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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선교사업

아시아에서의 특기할 성공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9.


아시아에 후기성도의 선교 손길이 닿은 것은 유럽보다 다소 늦은 1850년대의 일이다. 그러나 개종된 회원수는 선교가 먼저 시작된 유럽에 비하여 더 많다. 더욱이 많은 지역이 불과 반세기 미만의 선교기간에 불과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이 지역 주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열의 때문이었다.

 

아시아에서 선교 대상으로 제일 처음 관심이 집중된 나라는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과 인도였으며 일본은 훨씬 후에 선교가 시작되었다.

 

중국에 관심이 많았던 교회는 홍콩을 중국의 관문으로 간주하여 초기 선교의 노력을 이곳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정작 교회가 먼저 알려진 것은 인도였다. 영국의 선원이던 두 사람의 후기성도가 1850년 인도 캘커타에 들러 교회를 소개한 것을 필두로 1851년에 조셉 리차드 장로가 인도에 들어가 전도하고 침례를 주며 작은 지부를 설립하였다. 그러므로 이 해가 아시아대륙에 후기성도가 들어온 첫해로 기록된다. 그 후로도 선교사들이 인도에 들어갔으나 잇달은 회원들의 이민으로 인하여 선교 활동은 위축되었다.

중국의 관문인 홍콩에는 1853년 중국 본토 선교의 임무를 띠고 세명의 선교사가 도착하여 약 4개월을 머물렀다.

 

그러나 이들 세 선교사는 중국 본토에 들어가는 허락을 얻지 못하고 계획은 좌절되었다. 중국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어 그후 십이사도의 한 사람인 데이비드 오 맥케이(David O. Mckay)가 1921년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선교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아편전쟁 이후 서구인에 대한 혐오와 중국 내부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끝내 선교사업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교회는 중국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과 인도 및 파키스탄 등에 사는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근거지로 홍콩을 지목하여, 1955년에 남극동선교부를 이곳에 세우고 한국, 일본, 그리고 필리핀을 제외한 방대한 아시아 지역에 대한 선교 기지를 삼았다.

 

태국에는 다른 인근 국가보다는 훨씬 빠른 1854년에 처음으로 교회가 소개되어 오늘날 회원수는 4천8백명을 헤아리고 있고,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열도에는 1970년대 초기에야 선교가 시작되었는데 1991년 현재 말레이시아에 5백여명의 회원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는 4천1백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교회는 파푸아 뉴기니에서도 활발한 선교활동을 펴서 1991년 현재 3,00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1963년에 선교사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 10여년 동안에는 선교의 효과가 적었으나 1991년까지는 1천7백여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는 1960년대에 미군성도의 종군과 함께 교회가 소개되어 점진적인 회원의 증가를 보았으며 집회를 여러 곳에서 가지게 되었으나 공산화가 되면서 교회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인도는 힌두교 국가이므로 선교가 어려웠으나 1853년 이후 선교 사업은 1903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선교는 1965년 홍콩 주재 남극동 선교부의 선교사들이 파견되면서부터였다. 1980년에는 2백25명의 회원을 갖게 되었고 1982년에는 몰몬경이 번역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3배의 회원 증가가 있어 1991년 현재 회원수는 9백여명에 이르렀다. 그 숫자는 비록 적으나 회원수 증가추세로 보아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1992년에는 인도에 정식으로 선교부가 설치되었다. 싱가포르 선교부에서 독립하여 발전한 인도 방가로레 선교부(India Bangalore Mission)는 이도, 스리랑카, 파키스탄에 있는 1천2백명의 신자들과 힘을 합쳐 선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같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나라의 후기성도 회원수는 1970년대로부터 1990년대로 가면서 10년마다 배가되고 있는데 대만의 경우는 발전이 더욱 현저하다. 대만에는 선교가 시작된지 2년 만인 1958년에 회원수 2백명이던 것이 17년이 지난 1975년에는 7천명이 되었고 그로부터 16년 만인 1991년에는 1만9천명의 회원으로 증가하였다.

최근에는 몽고에까지 선교사가 파견되었다. 몽고정부는 자기 나라의 고등교육을 개선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를 통해서, 무료로 자문해 줄 전문가를 파견해 주도록 교회에 요청하였다.

 

소련이 붕괴된 후 지금까지 고등교육에 대한 자문을 행하던 소련 전문가들이 본국으로 모두 돌아가 버린 데다가 정부의 재정상태도 지극히 나빠진 때문이었다. 교회는 교육자문을 맡으면서 동시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문가를 파견하기로 몽고정부와 합의하여 여섯쌍의 부부선교사를 선정하였다.

 

이 전문가들은 몽고 정부를 도와서 다섯개 대학과 전문연구소 지도자들에게 교육정책 개발 및 기획, 교육과정개발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몽고에 파견된 전문가 겸 선교사는 경험이 많은 교육자들로서 경영대학 학장, 대학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 검퓨터과학 교수, 경영대학 교수, 교육과정개발 및 교육행정 관련 교수, 교육행정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과 한국은 북아시아 지역(Asia North Area)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시아 전체에 비해서는 땅도 좁고 인구도 적으나 선교활동에 따른 회원수 증가는 매우 빠르다.

 

위치상으로 보면 태평양에 접한 관계로 일본이 서구의 영향을 일찍 받았거니와 후기성도교회도 한국보다는 일본에 먼저 들어왔다. 교회가 일본에 들어오게 된 것은 1901년인데 그 때 십이사도의 한사람인 히버 제이 그랜트(Heber J. Grant) 장로가 세명의 선교사와 함께 일본에 도착하였다. 그랜트 사도의 도착으로 동경에 선교부가 설치되고 그 다음해부터 침례를 받는 회원이 늘어 1904년에는 몰몬경 번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나빠지자 좀 더 좋은 시기를 기다리는 의도에서 1924년 선교사업을 중단하였다가 해외 일본인들에 의하여 1937년 하와이에 다시 일본 선교부가 개설되었으며 본토에 선교부의 문을 다시 연 것은 2차대전 후인 1947년이었다. 일본 선교부는 1955년에 북극동 선교부와 홍콩의 남극동 선교부로 분리됐으며, 일본의 선교사업은 발전해 나갔다.

 

1991년 현재 교구는 22개, 선교부는 10개를 헤아리며 총 회원수는 9만9천명을 넘게 되었다. 일본의 기독교인 총수가 백만명을 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음을 알 수 있다.

 

북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아시아에는 필리핀과 그에 인접한 마리아나 군도(Mariana Is.), 웨이크 군도(Wake Is.), 괌(Guam), 마샬 군도(Marshall Is.), 캐롤라인 군도(Caroline Is.)가 아시아의 또 다른 선교지역인 필리핀 마이크로네시아 지역을 이루고 있다.


필리핀에는 1898년 스페인-아메리카 전쟁 당시 미국에서 온 포병들 중에 후기성도 군인들이 있어서 이들이 선교를 시작하였으나 체계적인 선교사업은 2차대전 후에 시작되었는데 필리핀 선교부가 설립된 것은 1967년이었다. 그로부터 1991년까지 24년간 선교사업은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어 44개의 교구와 12개의 선교부가 설치되고 26만6천명의 회원을 갖게 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빠른 교회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12년 현재 교회 회원수는 100만명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그리고 괌과 마샬군도, 웨이크 군도, 마리아나 군도에도 선교사가 파견되어 괌에는 1천여명의 회원이, 마샬에는 1천7백여명의 회원이 있으며 그 수는 매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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