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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8.

요나 1:17
“큰 물고기”에 삼켜진 요나의 기록은 세상 사람들이 조롱과
논쟁의 주제로 삼아 왔다. 그들은 이 구절을 사용하여 요나서는
단순히 하나의 비유이며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는 신념을
뒷받침하는 쟁점으로 삼았다. 그러한 주장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님이 요나를 삼키도록 물고기나 고래를 준비하신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분명히 주님은 하늘에
앉으셔서 냉소자의 지혜를 비웃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논쟁
중에 있는 기적을 다시 행하시거나 더 큰 기적을 보여 주심으로써
그 어리석음에 대하여 대답하실 것입니다. …”
“저는 월리엄 제이 브라이언씨처럼 요나의 이야기를 믿습니다.
제가 그렇게 믿는 주요한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라거나
오늘날에도 다시 되풀이되었던 사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으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에게 그의 신성에 대한 표적을 보여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의 표적을 주셨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의
냉소자들은 주님의 위대한 사업에도 불구하고, 죄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구원의 교리, 2:278~279)
요나에서 사용된 타닌이라는 히브리 말과 신약에서 사용된
카토스라는 희랍 말은 몸집이 거대한 어떤 바다 동물을 나타내는
것이다. 상어는 지중해에 흔히 있는 것이며 사람을 삼키기에
충분할 만큼 목구멍도 크다. 물론, 이 사건에서 기적적인 면은
요나가 큰 물고기의 소화액 속에서 살 수 있었던 것과 다친 곳이
없이 통째로 삼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