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25~32. 왕국이 분열됨에 따라 유다가 성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 지파는 성전에서 마음대로 예배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을 자신의 통치하에 장악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여로보암은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예배할 수 있는 새로운 계획을 생각해 냈다. 그는 북쪽 성에 두 개의 금송아지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그것을 예배하게 했다. 아담 클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여로보암은“정치적인 종교를 고안해 내어 주님께서 지정하신 것과는 다르게 자신이 정한 시기에 절기를 정하고, 백성들에게 특정한 예배의 대상을 주어, 예루살렘까지 예배드리러 가는 것은 불편한 일일 뿐만 아니라 숨막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종교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여 국가 운영의 수단으로 쓴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주해서, 2:437)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지만, “그가 머릿 속에 생각했던 것은 단지 애굽의 아피스 숭배를 따른 것이 아니라 아론이 시내산에서 백성들에게 소개했던 우상 숭배를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한 것은 그가 출애굽기 32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백성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열심히 권고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여로보암이 뜻했던 것은‘이것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아론이 길을 인도할 때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드렸던 예배의 형태’라는 것이다. … 시내산에서 있었던 그 사건을 들추어 내어 언급한 것은 … 여호와는 송아지 형상으로 예배되었음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황금 송아지가 세워졌던 장소의 선택은 또한 될 수 있는 한 고대 전통을 고수하려했던 여로보암의 열망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의 거처를 택하지 않고 벧엘과 단을 택했다. 벧엘은 현재의 베이틴이다. 그곳은 그의 왕국 남쪽 변방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에 속해 있는 땅으로[여호수아 18:13, 22] 축복사 야곱이 꿈속에서 받은 여호와에 관한 시현에 의해 이미 거룩한 장소로 성별되었으며[창세기 28:11, 19 참조] 야곱은 그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고, 그 후 그곳에 주님의 제단을 세웠다.[창세기 35:7 참조] … 단은 왕국의 북쪽에 있었으며 … 또한 단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우상을 예배하는 장소로 헌납되었다. 모세의 손자도 여기서 직무를 행했으며, 백성들의 편리를 위해, 곧 북쪽에 사는 지파들이 먼 거리를 여행하여 예배드리지 않아도 되게 했던 점이 고려되었던 것 같다.”(케일과 델릿츠, 주해서, 3:1:198~199) 여덟 번째 달의 15일에 절기를 정하기 위해 여로보암은 초막절(일곱 번째 달의 15일에 열렸음)을 없앴다. 그는 이와 비슷한 절기를 보냈으나 동시에 그 의식을 달리했다.(클라크, 주해서, 2:437~438 참조) 여로보암은 레위의 제사장을 폐하고(역대하 11:14; 13:19 참조)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열왕기상 12:31)을 삼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역대하 13:9)를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신의 제사장에 임명했다. 그 역시 스스로 제사장의 역할을 맡았다.(열왕기상 12:33 참조) 그가 레위인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이 그의 왕국으로부터 철수하여 예루살렘에서 르호보암 왕국으로 뭉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역대하 11:13~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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