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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교회사·경전 안내 281

킨더훅 판 1843년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일리노이주 킨더훅 근처에 있던 아메리칸 인디언의 무덤에서 높이 7.5cm가량의 종 모양으로 된 놋쇠판 여섯 점을 발굴했다. 이 판에는 고대의 문자를 닮은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무리 중 한 사람은 조셉 스미스가 이것을 번역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유물이 발견되자 조셉 스미스를 비롯한 일리노이의 후기 성도들이 강한 호기심을 보였으나, 이는 일시적인 동요에 그쳤을 뿐 번역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놋쇠판 발굴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은 나중에 그 모든 일이 장난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윌버 퍼게이트는 자신과 로버트 윌리, 그리고 지역의 대장장이가 놋쇠판을 위조하여 발굴 전날 밤에 무덤에 묻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남아 있는 판 한 점을 화학적, 야.. 2020. 10. 22.
결과적으로 많은 성도가 재정난을 겪었고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 1836년 가을,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은행을 설립하기로 했다. 당시에 커틀랜드보다 더 작은 지역의 주민들이 그랬듯이 커틀랜드 성도들도 자신들만의 은행을 원했다. 주민들의 자산이 주로 토지에 묶여 있던 농업 중심 사회에서 현지 은행은 필요할 때 대출을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을 촉진하기 위해 은행권을 화폐처럼 유통시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초기 성도들이 가졌던 경제 성장의 목표에는 개종자들의 집합 장소로서 도시를 확장하고,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난 미주리 성도들을 돕고, 복음을 널리 전하고, 궁극적으로 시온을 세우는 종교적 목적도 다분히 있었다. 1836년 10월, 성도들은.. 2020. 10. 22.
짓기전에 시현으로 이 건물을 보았다 커틀랜드 성전 1833년 8월 계시에서, 주님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있는 후기 성도들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나의 집에서 시작하여 이곳 커틀랜드 땅에 시온의 스테이크의 도시 설계 작업과 그 시작과 기초를 준비하는 작업을 시작할지니라.” 이후 3년 동안 성도들은 훗날 커틀랜드 성전으로 알려진 주님의 집을 짓는 데 많은 시간과 재능을 바쳤다. 당시 제일회장단이었던 조셉 스미스, 시드니 리그돈,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는 1833년에 시현으로 이 건물을 보았고, 7월 23일에 열린 정초식을 감리했다. 계시된 설계도에 따르면 건물 내부는 가로 16미터, 세로 19미터 가량 되었으며, 1층에는 성찬 집행, 설교, 금식, 기도를 위한 커다란 방이 있었고, 2층에는 장로들의 학교를 위한 큰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외관.. 2020. 10. 21.
며칠 만에 한 달치 급여보다 더 많은 사금을 모았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일단의 몰몬 대대 퇴역 군인들은 유타의 후기 성도들과 합류하려던 중에 브리검 영으로부터 솔트레이크밸리에 식량이 부족하므로 한동안 캘리포니아에 남아 일자리를 찾아보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들은 아메리칸강 남쪽 지류의 콜로마에 있는 존 서터의 제재소 공사 일자리를 찾았다. 서터 제재소에서 사금이 발견된 장면을 그린 벌로이 이턴의 그림 1848년 1월의 어느 아침, 서터의 동업자인 제임스 마셜은 물레바퀴 수로 제작을 시찰하던 중 방수로에서 어떤 알갱이를 발견했다. 마셜이 알갱이들을 모자에 담아 다른 일꾼들에게 보여 주자, 사람들은 알갱이를 집어서 깨물고, 망치로 두들기고, 불에도 넣어 보았다. 그들은 이런저런 시도 끝에 그 알갱이가 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몰몬 대대의 퇴역 군인 중 한 명인.. 2020.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