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교회사·경전 안내 281

협동조합 운동 협동조합 운동 1860년대에 있었던 미국 남북전쟁 이후, 미국 동부에 근간을 둔 사업체들은 점차 규모가 커지는 서부 상권에 주목했다. 브리검 영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은 은행가와 상인들이 변방에 있는 유타의 경제적 특성을 이용해 시장에 외지 상품들을 다량으로 들여오고, 물가를 상승시키고, 일부 현지 생산자들을 위협할 것을 우려했다. 브리검 영은 계시로서 주어진 원리들, 즉 헌납과 청지기 직분, 성도들이 서로에 대해 성약으로 맺은 의무를 토대로 유타의 경제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는 이러한 원리가 교역과 노동의 도덕적 근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이윤 추구를 우려했다. 이윤을 좇다 보면 극소수만 배 불리게 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빠르게 뻗어나가는 철도 체계를 발판으로 더 많은 외부 사업이 지역 사회로.. 2020. 10. 27.
협동교단 협동교단 1860년대에 유타준주에 거주하던 브리검 영은 유타까지 철길이 놓이면 새로운 교역이 열리고 서부 경제가 변동될 것으로 내다봤다. 브리검 영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물건의 가격을 적정선으로 유지하고 현지 생산자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후기 성도 상인과 상품 공급자 사이에 독점적인 협동조합 체제를 마련했다. 이렇게 구축된 협동조합 체제는 일부 외부 상품의 유입을 제한하는 데 한시적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나, 1870년대에 지역 경제가 자급자족으로 충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필요한 물건을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1873년에 일어난 공황 시세로 브리검 영이 우려한 여러 가지 일은 현실이 되었다. 준주 전역에 부채와 도산이 급격히 늘어났고, 단.. 2020. 10. 27.
이 일이 하나님의 사업임을 스스로 알 수 있었음이 진심으로 기쁘다 헬렌 마어 킴볼 휘트니 1828년, 히버 시와 빌리트 머리 킴볼 사이에 태어난 헬렌 마어 킴볼은 회복의 초창기에 일어난 많은 일을 목도했다. 헬렌이 세 살일 때 그녀의 부모는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침례를 받았다. 그 친구들은 브리검 영의 가족이었다. 후에 헬렌은 이 두 가족이 마치 “한 가족” 같았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두 가족이 성도들과 집합하기 위해 함께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로 이주한 뒤 헬렌은 “브리검 삼촌”에게 침례를 받았다. 헬렌은 일요일 오후면 커틀랜드의 숲에서 열리는 성경 수업에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헬렌의 아버지인 히버는 1835년에 사도로 성임되어 자주 선교 사업을 떠났다. 헬렌은 아버지가 없는 동안 어머니를 도와 집안을 돌봤고, 이런 상황은 헬렌이 아홉 살 때 가족이 미주리주.. 2020. 10. 27.
헌납과 청지기 직분 기독교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수 세기 동안, 많은 무리가 사도행전에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언급된 신약 시대 기독교인들의 모범을 따르려고 했다. 조셉 스미스는 계시를 통해 이러한 방식의 삶이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30년 여름, 조셉은 영감으로 성경을 번역하던 중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그들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었”던 고대 에녹의 도시에 관하여 받은 계시를 기록했다. 그다음 해 1월, 조셉 스미스는 뉴욕에서 그곳에 있는 후기 성도들을 오하이오주로 이주시키라는 계시를 받았다. 주님께서는 오하이오에서 “너희에게 나의 율법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오하이오에서는 “가족”으로 알려진 새로운 개종자 무리가 루시와 아이잭 몰리 부부의 농장에 살면서.. 2020.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