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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겸손·교만·불평

라벨의 메시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5.


국 런던에 있는 국립 미술관은 실로

세계적인 큰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이 국립 미술관을 방문하는 동안

저는 이 유명한 장소에 전시된 훌륭한 초상화와

풍경화들에 화가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작품의

라벨에 쓰여진 정보는 작품에 대한 우리의

평가[견해]에 …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방문객들이 그림을 감상하고 각 작품을

스스로 평가[판단]한 후에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라벨을 그림의 하단에

붙여[덜 중요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림의 라벨과 마찬가지로 종종 사람들의

외모가 그릇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가난하고, 재능이 없고, 또 평범한 삶을

살도록 운명 지어진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신이 태어난

보잘것없는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 앞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소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그림

아래에는 기억해 둘 만한 라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집에서 살았으며, 보잘 것없는 옷을 입었으며,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었음.”

거기에 적혀 있지 않은 그 소년의 진정한 라벨은

“불멸의 영광을 위해 운명 지어짐”입니다.

한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 소년의 가치를 알 수 없으니,

우리는 기다려 바라보아야만 하리.

하지만 고귀한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지난 날 한때는 소년이었네.

소년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길 때에 그는

또래의 다른 젊은이와 다를 바 없이 보였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잠자리에 들고 나서, 그는 그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무엘은 연로한 엘리가 부르고 있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서“내가 여기 있나이다”(사무엘상

3:4)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엘리가 소년의 말을 듣고서

그것이 주님의 음성이었다고 말해 주자, 사무엘은 엘리의

권고에 따라 곧바로“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사무엘상 3:10)라는 기억에 남을 만한

대답으로 주님의 부름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기록은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사무엘상 3:19~20)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소년이었을 때 성전에서“선생들 중에

앉으시고”그 선생들이 예수의 말에 귀기울이고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누가복음 2:46~47; 요셉 스미스 역,

누가복음 2:46) 여겼습니다. 성전의 선생들은 그 소년의

외적인 라벨에서 총명한 소년의 모습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분명히“하나님의 아들과 미래에 온 인류를 구원할

구속주”로서의 모습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의 라벨에 적힌 메시지는“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입니다. 그것은 소년 사무엘의 경우에도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말이 우리 각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는 라벨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2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