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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신앙을 시험해야 했던 일 중 가장 힘든 시련

by 높은산 언덕위 2021. 5. 21.

여러 해가 지난 후 유타에서는 나부에서 복수결혼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어떤 동기에서 이를 시행했는지 논의했다. 하나님은 몰몬경에서 일부일처제가 표준이라고 선포하셨지만, 때로는 그의 백성이 “[그분을] 위하여 자손을 일으킬” 수 있도록 복수결혼을 명하셨다. 복수결혼은 실제로 믿음이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의 수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부 성도는 또한 복수결혼을 희생과 영적 정련이라는 구속의 과정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헬렌 마르 킴볼에 따르면, 조셉 스미스는 “이 원리를 실천하는 것이 성도들의 신앙을 시험해야 했던 일 중 가장 힘든 시련이었다”라고 언급했다 한다. 헬렌은 그것이 비록 그녀의 인생에서 “극심한” 시련 중의 하나이기는 했으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이기도 했다고 간증했다. 헬렌의 부친인 히버 시 킴볼은 이에 동의했다. 그는 1841년에 복수결혼에 대해 들었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보다 더 슬픈 적은 없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흐느껴 울었죠. …… 좋은 아내를 두었기에 그것으로 만족했거든요.”

그런 가슴 저미는 시험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은 일반적으로 간절한 기도와 깊은 묵상을 한 연후에야 할 수 있었다. 브리검 영은 복수결혼에 관해 배운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인생에서 죽기를 바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기도했고 신앙을 행사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알려주셨고 저는 납득이 되었습니다.” 히버 시 킴볼은 아내인 빌리트가 복수결혼이 옳다고 확인해주는 시현을 본 경험을 한 후에야 위안을 얻었다. 빌리트의 딸은 후에 이렇게 회상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그 시현을 설명하며 자기는 납득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안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매우 행복해 하셨다더군요.”

루시 워커는 조셉 스미스가 아내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 겪었던 마음의 혼란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영혼의 모든 감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밤을 무릎 꿇고 기도하며 편안히 잠을 이루지 못한 후, 방안이 “밝은 햇빛 같은 거룩한 영향력으로 가득 차자”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고요하고 감미로운 안도감이 내 영혼을 채우고 최고의 행복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후기 성도들은 복수결혼의 원리를 거부하고 교회를 떠났으며 다른 사람들은 이를 시행하지는 않았으나 충실하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많은 남녀에게 혐오감과 고뇌를 안기던 것이 갈등과 결심으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빛과 평안으로 바뀌었다. 성도들은 성스러운 경험을 통해 신앙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