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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교회사·경전 안내

세계적으로 발전하는 교회(1890년대~현재)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5.

1890년대부터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고국에 남아서 교회를
세우도록 장려했다. 이 정책은 선지자로서는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이 교회
회장으로서 최초로 유럽을 방문했던 때인 1906년에 강화되었다. 교회는
1885년에는 멕시코에, 또 1887년에는 캐나다에 정착촌을 세웠다.
1901년에 히버 제이 그랜트가 일본에 선교 사업의 문을 열었다. 1920년에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데이비드 오 맥케이 장로가 전세계에 있는
회원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계 일주에 나섰다.(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422, 460~462, 489~491, 499~502쪽 참조)
1900년대 초 점차로 너그러워지는 미국의 분위기는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 시절에(1901~1918) 교회는 교육을 다시
강조했다. 스미스 회장이 그 길을 인도하였고,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와 존
에이 윗소 장로들 같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성도들이 왕국의 교리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저술들을 출판했다
.(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486~494쪽 참조) 이렇게 교육을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1912년에는
솔트레이크시티 지역의 그래나이트 고등학교에 특활 시간에 운영하는 세미나리
프로그램을 최초로 설립하게 되었다. 최초의 종교 교육원은 1926년에
아이다호 주의 모스코에서 열렸다. 새벽 세미나리 프로그램은 1950년에
시작되었고, 가정 학습 세미나리는 1966년에 개설되었다.(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495~508, 550, 557~561쪽 참조)
조지 앨버트 스미스 회장이 재임 중이던 1947년에 교회 회원 수는 처음으로
일백만 명에 이르렀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이 재임하던
동안(1951~1970) 미국과 캐나다 지역 밖에 최초로 새로운 성전들이
세워졌다. 1975년에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1973~1985)은 팽창하는
교회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회의 세 번째 관리 정원회로서 칠십인
제일 정원회를 조직했다. 1976년에 두 가지 계시(후에 교리와 성약 137편과
138편이 됨)가 교회에서 지지를 받아 값진 진주에 추가되었다. 1978년에
킴볼 회장은 이제 교회의 모든 합당한 남자는 인종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신권을 받을 수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공식 선언-2 참조)
1979년에 교회는 새롭고 유익한 학습 보조 자료가 담긴 새 영어판 성경을
출판했다. 2년 후에는 비슷한 보조 자료가 담긴 새 영어판 세 경전 합본을
출판했다. 이 때 137편과 138편이 값진 진주에서 교리와 성약으로
옮겨졌다.(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493, 588~589쪽 참조) 뒤를 이어 비슷한
판들이 다른 언어로도 출판되었다. 1985년에 킴볼 회장이 사망할 당시,
몰몬경은 칠십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이
선지자였던 1989년에 교회의 회원 수는 칠백만 명이 되었다. 그러한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 칠십인 제이 정원회가 조직되었다.(대회 보고, 1989년 4월
22일 참조)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이 재임하는 동안 교회는 교회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대중 매체로부터 더 긍정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7년에 힝클리 회장은
수많은 소규모 성전들이 전세계에 세워질 것이라고 발표했다.(대회 보고,
1997년 10월, 68~69쪽 참조)
회복의 메시지는 주님이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그분의 신권과 교회를
지상에 다시 주셨다는 것이다. 이 신권의 권세는 선지자에게서 선지자에게로
전달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상에 존재한다. 교회는 복음이“모든 대륙을
침투하고 모든 나라를 휩쓸어 모든 국가에 퍼지며 모든 귀가 들을 때까지,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위대한 여호와께서 다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까지”(성도의 벗, 2001년 8월호, 33쪽) 계속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