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제 나의 종 팔리 피 프랫에 관하여, 보라, 내가 그에게 이르노니, 내가 살아 있음과 같이 내가 원하는 바는 그가 나의 복음을 선포하고 내게서 배우며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지는 것이니라.(교성32:1) "팔리 피 프랫은 이 계시를 받기 한 달 전 1830년에 뉴욕에서 교회 회원이 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교회 봉사를 위한 임무 지명을 수행했으며 (교리와 성약 32편 머리글, 1~2절; 49:1~3; 50:37; 52:26; 97:3~5; 103편 머리글, 30, 37절;124:127~129 참조) 1835년에 조직된 최초의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에서 출판한 많은 설교와 찬송가를 지었으며, 솔트레이크 계곡에 도착한 최초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아칸소 주에서 선교 사업을 하던 중 1857년에 암살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팔리 피 프랫은 온유하며 진심으로 겸손하라는 훈계를 들었다. 1837년에 커틀랜드의 교회에서는 '알력과 논쟁'이 있었으며 그도 이런 정신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심지어 조셉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존 테일러에게 지적하여 그를 선지자로부터 돌아서게 하려 했다. 테일러 장로는 한 형제로서 그를 꾸짖었으며 팔리 피 프랫은 선지자에게 가서 눈물로 자기 죄를 고백하였으며 선지자는 쾌히 그를 용서해 주고 함께 기도하고 그를 축복해 주었다. 이것이 온유함이었다. 또한 남자다움이기도 했다. 정말로 강한 성품을 지닌 사람만이 참된 겸손을 지닐 수 있다." (스미스와 쇼달, 주해 170-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