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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봉사·정직·친절

단순한 봉사와 친절한 행동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8.

“저는 여러분의 종이며, 제가 여러분을 위해 선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신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봉사하는 데 헌신하며, 최선을
다하는 겸손한 종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는 여러분 앞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에드윈 홀던은 이렇게 회고했다. “1838년 어느 날, 조셉과 나이 어린 몇몇
형제들이 공놀이를 포함한 여러 가지 야외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조셉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그들을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
다. ‘우리 통나무집을 짓자.’그리고 조셉과 청소년들은 한 미망인을 위해 통나
무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조셉은 늘 그런 식으로 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모
든 일에서 돕고자 했습니다.”
선지자의 어머니 루시 맥 스미스는, 성도들이 후에 나부라고 불리게 된 일리
노이 주 커머스에 처음 정착하던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계절이 지나면서
이곳에 정착한 형제들은 그들이 겪은 고난의 영향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후까지
나빠지자 어떤 가정에서는 서로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
는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온 가족이 오한과 말라리아열로 앓아 눕게 되었다.
하이럼의 가족은 대부분이 병에 걸렸다. 우리의 막내 딸 루시도 심하게 병을 앓
았으며, 사실상 그곳에 있는 주민들 중 몸이 성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셉과 에머는 병자들을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와 돌보아 주었다. 계속 병자
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도 곧 병에 걸렸으며, 방 네 개로 이루어진 그들의
집은 너무 사람들이 많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가족들 일부를 수용하기
위해 마당에 천막까지 쳐야 했다. 조셉과 에머는 이 어려운 시기에 병자들을 돌
보기 위해 모든 시간과 정성을 다 바쳤다.”
선지자의 사촌, 존 엘 스미스는 이 시기에 일어난 한 사건을 다음과 같이 회
고했다.“선지자 조셉과 그의 형 하이럼이 사촌인 우리를 방문했다. 우리는 모
두 아팠지만 어머니는 열과 학질로 고생하셨고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
신 착란 상태였다. 조셉은 우리의 궁핍한 상황을 보고는 구두를 벗어 아버지에
게 신겨 드렸고, 자신은 아무것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말을 타고 돌아갔다. 그
는 사람을 보내 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아버지의 목숨을 구했으며 우
리가 병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많은 물품들을 보내 주었다.”
엘리자베스 앤 휘트니는 이렇게 회고했다.“1840년 이른 봄 우리는 커머스
로 갔는데, 그곳은 나부 시의 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여전히 커머스라 불렸다.
우리는 하이램 킴볼 소유로 된 집을 세 내어 살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학질과 오한, 그리고 열로 앓았으며, 겨우 기어다니면서 서로를 돌볼 수 있을 정
도였다.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아홉째 자녀가 태어났다. 조셉은 우리를 방문하
여 상황을 보자마자 우리에게 즉시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우리는 살고 있
던 곳의 공기, 물, 그리고 궁핍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꼈기에 그의 제
안을 받아들여 선지자 조셉의 마당에 있는 작은 통나무집으로 가서 생활했다. 우
리는 곧 건강을 되찾았으며, 자녀들도 본모습을 되찾았다. 남편은 조셉의 상점
에서 일을 했으며 조셉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해 주었다.
“하루는 집을 나와 뜰로 가는 도중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커틀랜드에 있는 우
리 집에서 살고 있는 동안 내게 해 주었던 예언에 관한 기억이 번개처럼 머릿속
에서 떠올랐다. 그것은 그에게 집이 없었을 때 우리가 그와 그의 가족에게 문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인 것처럼, 언젠가 우리도 그의 집으로 받아들여지리라는 것
이었다.”모사이야 엘 핸콕은 그가 청소년이었을 때 나부에서 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
이 회고했다.“올해[1841년] 여름, 나는 선지자와 처음으로 공놀이를 했다. 우
리는 번갈아 가며 공을 치고는 그 공을 쫓아 뛰었다. 경기가 끝났을 때 선지자
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말을 마차에 매십시오.’우리는 그렇게 했으며, 모
두 마차를 몰고 숲으로 갔다. 나는 앞에서 말 한 마리가 끄는 포장마차를 몰았
고, 선지자 조셉과 아버지는 뒤에서 마차를 몰았다. 마차는 39대였으며 우리는
나무를 모아 마차에 실었다. 마차에 나무를 싣고 나자, 조셉 형제는 막대 당기
기를 하자고 했으며, 그는 자신과 겨루고 싶어하는 사람을 한 번에 한 사람씩 모
두 당겨서 이겼다.
“그 후 선지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마차를 보냈으며, 나
무가 필요한 성도들을 위해 나무를 자르라고 말했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선
지자가 말한 대로 했다. 우리는 병약했으며, 주변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았
지만, 사람들은 미소를 짓고 모두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노력했다.”
1842년 1월 5일, 선지자는 훗날 감리 감독으로 봉사한 에드워드 헌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붉은 벽돌 상점에 있는] 우리의 물건들은 꽤 좋은
편입니다. 여러 시기에 여러 사람들이 산 물건들과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는 상
황을 고려해 볼 때 그 물건들은 매우 좋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물건
들을 얻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 가난한 형제자매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물건들
을 구할 수 있게 되어 마음속으로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점은 사람들로 넘쳤고, 저는 어느 점원 못지 않게 하루 종일 계산대 뒤에
서서, 설탕과 당밀, 건포도 등이 없어서 성탄절과 새해를 만찬도 없이 보내야 했
던 사람들을 위해 물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
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께서 정하신 때에 승영할 수 있기를 소망하
며, 성도들을 섬기고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기를 기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