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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바벨론: 세상적인 영화의 상징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4.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하여 열 지파를 포로로 끌고
간 후 얼마 안되어 그 왕국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제국의 남부에서는 갈대아인과 바벨론인들의 세력이 더욱
막강하여져서 곧 앗수르로부터 세력을 장악하였다. 주전 609년에
나보폴라살 왕은 애굽과 메디아와 동맹하여 앗수루의 수도,
니느웨를 침공하여 정복하였다. 바벨론은 통치 제국이 되었으며 그
위치를 굳히기 시작하였다. 바벨론은 전의 앗수르와 마찬가지로
행하기 위하여 모든 인구의 정복과 추방을 병행하여 시행하였다.
나보폴라살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아들 느부갓네살이
즉위하였다. 느부갓네살의 영도 하에 바벨론은 국력과 영화가
정상에 이르게 되었다. 느부갓네살은 여러 지역 출신의 노예를
사용하여 대규모의 건축 프로그램을 시도하였으며, 그리하여 곧
바벨론을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로 건설하였다. 정복과 상업을
통하여 세상의 재물이 바벨론의 보화로 흘러 들어갔으며,
느부갓네살은 이 부를 사용하여 도시를 영화롭게 하였다.
구약전서의 예언서들이 바벨론의 영화를 설명해 준다. 다니엘은
“이 큰 바벨론”(다니엘 4:30)이라고 말했고, 예레미야는“온
세상의 칭찬받는 성읍”(예레미야 51:41)이라고 말했으며 이사야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사야 47:5),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이사야 13:19)라고 말했다.
고대의 저자들은 바벨론에 대하여 자세히 말했고, 그러한
설명이 단순한 과장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와 디오듀리스 시쿨러스는 도시의 성벽이
상상을 불허할 만큼 웅대하였다고 묘사하였다. 현대의 학자는
오늘날의 고고학이 그리스도 이전 시대의 저자들이 믿을 수 없는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고 기록하였다.
“헤로도투스는 이 벽은 너비가 26미터 높이가 102미터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성벽 위 양쪽에는 단층의 작은 집이
있었으며 그 양집 사이로 네 대의 마차가 나란히 달릴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헤로도투스는 현대의 평론가들에게 크게 비난을 받았으나,
여기에서 탐험가들은 이 고대의 역사는 그가 주장한 것보다 더
웅대하였음을 발견하였다. 외곽의 보벽은 7미터 두께로,
아스팔트를 깔고 구운 벽돌로 지어졌다. 그 내부에는 모래와
자갈을 채운 것이 21미터가 되었으며, 그 안의 보벽은 14미터
두께였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는 42미터에 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성벽과 성채의 벽돌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디오듀러스의 말을 입증하였다.”(새뮤엘 팰로우스, 성경 백과 및
성구 사전, “바벨론”, 208~209쪽)
이러한 거대한 성벽이 약 90킬로미터 또는 양면으로
22.315킬로미터가 되는 온 도시를 둘러쌌다. (메릴 에프 웅거,
웅거의 성경 사전, “바벨론”, 116쪽)
그러나 바벨론에서 성벽만이 놀라운 건축물은 아니었다.
정치적인 동맹의 일부로 느부갓네살은 아미티스라는 페르시아의
공주와 결혼하였다. 에크바타나를 두르고 있는 고산 지대에서 자란
그녀는 바벨론의 평면적인 평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은 아내의 마음을 잡기 위하여 바벨론의 성곽 안에
고산의 낙원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고대사에서 칠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공중 누각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 공사의
거대함은 가히 놀랄 만하다. 팰로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중 누각]은 왕후 아미티스가 그녀의 고향 에그바타나 주변의
언덕에서 즐겼던 고산의 정취를 얻고자 하는 소원에 맞추어 지은
느부갓네살의 아내에 대한 헌신이라 하겠다.”
“바벨론은 온통 평지였다. 이같은 엄청난 인공 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양면에 93미터 높이 성벽보다 높은 124미터
높이의 테라스가 세워졌다. 테라스에서 테라스로 오르는 길은
연결된 상승 계단으로 이어지고, 테라스 자체는 보통 지주로
받혀져 있으며, 궁륭식 형태의 그것은 일정한 높이로 서로 이어져
있고, 전체는 7미터 두께의 벽에 이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각
테라스 또는 정원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교각의
꼭대기는 5미터 길이와 1.24미터 넓이의 평평한 돌 위에
놓여있다. 이 돌 위에 깔개 판이 놓이고, 그 다음에 두꺼운
역청(아스팔트)을 깔고 그 위에는 두겹의 벽돌 층을 쌓는데,
그것은 단단한 납으로 쌓은 것이었다. 이러한 기초 위에 흙을
쌓았다. 그리고 큰 나무의 뿌리가 뻗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대형의 구멍이 뚫린 기둥을 세워 그 안에 기름진 옥토를 채웠다.
기초에서 가까이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에서 기계로 물을 끌어
올렸다. 그곳을 멀리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산에 난 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고 큐 커티우스는
말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그 같은 큰 일을 마치고, 그의 집에서
쉬면서 왕궁에서 번성하였다.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다니엘 4:30)
이것은 이교도의 작가들의 설명으로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왕이
그의 궁정의 정원의 가장 높은 테라스를 걸을 때만큼,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가 건축하고 꾸민 놀라운 성읍을 한 눈에 볼 수
없었다.”(성서 백과사전, “바벨론”, 204~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