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느 특별한 날, 즉 부활절 전 일요일인 1966년 4월 3일의 한 전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로부터 거의 42년 전이었습니다. 우리 보병 대대는 여러 달 동안 베트남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저는 중위로 소총소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우리는 작전에 거의 끊임없이 참여했습니다. 우리 대대는 그날도 적진 깊숙한 곳에서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일찌감치 약 열명의 정찰대를 내보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아서 모리스라는 병장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총격전에서 부상을 당했는데, 그 중 모리스 병장도 가벼운 부상을 입었습니다. 결국, 정찰대는 절뚝거리며 우리 진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무전을 쳐서 의료 후송 헬리콥터를 요청했습니다. 부상자들을 헬리콥터에 태우면서 저는 모리스 병장에게 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는 주저했습니다. 다시 제가 재촉했습니다. 다시 그는 주저했습니다. 저는 다시 타일렀고, 그는 다시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모리스 병장, 헬리콥터에 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저를 보면서, “제발, 소대장님, 적군은 저처럼 튼튼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말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글 엄호, 진동하며 돌아가는 헬리콥터의 회전날개, 빨리 결정하라고 저를 쳐다보는 조종사,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남기를 간청하는 부하 등 전체적인 모습이 전투 상황처럼 제 마음속에 지금도 각인되어 있습니다. 제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저는 다음에 오라며 헬리콥터를 떠나 보냈습니다.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제 사랑하는 친구 아서 사이러스 모리스 병장은 적군의 거센 총격을 받아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적군은 저를 죽일 수 없습니다.”라는 그의 외침이 제 마음속에서 거듭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필멸의 생은 너무도 연약합니다. 오직 한 번의 심장 박동, 즉 한 번의 숨쉬기가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을 가릅니다. 어느 한 순간에 제 친구는 살아 숨쉬는 사람이었다가, 다음 순간에 그의 불멸의 영은 떠나고 필멸의 육신은 생명 없는 한 줌의 흙덩이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아서 모리스 병장처럼 모든 사람이 통과해야 하는 휘장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언제 그런 통과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앰율레크는 이 심오한 진리를 몰몬경에서 이와 같이 가르쳤습니다.
“이는 보라, 이 생은 사람들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할 시간이라. 참으로 보라 이 생의 날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수행할 날이니라.(랜스 비 위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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