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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예수 ·속죄

구주의 이타적이고 거룩한 희생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3.

우리는 모두 영적인 빚을 지며 살아갑니다. 어떤 식으로든 부채는 쌓여 갑니다. 하지만, 갚아 나간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절제를 배움으로써 부채를 미리 청산해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이자와 벌금을 물어야 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정기적으로 영적인 빚을 갚아 나가는 법을 익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시험받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실수를 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후회스러운 일, 또 바로잡기는커녕 사죄조차 할 수도 없는 일들을 했을 것이며, 그래서 마음에 짐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죄책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입니다. 이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는 잉크 얼룩처럼 쉽사리 씻기지 않습니다. 죄책감에는 실망, 즉 축복과 기회를 잃은 것에 대한 후회가 뒤따릅니다.여러분이 지금 죄책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몰몬경의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 예언의 영과 계시의 영을 믿지 않기 시작하였으며,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의 눈 앞에 다가왔더라.”(힐라맨서 4:23)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또 우리자신에게 그리 큰 일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죄책감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해 버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압니다. 또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그렇게 믿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선지자들은 늘 회개를 가르쳤습니다. 앨마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보라, 그는 그의 이름을
믿는 신앙을 통하여, 회개에 이르는 침례를 받을
자들을 구속하시려고 오시리라.”(앨마서 9:27)
또 앨마는 바른 길에서 벗어난 아들에게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이제 영혼의
생명과도 같이 영원한 형벌이 없이는 사람들에게
회개가 임할 수 없었나니, …… 영원한 행복의
계획에 대한 반대로써 부가된 것이니라.”(앨마서
42:16)
필멸의 생에는 두 가지 기본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의지가 있다면 이 육신은 정결하게 되고 우리는
승영하여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시험받기 위해서입니다. 시험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 잘못을 범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의지가
있다면, 잘못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1서 1:10)
여러분은 정신과 육체적인 면에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만기가 지난” 영적 부채의 무게로
힘들어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조용한 묵상의
순간에 내면을 들여다보면, 해결되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는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리 대다수는 이런 시간을 애써 피하려 합니다)
양심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지 않습니까? 크든
작든, 어느 정도 여전히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희는 비극적인 잘못을 범하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편지를 너무나 자주 받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묻습니다. “제가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요?” 답은
물론 ‘예’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복음은 회개를 통해 비탄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스스로 멸망을 택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크든 작든, 완전한 용서의 약속에서
제외되는 습관이나 중독, 반항이나 범법, 또는
범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여러분이 성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돌아올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도 강렬한 충동, 마음속에
맴도는 유혹에 깊이 빠져 결국은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중독에 이릅니다. 우리는 범법하거나
죄를 짓기 쉬우며, 원래 그렇게 태어났기에 죄가
없다고 합리화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다 함정에
빠져 구주가 아니면 치유할 수 없는 고통과
비탄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멈출 수 있고
구속받을 힘이 있습니다.
사탄은 가족을 공격합니다.
매리온 지 롬니(1897~1988) 회장님은 언젠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지만 말고 오해하지
않도록 말씀하십시오.”니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이 명백함을 기뻐함이니, 이 같은 방법으로 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서 일하심이라. 이는 주 하나님께서는 이해력에 빛을 주심이니”(니파이후서 31:3).
새겨 들으십시오! 저는 명백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부름과 의무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사탄은 경전에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악마요 모든 거짓의 아비인 저 옛 뱀이라.”(니파이후서 2:18). 사탄은 태초에 쫓겨났으며(교리와 성약 29:36~38 참조), 육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위대한 행복의 계획”(앨마서 42:8)을 좌절시키고 모든 의의 원수가 되겠다고 공언합니다. 사탄은 가족을 공격하는 데 집중합니다.
여러분은 외설물이라는 재앙이 세상을 휩쓸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간해서는 이를 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외설물은 생명을 낳는 힘의 원천인 여러분의 본성 일부를 겨냥합니다.
외설물에 탐닉하면 어려움과 이혼, 질병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됩니다. 거기에는 순결한 부분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어떤 형태이든 외설물을 수집하거나 보거나 소지하는 것은 가방에 방울뱀을 넣어 두는 것과 같습니다. 외설물은 영적인 면에서 치명적인 독사에게 물리는 것과 같은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그 끔찍한 결과를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이 원래 그런 곳이니만큼 외설물에 노출되어 그것을 읽고 본다 해서 죄가 될 게 무어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하다면, 멈추라고 경고합니다. 당장 멈추십시오!
몰몬경에는 모든 “사람은 선악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르침을 받았[다]”(니파이후서 2:5)고 나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압니다. 그 선을 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잘못은 주님께 직접 고백하면 되지만, 용서를 받으려면 그 이상이 필요한 범법도 있습니다. 심각한 잘못이라면, 감독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고백이라면 조용히 개인적으로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용서가 즉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처음에 잘못을 범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낙담을 극복해 내는 것도 시험의 일부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일단 죄를 고백하고 버렸다면 절대 뒤돌아 보지 마십시오.
구주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을 여러분의 구속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대신해서 고통을 받고 형벌을 치르신 셈입니다.
필멸의 상태에 있는 우리로서는 주님이 어떻게 속죄의 희생을 치르셨는지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고난을 어떻게 겪으셨는가보다는 왜 겪으셨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주님은 왜 여러분과 저를 포함한 모든 인류를 위해 고난을 겪으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과 온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요한복음 15:13)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에서 사도들 곁을 떠나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주님은 온 세상의 실수와 죄, 죄책감, 의심, 두려움을 자진해서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고통을겪지 않도록 우리를 위해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비탄에 빠졌거나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분의 고통을
능가한 경우는 없습니다.
제 나이가 되고 보니, 육체적인 고통이 무언지
알겠습니다. 달가운 것은 아닙니다. 고통에 관해
무언가를 배우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견디지 못할 만큼 비통합니다. 비로소
그런 때에야 겟세마네 동산에서 구주가 겪으신
고난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주님의 고통은 그전이든 그 이후이든, 다른
모든 고통과는 달랐습니다. 인간에게 이제껏
부과된 모든 벌을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께는 갚아야 할 빚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에게 알려진 모든
죄책감과 슬픔, 고통과 굴욕, 모든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 고통 등을 누적해 그 모든 것을
겪으셨습니다. 인류사에서 전혀 죄가 없고 모든
인류의 죄와 범법을 대속할 자격이 있으며, 대신
값을 지불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주님뿐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바치시며 핵심적으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는 자가
나임이니.”(모사이야서 26:23)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죽음에
동의하신 것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가능하다
한동안 휘청거리거나 길을 잃은 적이
있다면, 또 지금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신앙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세상에서 더는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곁에는 평화와 안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준비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전에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한 후에”(니파이후서 25:23) 받게 될
하나님의 은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제게는
이런 가능성이야말로 알아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진리입니다.
저는 용서의 밝은 아침이 올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립보서 4:7)이 해가 떠오르듯 다시금
여러분의 삶에 임하고, 여러분도 주님도 “다시는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할]”(예레미야
31:34)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알게 될까요?
어쨌든 알게 될 것입니다!(모사이야서 4:1~3
참조)
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분께 이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주님께서 관여하셔서 여러분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필요한
대가를 늘 치러 주신다는 점에서 주님은
매우 친절한 통치자이시지만, 동시에 그분은
여러분이 고통스럽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하며, 또한 그분을 보내
주신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낙담과 죄, 죄책감의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관대한 조건에 따라 부채 계정에 남아 있는 모든
항목에 “완납” 표시가 붙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라고가르치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이사야 1:18~19).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네가 젊었을 때에 지혜를 배우라. 참으로 네가 젊었을 때에 하나님 계명 지키기를 배우라.”(앨마서 37:35)는 성구는 사탄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평강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이 따르는 권유입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됩시다]”(디모데전서 4:12)
여러분의 생애 내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도 이와는 반대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든 미래든, 평안과 신앙을 갖고 버텨 나가겠다는 신념과 낙천적인 자세로 인생의 어려움에 맞서십시오.
받고 싶거나 받아야 할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충실하게 생활하는 한, 구속과 구원에 필요한 어떤 경험 또는 기회도 박탈되지 않을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희망을 품고 인내하며 자주 기도하십시오. 길은 열리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성신의 은사를 통해 인도와 아울러 행할 일을 지시받을 수 있습니다.
잘못의 결과로 죄책감이나 실망감, 또는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거나 축복이 아직 오지 않아 괴로워하는 분이 계신다면, 찬송가 “예수께 오라”에 나오는 다음 가사를 읽고 확신을 주는 가르침을 얻기 바랍니다.
예수께 오라 죄에 시달려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예수가 우릴 편히 쉴 곳에
인도하여 주시리로다
예수께 오라 어둠 속에서
헤맬지라도 살피시네
그의 사랑이 어둔 밤에서
밝은 낮으로 인도하리
예수께 오라 온유한 맘에
사랑 구하면 들으시리
광명한 저 위 하늘 집 천사
가까이 있는 줄 모르뇨1
저는 다른 형제 사도들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희생에서 오는 정결하게 하는 영향력을 제 내면이나 다른 분들에게서 느낄 때마다 그러한 간증은 확고해집니다.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저의 간증은 진실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압니다. 그분은 그분의 선지자, 선견자, 계시자들에게 낯선 분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비록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길을 따라 전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육신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는 육신이 없는 자들을 다스릴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2 사탄은 육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유혹에 직면하더라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져 이 세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선택의지를 행사하여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에게 시키실 일을 하겠다는 소망과 열망을 품고 앞을 내다 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기대하는 바입니다. ◼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 20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