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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경제적이나 낭만적인 이유보다는 더 종교적인 이유

by 높은산 언덕위 2021. 5. 20.

서구 역사에서 오랫동안, 가족의 “이익”,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고려가 배우자 선택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부모는 결혼을 성사시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결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17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로맨스와 개인의 선택이 이런 전통적인 동기나 관행과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조셉 스미스의 시대에는 조셉과 에머가 에머 부모의 뜻을 거슬러 함께 달아났듯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주장하는 남녀가 많았다.

후기 성도들의 복수결혼에 대한 동기는 경제적이나 낭만적인 이유보다는 더 종교적인 이유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순종하겠다는 소망 외에도 하나님의 면전에서 가족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강한 자극제가 되었다. 주님은 결혼에 관한 계시에서 그 결혼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면류관”과 “영원한 세상에서의 승영”을 약속하셨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조상과 후손은 서로 “인봉되고” 땅에서 집행된 신권 의식은 “하늘에서 매이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에 따라 그들이 맺은 약속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나부에서의 첫 번째 복수결혼은 루이자 비먼과 조셉 스미스가 1841년 4월에 인봉될 때 행해졌다. 조셉은 여러 여성을 아내로 맞이해 결혼했으며 다른 후기 성도들이 복수결혼을 시행하는 것을 승인했다. 처음에 이러한 행위는 느리게 퍼져나갔다. 1844년 6월에 이르러 조셉이 사망할 당시에는 조셉과 그 아내들 외에도 약 29명의 남자와 50명의 여자가 복수결혼을 했다. 1847년에 성도들이 솔트레이크밸리에 들어갔을 때에는 적어도 196명의 남자와 521명의 여자가 복수결혼을 했다. 이러한 초기 복수결혼 참여자들은 이에 관여한 사실을 비밀로 하겠다고 서약했으나 이 행위가 공개적으로 인정될 시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소문은 퍼져나갔다. 일부 사람은 “영적 아내”라고 칭하는 승인되지 않은 행위에 가담하도록 여성들을 꾀는 데 이런 소문을 부도덕하게 이용했다. 이런 사실이 발각되면 그 남성은 교회에서 파문되었다. 이런 소문에 자극받은 지도자와 회원들은 이를 부인하는 글을 조심스레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영적 아내 및 일부다처제를 비난하는 글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조셉 스미스와 그 밖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해의 왕국의” 복수결혼으로 간주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 진술들에는 교회가 일부일처제 외에는 결혼에 관한 다른 율법을 시행하지 않는 점이 강조되어 있으면서도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내리는 지시 아래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함축적으로 열어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