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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첫 번째 시현 기록에 관한 논쟁

by 높은산 언덕위 2021. 5. 12.

첫 번째 시현 기록의 수와 다양성으로 인해 일부 비평가들은 조셉 스미스의 설명이 그의 실제 경험과 일치하는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왔다. 그의 신뢰성에 관해 빈번하게 제기되는 두 가지 반론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그 사건에 관한 조셉 스미스의 기억력을 문제 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이야기에 무언가를 덧붙여 꾸며내지나 않았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기억. 조셉 스미스의 첫 번째 시현 기록들에 관해 제기되는 한 가지 이의는 1820년 뉴욕 주 팔마이라와 그 인근 지역에서 있었던 종교적 부흥에 대한 조셉 스미스의 기술에 역사적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로써 시현에 대한 기록 자체와 이례적인 종교적 열기에 대한 조셉의 주장이 모두 신빙성을 잃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종교적 부흥 운동에 관한 조셉 스미스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 서류가 있다. 그가 살았던 지역은 종교적 열기로 유명해져서 의심할 나위 없이 종교적 부흥 운동의 온상이 되었다. 역사가들은 그 지역을 “불타는 지역”이라고 지칭했는데, 이는 1800년대 초 부흥회를 열고 개종자들을 찾던 목사들로 인해 그 지역이 북새통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1818년 6월 한 감리교 부흥회가 팔마이라에서 열렸고, 이듬해 여름에는 감리교도들이 스미스 가족 농장에서 약 24km 정도 떨어진 뉴욕 주 비엔나(현 펠프스)에 다시 집결했다. 한 감리교 순회 목사의 일지에는 1819년과 1820년 조셉이 거주하던 지역에서 있었던 크나큰 종교적 열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감리교 부흥 목사인 조제 레인은 1819년과 1820년 모두 그 지역에서 “종교 개혁을 초래하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말씀했다. 이 역사적 증거는 조셉의 묘사와 일치한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일어났던 이례적인 종교적 열기가 “감리교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셉은 감리교에 “어느 정도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윤색. 조셉 스미스의 첫 번째 시현 기록에 대해 자주 제기되는 두 번째 반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이야기를 윤색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두 가지 세부 사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조셉 스미스가 봤다고 진술한 신성한 존재의 숫자와 정체이다. 조셉의 첫 번째 시현 기록들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신성한 존재들에 대해 더욱 상세한 사항이 더해진다. 1832년 기록에는 “주님께서 내게 하늘들을 열어 주시어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나와 있으나, 1838년 기록에는 “나는 …… 두 분……을 보았고”, 그 중 한 분이 다른 한 분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소개하셨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비평가들은 조셉 스미스가 처음에는 한 분 즉 “주님”을 보았다고 시작했다가 결국 아버지와 아들 두 분을 다 보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증거를 바라보는 좀 더 일관적인 방식이 있다. 일단 기록 전반에 걸쳐 기본적인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네 개의 기록 중 세 개의 기록에는 첫 번째 시현에서 조셉 스미스에게 두 분이 나타나셨다는 점이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조셉 스미스의 1832년 기록은 한 분을 지칭한다고 볼 수도 있고, 두 분을 지칭한다고 볼 수도 있다. 거룩한 존재 한 분을 지칭한다고 보면, 그분은 조셉의 죄를 용서했던 분일 것이다. 나중 기록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나타나신 거룩한 분은 조셉 스미스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런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용서에 관한 메시지가 포함된 주된 메시지를 전하셨다. 그렇다면 조셉 스미스의 1832년 기록은 용서를 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1832년 기록을 대하는 또 다른 방식은 조셉 스미스가 두 분을 모두 “주님”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이다. 그가 기록을 윤색했다는 주장은 1832년 기록이 오직 한 분의 거룩한 존재만이 나타났다고 기술하고 있다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1832년 기록에는 한 분 만 나타나셨다고 나와 있지는 않다. “주님”에 대한 두 가지 지칭은 시기에 따라 구별된다. 첫 번째 “주님”은 하늘을 열어 주시고, 그런 다음 조셉 스미스는 “주님”을 본다. 이 기록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한 분이 먼저 나타나신 다음, 곧 이어 다른 한 분이 나타나셨다는 조셉의 1835년 기록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1832년 기록은 조셉 스미스가 한 분을 본 다음, 다른 한 분이 나타나셨으며, 그는 두 분을 모두 “주님”으로 지칭했기에 “주님께서 내게 하늘을 열어 주시어 내가 주님을 보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셉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게 된 것은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에 바탕을 둔 통찰력이 쌓인 증거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1832년 기록과 그 이후 기록 간의 차이점은 부분적으로 문어와 구어 간의 차이와 다소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1832년 기록은 조셉 스미스가 처음으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그해 그는 친구에게 “종이와 펜과 잉크, 그리고 왜곡되고 거칠고 산만하고 불완전한 언어”에 속박된 듯한 느낌이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는 문자로 표기하는 언어를 “좁은 감옥”이라고 칭했다. 나중의 기록들이 조셉 스미스에게 쉽고 편한 방법이며 좀 더 쉽고 유창하게 말을 이어 갈 수 있는 구술 형식의 기록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 기록들의 양이 늘어난 것은 좀 더 쉽게 이해될뿐더러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