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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희생

by 높은산 언덕위 2021. 5. 21.

후기 성도들은 복수결혼이 시행되던 시대에 현세와 영원을 위한 인봉과 영원만을 위한 인봉을 구분했다. 현세와 영원을 위한 인봉에는 일반적으로 성적인 관계의 가능성을 비롯한 이생 동안의 약속과 관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영원만을 위한 인봉은 다음 생에서의 관계만을 가리켰다.

증거에 따르면 조셉 스미스는 이 두 종류의 인봉에 참여를 했다. 증거가 단편적인 까닭에 조셉의 생애 동안 그에게 인봉된 여성의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셉 스미스에게 인봉된 일부 여성은 후에 그 결혼이 현세와 영원을 위한 것이라고 증언한 반면, 다른 여성들은 그들의 관계가 영원만을 위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조셉 스미스에게 인봉된 여성의 대부분은 인봉될 당시의 나이가 20세에서 40세 사이였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패니 영은 56세였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헬렌 마르 킴볼은 조셉의 가까운 친구 히버 시 킴볼과 빌리트 머레이 킴볼의 딸로서 15세 생일을 맞기 몇 개월 전에 조셉에게 인봉되었다. 오늘날의 표준으로는 그런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보이지만, 그 시대에는 합법적이었으며 일부 여성은 10대 중반에 결혼하기도 했다. 헬렌 마르 킴볼은 조셉에게 인봉된 것이 “영원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그 관계에 성적인 관계가 관여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조셉이 죽자 헬렌은 다시 결혼했으며 조셉과 복수결혼에 대한 분명한 옹호자가 되었다.

조셉 스미스는 루이자 비먼과의 결혼에 이어 다른 독신 여성과 결혼하기 전에도, 이미 결혼한 여러 여성에게 인봉되었다. 이 인봉에 관해서는 몇몇 여성이 자신들의 인봉은 영원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을 뿐, 이 여성들이나 조셉이 설명한 내용은 거의 없다. 다른 여성들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들의 인봉이 현세와 영원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영원만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행위에 관해서는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이 있다. 이런 인봉은 교회 내 조셉의 가족과 다른 가족 사이에 영원한 유대 또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길을 제공했을 것이다. 이런 결속 관계는 부모로부터 자녀로 수직적으로, 한 가족으로부터 다른 가족으로 수평적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이런 영원한 유대는 개인의 성전 결혼을 통해 성취되며, 이들은 자신의 친가족에게도 인봉된다. 이런 방법으로 가족들은 함께 연결된다. 조셉 스미스가 이미 결혼한 여성에게 인봉된 것은 한 가족을 다른 가족과 연결하는 초기의 형태였을 것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나부에서는 대부분의 첫 남편이 조셉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내들과 함께 같은 집에서 계속 생활한 것으로 보이며 문서상의 기록에는 조셉 스미스와의 이런 인봉에 대해 불평한 내용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이런 인봉은 아내 에머에게 찾아올 슬픔 때문에 조셉이 복수결혼을 망설인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그는 결혼한 여성과의 인봉이 일반적인 결혼 관계를 맺지 않고도 주님의 명을 따르는 방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로렌조 스노우에 따르면, 이 점은 천사가 조셉이 복수결혼을 한 후에도 이에 관해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는 그를 왜 나무랐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이 해석에 따르면, 조셉은 이 질책을 들은 후에야 주로 독신 여성과의 인봉으로 되돌아왔다.

또 다른 가능성은 수명이 지금보다 짧았던 시대에 신앙심이 깊은 여성이라면 신권 역원에게 인봉되어야 한다는 긴박감을 느꼈으리라는 점이다. 이런 여성 중 몇 사람은 비몰몬 아니면 전에 몰몬이었던 사람과 결혼했으며, 그 여성들 중 한 명 이상이 후에 당시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여성들은 이혼이 어려운 시기에 살았기에 조셉 스미스에게 인봉되면 다른 방법으로는 다음 생에서 받을 수 없는 축복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조셉 스미스와 복수결혼으로 결합한 여성들은 그들의 문화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원리를 따름으로써 평판과 자존심에 위험을 무릅써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쉽게 오해를 받았다. 지나 헌팅턴 제이콥스는 이런 말을 했다. “다시는 영예로운 여성으로 비치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못했기에 저는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을 치른 셈이죠.” 그럼에도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경전을 탐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겸손히 기도하여 나 스스로 간증을 얻었다.” 조셉이 죽은 후, 그에게 인봉된 대부분의 여성은 성도들과 함께 유타로 이주해 교회의 충실한 회원으로 남았으며 복수결혼과 조셉을 옹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