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복음에 깊이 헌신해 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매주 하는 교회 모임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남편은 그 밖에 열리는 신권 모임과 방송에는 잘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와드 회원들은 남편을 친절하게 대해 주고 용기를 주었으나, 남편이 모임에 참석하게 하려면 어떤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한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남편은 종종 외로움과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막 새 와드로 이사왔을 무렵 연차 대회가 다가왔다. 남편은 마지못해 연차 대회 신권 모임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방송을 볼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남편이 도착해서 보니 대형 오버헤드 프로젝터에 자막을 넣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텔레비전을 옮겨와서 구석에다 설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문제가 있었다. 텔레비전 연결용 전선을 프로젝터에 꽂아 쓰고 있었기에 텔레비전으로는 방송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남편은 도서실에 가서 프로젝터용 전선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상자와 캐비닛을 뒤지다가 마침내 남편은 프로젝터에 연결하는 짧은 전선을 찾아냈다. 방송이 막 시작되려던 참이라 사람들은 방송 연결을 중단하고 재설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편이 찾은 전선은 이동식 카트에 놓인 텔레비전을 연결하기에 너무 짧았기에 텔레비전을 더 낮은 탁자로 옮겨야 했다. 남편은 예배당 바깥으로 카트를 밀고 가서 옆 방으로 갔다. 거기서 텔레비전 선을 풀면서 남편은 텔레비전을 같이 들어올려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남편은 누군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감독님이었다. 남편과 감독님은 텔레비전을 함께 들어올려 탁자에 놓았다. 남편은 마음이 밝아졌다. 남편은 텔레비전이 나오도록 손을 보고 있었고 감독님은 의자 하나를 가져오셔서 텔레비전 앞에 놓으셨다. 남편은 감독님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며 악수했다. 그리고 감독님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가셨다. 놀랍게도 감독님은 문을 지나쳐 벽에 의자를 세워 둔 쪽으로 걸어가시는 게 아닌가! 그분은 의자 하나를 더 가져오셔서 남편 옆에 앉으셨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모임을 시청했다. 현재 남편은 감독님이 여시는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석한다. 감독님의 단순하지만 친절한 행위는 남편의 영을 들어올렸고, 남편은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어려움은 여전히 있지만, 남편은 더는 외롭거나 환대받지 못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한 목자가 보인 영감 어린 행동 덕분에 남편의 관점은 영원히 바뀌었다. ◼ 글쓴이는 미국 미시시피에 산다. (케이시 크로닌 20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