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도처에 계신 모든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더욱 엄격히 준수할 것을 촉 구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날이 세계 곳곳에서 그 성스러운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부와 쾌락과 여가 활동과 거짓 신과 물질적인 신을 좇아 안식일의 성스러운 목적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도처에 계신 모든 성도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준수하고 또 거룩하게 지킬 것을 계속해 서 촉구합니다. 그들이 안식일에 거래하지 않는다면 상점은 그 거룩한 날에 문을 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휴양지, 운동 행사, 온갖 종류의 여가 활동을 하 는 곳에도 적용됩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금전의 추구가“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레위기 19:30)는 주님의 계명 위에 승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기독교 세계의 많은 곳에서 성스러운 안식일에 영업을 위해 문을 여는 사 업체들이 아직도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구매하는 사람들인 우리 자신들에게 있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만약 우리들, 즉 사람들이 상점과 업체에서 구매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업체들은 문을 계속 열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 가정 의 밤 시간에 자녀들과 논의해 보십시오. 모든 가족이 이제부터는 안식일에 물건 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세상은 대부분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식일 에 호수는 보트로 가득 차며, 해안은 만원이고, 극장은 최대 인원을 기록하고, 골 프장에서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안식일은 이제 로데오나 집회, 가족 소풍을 즐기는 날이 되어버렸으며, 심지어 야구 경기마저 성스러운 날 에 열립니다. “평소대로 영업합니다”는 많은 사람들의 선전문구가 되었으며, 우리 의 거룩한 날은 휴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휴 일로 여기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락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돈벌이하는 사람 들의 욕구를 채워 주고 있습니다. 주의 날에 사냥하고 낚시하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농작물을 심거나 경작하거나 수확하는 것도 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에 협곡으로 소풍을 가든지, 운동 경기나 로데오, 경마나 쇼 같은 다른 오락에 참여하는 것도 역시 그날을 거룩하게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 아 닙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다른 모든 면에서는 충실한 후기 성도들 중 일부가 낚시철 이 시작되는 첫날에 강에 있지 않으면 최고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거나, 일요일에 여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휴가가 충분히 길지 않을 것이라거나, 또는 안식일에 가 지 않으면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기끔씩 여가 활동 을 목적으로 교회 모임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어기면서 종종 그들의 가족을 데려가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여가 활동, 즉 운동, 소풍, 연극, 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 위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교회는 조직 체로서 그런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에는 적당한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즉 일할 때와 놀 때, 예배드릴 때가 따로 있는 것 입니다. 안식일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참으로 필요한 일, 예를 들어 병자를 돌보는 일은 실제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 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바로 우리 의 동기입니다. 때때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희생과 자제의 문제로 단정되곤 하지만, 이는 사 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시간 관리와 시기 선택의 문제입니다. 일주일 에 6일은 우리가 일하고 즐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며, 세계 역사 중 특히 우리 시 대에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안식일을 피하면서 평일 활동을 계획하고 장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스펜스 더불류 킴볼의 가르침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