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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랑·감사·자비

사랑으로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4.

가 교회에 들어올 때까지 로베르타와 나는 무엇이든

항상 나누는 친구였다. 우리는 이탈리아에 있는

고향에서 선교사를 만나 몇 차례의 토론을 나누었다.

그러나 나의 간증은 매일 자라나는 반면 로베르타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친구가 나와 함께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침례 받는 일로 고심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성경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마태복음

10장을 읽게 되었는데 34~38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영은 친구와 친척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증거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침례를 받았다.

로베르타와의 우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전처럼 가깝지도 않았다. 로베르타는 복음에

그토록 열의를 갖고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나는 나대로 세상적인 것에 그렇게

열망을 갖고 있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적인 것들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세주께서 말씀하신 사이를 갈라놓는“검”이

우리 사이에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이 때문에

고통을 겪었지만, 또한 친구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복음처럼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을 거절할 수 있을까? 그처럼

명백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녀의 마음은

분명 강퍅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태도를 눈치 챈 로베르타는 점점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녀는 강퍅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싫어했다.

내가 종교에 대해 말을 꺼낼 때마다 그녀는 주제를 바꾸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논쟁 대상이 되었다.

2년이 흘렀다. 어느 날 나는 로베르타에게 나와 함께

포지아 시로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곳에서 나는

축복사의 축복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로베르타는

가겠다고 했다. 로베르타가 가기로 한 주된 이유는 한동안

여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로베르타가 다른 방에서 기다리는 동안 빈센초 콘포르테

축복사님은 내게 훌륭한 축복을 주셨다. 축복을 받고 나서

나는 영에 감동된 나머지 로베르타가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면서 분명 커다란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콘포르테 축복사님은 그녀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그녀가 교회 회원이 아니라는 것을 안 그 분은

겸손하게 그녀의 의자 곁에 무릎을 꿇으셨다. 그리고는 내 친구의

눈을 바라보면서 아름답고 강한 간증을 하셨다. 그 분은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시고 그녀를 사랑하시며 단순한 기도를

통해 주님을 알 수 있다고 간증하셨던 것이다.

그 간증은 로베르타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복음을 나누는 방법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런 단순한 행동으로 축복사님은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 되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나는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영의 음성으로

하나님에 대해 말할 경우,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을 통해서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대해 완전하게 배울 수 있도록

요셉 스미스를 택해 그분의 교회를

회복하셨다. 우리가 간증하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가장 겸손하고 온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내가 이러한 경험을 한 이후로 많은 친구들이 교회에 들어왔다.

이제 로베르타도 복음을 공부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구세주와 그분의 복음에 대해

간증할 때는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테파니아 포스티글리오네2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