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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교회사·경전 안내 281

초기 미국인들 폭도의 폭력 자경주의 1830년대와 1840년대 내내 후기 성도들은 오하이오, 미주리, 일리노이에서 폭도들로부터 상당한 박해와 괴롭힘을 받았다. 당시 많은 집단이 그런 대우를 받았는데, 성도들은 그러한 여러 집단 중 하나였다. 여러 지역 사회에서는 정부와 법원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여길 때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시행하기 위해 타르를 칠하고 깃털을 꽂는 등 여러 형태의 자경단 활동을 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초기에 많은 미국인은 특히 국경 지역에서 자행되는 이런 형태의 폭력을 애국과 자기 보호를 위한 행위로 여겼다. 초기에 후기 성도를 대상으로 자행된 잘 알려진 자경단 폭력의 사례로는 오하이오와 미주리에서 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에게 타르를 칠하고 깃털을 꽂았던 일, 1833년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교회 인쇄소를 파괴한.. 2020. 10. 8.
일리노이주 퀸시 정착촌 일리노이주 퀸시는 몰몬 역사에서 후기 성도 난민들이 1839년에 미주리에서 쫓겨난 후 이주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퀸시 주민들이 몰몬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1834년과 1838년 사이에 미주리로 가던 후기 성도 무리가 그 마을을 지날 때였다. 1838~1839년 겨울에 미주리에서 쫓겨난 몰몬들 중 동쪽으로 향하던 수천 명의 성도들은 얼어붙은 미시시피강을 건너 퀸시에 일시적으로 정착했다. 날씨가 풀리자, 나룻배가 다시 다닐 때까지 카누 등의 작은 배를 타고 사람들이 강을 건너왔다. 몰몬 난민들이 도착하자, 퀸시의 인구는 1835년에 800명에서 1840년에는 2,300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퀸시 민주협회는 미주리 주민들이 성도들에게 했던 부당한 처사를 공공연히 비난하며 몰몬 난민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 2020. 10. 7.
일리노이주 나부에서 생긴 일들 1830년대 후반에 미주리주에서 쫓겨난 후기 성도들은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인 퀸시와 그 주변에 피난처를 세웠다. 그들은 두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즉, 함께 모여서 다시 도시를 세우고 박해를 무릅쓰든지, 아니면 대립을 피하기 위해 인구가 더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살아야 했다. 조셉 스미스는 모여 사는 것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라는 계명을 신뢰했기에 교회 지도자들에게 아이잭 갤런드에게서 대규모의 토지를 구입하게 했다. 그 땅은 미시시피강 옆에 있었으며,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인 커머스도 그 땅의 일부였다. 성도들은 곧 습지에 배수로를 만들고, 농작물을 심고 과수원을 가꾸며, 가옥과 도로를 건설하고, 사업체를 설립하고, 미국 전역과 영국에서 밀려드는 이민 개종자들을 맞아들였다. 조.. 2020. 10. 7.
그는 성전 의식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끝까지 충실하였다 일라이자 에이블 일라이자 에이블(아벨 또는 에이블스라고 표기되기도 함)은 초기 교회 회원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으며, 조셉 스미스의 생애 동안 신권에 성임되었던 몇 안 되는 흑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에이블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1808년부터 1812년 사이에 메릴랜드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부모의 이름은 불분명하다. 그의 부모는 서로 인종이 달랐던 것 같다. 1850년 미국통계국의 자료에는 에이블의 조부모 중 한 명이 흑인이었다고 나와 있으며, 그보다 더 나중 자료에 따르면 그의 조부모 중 한 명이 흑인이었다고 한다. 에이블은 미국이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시기에 성장했다. 남부 주에서는 아프리카 흑인 혈통을 지닌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것이 허용되었다. 북.. 2020.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