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봉사·정직·친절

봉사와 모범을 통하여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0.

시온 진영의 대원들은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에서 미주리 주로 행군하는 동안
조셉 스미스와 함께하면서 지도력에 대한 많은 원리들을 배웠다. 시온 진영의 일
원이었던 조지 에이 스미스는 이렇게 회고했다.“선지자 조셉은 여행하는 동안 줄
곧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도맡아 했다. 진영을 돌보고 감리하는 일 외에도, 그
는 대부분의 시간을 걸으면서 보냈다. 그의 발은 온통 물집으로 뒤덮였으며, 피가
나고 쓰라렸다. 무더운 여름철에 매일 40~64킬로미터를 걸어서 생긴 당연한 결
과였다. 그러나 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 단 한 마디도 불평하거나 투덜거리지 않

았다. 반면에, 진영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 아픈 발가락, 물집, 긴 행
군, 부족한 식량, 질이 떨어지는 빵, 상한 옥수수빵, 곰팡이가 낀 버터, 굳어 버
린 꿀, 구더기가 낀 베이컨과 치즈 등에 대해 불평했다. 심지어는 개가 짖기만 해
도 그들은 조셉에게 불평했다. 깨끗한 물이 없는 곳에서 야영을 하게 되면 거의
반란이 일어날 정도였다. 우리는 시온 진영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도도 하지
않거나 사려 깊지 못하거나, 조심성이 없거나 부주의하거나, 어리석거나 사악했
고, 우리는 그것을 몰랐다. 조셉은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참을성 있게
우리를 대해주고 가르쳐야 했다
. 그러나 진영에는 절대 불평하지 않고 언제나 지
도자들이 원하는 대로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다음은 1834년 5월에 대한 선지자의 역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트럼펫 소리가 울리면, 우리는 각 천막에서 주님 앞에 머리
를 숙이고 기도로써 감사를 드리고 필요한 것을 간구했다
. 그리고 네 시 경에 울
리는 기상 트럼펫 소리에 모든 사람은 다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루의 축복
을 간구했다.”
1834년 5월 27일.“우리의 적들이 계속 폭력으로 위협함에도 불구하고 우
리는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계속 행군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았다. 이는 하나님께
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그분의 천사들이 우리 앞에 갔으며, 우리의 작은 그룹이
갖고 있던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사들을 보았기 때문에 그
들이 우리의 동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1834년 5월 29일.“나는 일행 중 몇 명이 요리사에게서 시큼한 빵을 받은
반면, 나는 같은 요리사에게서 신선하고 맛있는 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
는 이러한 불공평한 일에 대해 제베디 콜트린 형제를 꾸짖었다. 나는 나의 형제
들도 나와 같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시온 진영의 일원이었던 존 엠 치데스터는 이렇게 회상했다.“인디애나 주를 지
날 때 시온 진영은 매우 험악한 늪지를 지나야 했으며, 따라서 그곳을 통과하기 위
해 마차에 밧줄을 걸어야 했다. 선지자는 밧줄에 의지한 채 맨발로 지나간 첫 번
째 사람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어려울 때마다 그가 보여 준 그의 성품이었다.
“우리는 쉬거나 먹지도 않고 40킬로미터를 여행하여 [와켄다] 강에 도착할 때
까지 여행을 계속했다. 우리는 나룻배로 이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고, 반대편에
는 야영을 하기에 참으로 적합해 보이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지치고 허기진 사
람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이었다. 강을 건너 그곳에 도착하자 선지자는 진
영 대원들에게 행군을 계속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고는 앞장서 가면서 형
제들에게 따라오라고 권유했다.
“이것은 진영에 분열을 야기했다. 라이만 와이트와 그 밖의 사람들은 처음에
는 선지자를 따르지 않겠다고 거부했지만 결국에는 따라왔다. 이후에 있었던 일
로 인해, 선지자가 약 1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도록 한 것은 영감 받
은 일이었음이 밝혀졌다. 그 후 우리가 전해 들은 바로는 우리가 강을 건넌 곳
에서 약 13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그날 밤 우리에게 쳐
들어오기 위해 모였었다고 한다.”
시온 진영이 행군을 하는 동안 어떤 참여자들은 투덜거리고 불평을 했다. 선지
자는 그러한 사람들을 꾸짖고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
했다. 몇몇은 권고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얼
마 지나지 않아 콜레라가 발생하여 진영에 속한 대원들 몇 명이 사망했다. 이후 십
이사도 정원회에서 봉사했던 올슨 하이드는 이렇게 회고했다.“선지자는 진영의 복
지에 대해 염원하기를 그만두었을까요? 그는 그의 친구들이 징계를 받고 고난을 겪
는 동안 그들에게서 마음이 멀어졌던 것일까요? 그가 그들에게 거슬리는 말을 했
기 때문에 원수가 되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동정으로 가득
했으며 그의 가슴은 사랑과 애정과 친절로 타올랐습니다. 역경을 겪는 동안 헌신
적인 친구에게 알맞는 열정과 충실함으로 그는 아픈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개
인적으로 돌보아 주었으며, 죽은 자들의 매장을 도왔습니다. 혹독한 시련을 겪는
동안 그가 했던 모든 행동은 그들의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진영 대원들에게 거듭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