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왕국의 결혼652 32세의 나이에 사도로 부름 받았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는 1906년 32세의 나이에 사도로 부름 받았으며, 63년 이상 봉사했다. 그가 1951년에 교회 회장이 되었을 때, 교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일이 일어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첫째, 세상의 좀 더 넓은 지역에 주요 세력으로서 교회를 세우고, 둘째, 교회 회원들이 복음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의 많은 프로그램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성전들이 스위스(1955년), 뉴질랜드(1958년) 및 영국(1958년)에서 헌납되었다. 미국 이외 지역의 많은 교회 회원들이 성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교회 회원들의 칭송과 헌신을 얻은 것 외에도,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은 그의 탁월한 영향력에 대해 많는 단체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생애 동안 그는 여러 대학에서 명예 .. 2020. 7. 13. 영혼의 그 고귀함이 그 지식과 더불어 없다면 데이비드 오 맥케이는 처음에 유타 주 헌츠빌에 있는 학교에 다녔으며 8학년을 마친 다음, 유타 주 옥든에 있는 위버 스테이크 아카데미에서 2년 동안 공부한 후, 헌츠빌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왔다. 후에 그는 유타 대학교에 등록했으며 1897년 졸업식에서 고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선교 사업을 마친 후, 그는 1899년에 위버 스테이크 아카데미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02년에는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나는 교사들에게 여러 번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반원들을 가르칠 때 그들에게 한 가지 생각, 새로운 한 가지 생각만이라도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그들이 만족스런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생각을 전해 줄 준비를 하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Gospel .. 2020. 7. 13. 사탄이 너를 요구한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는 영국에서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으며 선교 사업 기간의 대부분을 그가 어렸을 때 그의 부친이 봉사한 곳과 같은 나라인 스코틀랜드에서 보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있었던 대회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진 후에 있었던 신권 모임은 가장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임에서 느낀 강렬한 영감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모두가 강한 주님의 영을 느꼈습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한 감정은 제가 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의심 많은 청소년기에 목장과 언덕 위에서 홀로 마음을 다해 드렸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 일은 제게 진지한 기도는 언제 어느 곳에선가 응답된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 “그러한 분위기에.. 2020. 7. 13.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소년 시절 주일학교에 참석했던 집회소 연단 위에는 고인이 된 존 테일러 회장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금빛 글씨로 기억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소감은 내가 그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여러 해 전 아이에 불과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나는 일찍이 다른 교회나 조직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특징 짓는 온전함이나 신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그것을 직감으로 느꼈고, 청소년 시절에는 철저히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오늘날은 그것을 내 영혼의 확고한 확신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Cherished Experiences from the Writings of Pre.. 2020. 7. 13. 이전 1 ··· 86 87 88 89 90 91 92 ··· 1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