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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용서·금식·부활

비난은 계속해서 상처를 드러냅니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5.

저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한 가족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들은 모두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셋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두 달도 못 살고 죽었습니다. 장식장

제조업자인 아버지는 자신의 소중한 아이의

시신을 위해 아름다운 관을 만들었습니다.

우울한 장례일의 날씨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그 가족이 느꼈던 슬픔을 나타내는 듯 했습니다.

아버지가 작은 관을 옮겼으며, 가족이 뒤따라

예배당으로 갔습니다. 소수의 친구들이 그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예배당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바쁜 감독님이 장례식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찌할 줄 몰라,

아버지는 관을 팔에 안고 가족들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족의 훌륭한 성품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감독을 비난하며 원망을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그 비극적인 사건을 알게 된

감독은 그 가족을 방문하여 사과했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이 여전히 그의 표정에서 가시진

않았지만, 눈물을 글썽이며, 그 아버지는 사과를

받아들였고, 둘은 이해의 영으로 서로를

포옹했습니다. 분노의 느낌이 계속되게 할

감춰진 쐐기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관용이 넘쳐 흘렀습니다.

수많은 가족들에게서 상한 감정과, 용서를

꺼려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쟁점이 무엇인가는

사실상 문제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상처를

입도록 방치해두어서는 안 됩니다. 비난은

계속해서 상처를 드러냅니다. 오직 용서만이

치유할 수 있습니다. 17세기 초의 시인인 조지

허버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를 때려 부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용서 받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감춰진 쐐기도 마음에 품지 말고

이러한 구세주의 훈계를 기억하도록 합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토마스 에스 몬슨 2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