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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선지자

선지자들의 중요성과 그것을 지키기를 거부한 어설픈 변명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8.

열왕기하 3~13장을 읽어 보면, 백성들이 에언자 엘리사의
충고에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그들이 그의 권고를 거부할 때마다
고통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주님의 권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은 이러한 선지자들의 중요성과 그것을
지키기를 거부한 어설픈 변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이들 거룩한 전달자들을 없애기 위하여 여러
가지 구실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선지자들의 출신이 불분명했기
때문에 그들은 거부되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한복음 1:46) 예수는 또한‘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마태복음 13:55)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찌하든,
거룩한 선지자를 거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무리 거짓되고
어색하다 해도, 그 사람을 내쫓아 그 말씀까지 물리치는 것입니다.
… 그들은 바울을 판단할 때도 그의 목소리나 그가 말하는
형식으로 판단했지 그가 말한 진리의 내용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들이 처음에는 선지자를 경멸하기 때문에
그들을 배척하고 마침내는 선지자를 반대하기 때문에 더욱 그들을
경멸하는 예를 자주 봅니다. …”
선지자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배척하는 그러한
논쟁은 언제나 선지자는 특별한 사람의 아들이거나 어떤 특별한
사람의 이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택해졌으며, 다른 별에서 온 자가 아니며 극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언제나 시대의 악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으며 그는
또한 사기를 사기라고 부르며 횡령을 횡령이라고, 간음을
간음이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감시자입니다.”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119, 120쪽)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기본되는 진리는
언제나 똑같습니다만, 살아 있는 선지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필요한 부분을 강조할 것이며, 살아 있는 교회의
성도들은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에서는 회원들이 살아 있는 경전과 살아 계신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선지자에 대한 산 간증을 가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