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은 무언가를 얻어서 쌓아 놓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베풀고 발전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필멸의 생은 공의와 자비가 맞붙는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공의와 자비가 적으로서 대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두 가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구하고 베푸는 것, 즉 회개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애를 베푸는 것은 오직 여러분과 제가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은 구주께서 열어 놓으신 문을 통과하여 이생에서 승영으로 가는 문지방을 넘어가도록 해 줍니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시간이며, 그렇게 한다면 주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시간입니다. 누가는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의미심장하게 기록했습니다.(누가복음 6:36) 우리가 이곳에서 온전하게 될 수는 없겠지만,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결국, 회개하고 또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주요 사항 중의 하나입니다.(랜스 비 위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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