짝놀랄 만한 폭로'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놀랐던 사람들은 바로 후기성도들이었다. 왜냐하면 그 영화를 본 후기성도들은 어떻게 그런 정도까지 왜곡되게 자기들을 소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몰몬들이 반론을 제기하기도 전에 그 영화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미국의 양심적인 '전국 기독교 유태교 총회(National Conference of Christians and Jews)'에서는 그 영화를 면밀히 검토하고 실제로 후기성도들이 믿는 것과 비교한 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견해로는 이 영화가 몰몬 교회와, 그들의 역사와 그들의 믿음을 공정하게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 이 영화는 반쯤 사실인 것을 전부가 사실인 것처럼 다루고 있고 잘못된 일반화를 하였고 틀린 해석으로 인기 끌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 영화는 몰몬신앙의 진면목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1844년 6월 27일 조셉 스미스가 폭도들의 습격으로 살해되었을 때(후기성도들은 이 사실을 순교하고 부른다) 당시 일리노이 주지사인 토마스 포드(Thomas Ford)는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악의에 찬 기록을 남겼다.
"현대의 가장 성공적인 사기꾼이었던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쓰러졌다. 그는 무식하고 수준 낮은 사람이었지만 일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자연스러운 면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부정하고 사악하여 그는 빛을 잃고 좌절을 겪었고 결국 장래에 크게 성공할 만한 조직을 만드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 평가를 내렸던 토마스 포드는 그 후 어떻게 되었던가? 그는 6년 후에 죽었는데 죽을 때는 거의 파산 상태에 빠져 1백58달러의 부동산과 다른 사람 손에 다섯명의 아이들을 남기고 죽었다. 그보다 3개월 먼저 죽은 아내는 나라가 주는 비용으로 땅에 묻혔다. 토마스 포드는 아무도 조셉 스미스의 죽음과 연관된 것 이외에는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교회는 조셉 스미스가 죽은 카테이지 감옥터(Carthage Jail)를 사서 옛날대로 완전히 복원한 후 성역화 하여 그가 죽은 지 1백55년이 지난 1989년 6월 27일 그 헌납식을 가졌다. 헌납식에는 4천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일어나서 '말일에 예언자 주신 하나님'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조셉 스미스의 선지자로서의 업적을 기렸다. 이 헌납식에는 교회의 회장인 에즈라 태프트 벤슨과 제일회장단 보좌인 고든 비 힝클리가 참석하였는데 특히 일리노이 주지사인 제임스 톰슨(James Thompson)의 부인 제인 톰슨이 참석하였고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인 로라 켄트 도나휴(Laura Kent Donahue), 번 해그스트롬(Verne Hagstrom), 그리고 퀸시(Quincy)시의 시장과 왈소(Warsaw)시의 시장, 전 재무장관 케네디 등이 참석하였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 음악과 교수인 모간 맥머디(Maughan McMurdie)의 지휘로 대규모 합창단을 조직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준비하였다. 고든 비 힝클리 제일회장단 회장은 헌납기도 가운데 그 장소가 모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와서 죽은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생각하면서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축복하였다. 그는 "오늘 여기에 톰슨 여사가 온 것은 말로 하는 것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이며 놀라운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축사를 맡은 톰슨여사는 주의회 일로 남편인 톰슨 지사가 그 자리에 참석치 못하였음을 사과하고 앞으로 이 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 곳은 후기성도의 공적을 생각하는 곳이 되고 일리노이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의 근본인 종교적 관용, 정치적 아량 그리고 사회적 관대함을 키우는 터가 되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옛 일리노이 주지사와 지금의 주지사 부인이 말한 것을 비교하여 본다면 몰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벤슨 회장은 톰슨여사에게 교회가 수집 정리한 톰슨 주지사의 선조에 관한 족보사본을 선물하였다. 교회는 다른 기독교 교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전개하고 있다. 솔트 레이크 시티의 역사적 건물 중의 하나인 매들린 성당(Cathedral of the Madeleine)은 오래되고 매우 낡아서 대대적인 수리가 불가피하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수리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충분한 기금이 마련되지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이 성당을 보존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수리가 끝난 후 1993년2월 20일에 행해진 헌납식 광경은 브리감영 대학의 교육방송(PBS)을 통하여 저녁 7시에 생방송으로 청취자들에게 중계되었다. 이 헌납식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초청을 받아 토마스 에스 몬슨 제일회장단 회장이 교회를 대표하여 설교를 하였고 두 사람의 사도가 동행하였다. 매들린 성당 헌납식에서 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대주교인 마호니(His Eminence Cardinal Roger Mahony) 추기경은 성당 수리를 가능케 한 유타의 가톨릭 교회와 솔트 레이크 지역 사회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모금위원회의 공동위원장 네 사람 중 한 사람만이 가톨릭 신자이고 나머지는 지역 사회 유지들이었음을 상기 시켰다. 그는 몰몬 성전과 가톨릭 성당이 인간의 가치와 미래에의 희망을 나타내는 놀라운 상징물로서 나란히 서 있다고 말했다. 이 성당을 위한 모금 위원회의 공동위원장 이었던 유명한 실업인인 몰몬신자 존 헌츠맨 장로는 이 일을 계기로 바티칸의 초청을 받고 로마에 가서 1993년 5월 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면담했다. 헌츠맨 장로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먹이는 세계적인 가톨릭 구호조직인 세인트 빈센트 드 폴에 대해서도 여러 해 동안 커다란 재정적 지원을 한 바 있었다. 가톨릭 신자로 헌츠맨 장로를 수행했던 솔트 레이크 시티의 변호사 패트릭 쉬어(Patrick A. Shea)씨는 교황과 헌츠맨 장로가 전쟁, 기아, 천재지변 등등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만났다고 전하고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몰몬 교회는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고통받는 자에게 도움을 주는 가톨릭 교회의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는 고통받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교황께서는 기독교 일치를 위한 모임을 주관하고 계신다. 내가 만난 그 모임의 고위 성직자 한 사람은 가톨릭 교회가 몰몬 교회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지만 공동의 관심분야에 함께 눈을 돌리고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과의 면담 후에 헌츠맨 장로는 "교황은 온 인류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진 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93년 5월 2일에는 기독교 화해 정신에 따라 매들린 성당 예술축제에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이 초청되었으며 양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은 감동적인 공연을 하였다. 1992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는 솔트 레이크 시티와 인근에 있는 1백50여명의 모든 교파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우정을 나누고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의 연주를 듣는 기회를 만들었다.
미국의 저명한 관광지도 및 여행서적 출판사인 랜드 맥낼리(Rand McNally)는 [세계의 경이 : 인류문명의 걸작 안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1991년에 발간된 이 책에는 인류가 만든 1백가지 걸작품을 소개하였는데 이 중에는 옛날에 만든 파르테논 신전, 크렘린궁, 베르사이유궁전, 만리장성, 피라미드, 마추피추 사원이 포함되었고 현대에 와서 만든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한 걸작품 중 하나로 이 출판사는 40년에 걸쳐 완성된 솔트 레이크 성전을 선정하였다. 두 페이지에 걸친 솔트 레이크 성전의 설명 란에는 성전과 주의 관광명소에 대한 역사와 내력과 아울러 유타 황무지 도착 후 6년 만에 시작된 건설공사와 관련하여 주민의 근면성과 희생과 봉사 그리고 브리감 영의 천재적인 지도력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