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포드 우드럽이 좋아한 소일거리 중 하나는 낚시였다. 영국에서 부친의 제재소의 동력이 된, 송어가 뛰노는 강과 로키 산맥에 있는 강에서 윌포드 우드럽은 낚시를 하면서 큰 즐거움을 누렸다. 그는 영국에서 인조 미끼로 낚시질하는 법을 배웠으며, 후에는 초기 개척자들 중에서 최고의 제물낚시꾼 중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우드럽 회장은 1892년 85세 때, 유타 주의 유인타 산에서 휴식 야영을 한 후에 Forest and Stream 잡지사에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그는 낚시에 대한 흥미에 관해 추억을 얘기했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소유로 된 제분소와 제재소에 동력을 제공한, 송어가 뛰노는 개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낚싯대를 들고 다닐 만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송어를 잡기 시작했으며, 이따금씩 낚시질을 계속하여 거의 80년 가까이 했습니다.” “나는 몇 년 동안 온타리오 호수 동편에 있는 뉴욕 주 오스웨고 군 애쉬랜드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나는 하루 아침에 500마리의 연어를 잡는 일을 도왔는데, 그 중 9킬로그램 이하는 거의 없었던 반면 상당수는 18킬로그램이 넘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송어와 연어를 잡고자 제물낚시를 사용한 것은 1845년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였습니다.”“Utah Fish and ( Game Notes”, Forest and Stream, 1892년 9월 22일,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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