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초창기 역사는 큰 시련으로 점철된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초기 시절을 견뎌 낸 브리검 영, 히버 시 킴볼, 존 테일러, 윌포드 우드럽, 로렌조 스노우, 조셉 에프 스미스 같은 지도자들은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대평원을 건너고 로키 산맥에 교회를 수립하는, 극복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힘든 시련을 견뎌 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개척자들이 오늘날 후기 성도 가운데에서 성취된 것들을 본다면, 밝게 웃음 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개척자들에게 많은 신세를 졌으며, 지금의 성공은 어제의 겸손한 거인들의 어깨와 용기 위에 이룩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님은 충실한 개척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재의 참가치를 깨닫고 미래를 보는 눈을 얻고자 과거를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무엇이 앞에 놓여 있든지 헤쳐 나갈 힘을 얻고자 앞서 간 사람들의 덕행을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열심히 일하고도 얻은 것이 거의 없었지만, 아주 잘 육성된 꿈과 초기 계획으로 현재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도록 해 주고 훌륭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 모두 그들의 엄청난 모범에 자극을 받아 강렬한 동기를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개개인이 모두 자신의 삶에서 개척자이기 때문입니다.”1 신앙으로 뒤를 따르며 브리검 영의 뒤를 쫓아 황량한 사막으로 따라나서는 신앙을 지닌 사람들은 비단 교회 지도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하지만 용감했던 수많은 교회 회원들 또한 그 길을 따라나섰습니다. 교회 역사를 찾아보면, 1836년에 230에이커에 달하는 농장에 멋진 석조 집, 골조 헛간 2동을 포함한 뉴욕 워터 타운의 부유한 환경을 버리고서 가족과 함께 오하이오 커틀랜드 성도들과 함께하려고 이주했던 올리버 헌팅턴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것을 남겨 두고 떠난 후에 올리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서로가 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더욱이 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언제 빵을 구하게 될지 기약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녀들이 빵을 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부모님이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불평이나 비난하는 것, 또는 사업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올리버의 말에서 이 가족의 신앙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2 이 경륜의 시대에 교회의 첫 번째 감독의 딸인 에밀리 파트리지는 겨우 일곱 살이던 1831년에 오하이오 페이네스빌에 있던 안락한 집을 떠나 미주리 잭슨 군으로 이주하던 일을 회상했습니다.3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가족은 폭도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클레이 군에 다시 정착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마침내 찾게 된 집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그 오래된 통나무집은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것이었다. …… 큰 방 하나와 지붕을 비스듬히 달아내어 지은 별채가 있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바닥은 갈가리 찢겨 있었고 쥐와 방울뱀이 득실대서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머물 만한 방에는 큰 벽난로가 있었고, 불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담요를 매달아 열댓 명 정도 되는 두 가족이 몹시 추운 날씨에 얼어붙지 않으려 담요 안쪽으로 모여들었다. 얼마나 추웠는지 아버지가 불가에 앉아 글을 쓰시는데 펜에 묻힌 잉크가 얼 정도였다.”4 이 가족은 나중에 일리노이로 이주했습니다. 에밀리는 자신들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힘든 시절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집과 재산을 강탈당하고 내몰렸기에 매우 어렵고 궁핍했으며 많이 아팠다.”5 피비 카터도 마찬가지로 1835년에 메인 스카보로에서 오하이오 커틀랜드로 1,20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갔습니다. 피비는 28세 때 교회 회원들과 함께 모이기로 결심했는데, 그 여정은 혼자서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친구들은 내가 가려는 길에 놀라워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마음속의 뭔가가 그렇게 하게 했다. 집을 떠나겠다는 내 결심에 어머니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상심하셨기에 내 마음에 임한 영만 아니었다면 나는 결국 흔들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차라리 내가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보는 것이 혼자서 비정한 세상 속으로 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낫겠다고 말씀하셨다. …… 어머니는 간곡히 말씀하셨다. ‘피비, 몰몬이즘이 거짓이란 걸 알게 되면 돌아와 주겠니?’ 나는 세 번이나 이렇게 답했다. ‘네, 어머니. 그렇게 할게요.’ …… 이윽고 떠나는 날이 찾아왔을 때, 나는 마주 보고 작별을 고할 자신이 없어 가족 모두에게 한 사람씩 작별 인사를 적어 탁자에 올려놓고는 계단을 뛰어 내려와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랑하는 집을 떠나왔다.”6 그 순간 피비는 자신이 선택한 신앙의 발걸음이 커틀랜드까지 가는 1,200킬로미터보다 훨씬 먼 여행으로 이어질 줄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윌포드 우드럽과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미주리를 지나 나부로, 그 후 황야를 지나 솔트레이크 밸리까지 2,170킬로미터를 가야 했습니다. 제 증조부이신 헨리 밸라드는 1849년 2월에 영국 태참에서 17세 때 교회에 들어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미국으로 가는 뱃삯을 벌기 위해 로렌조와 에라스투스 스노우가 부분적으로 소유한 회사에서 2년간 일하기로 계약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양 떼를 몰고 솔트레이크 밸리로 가는 일에 고용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셨습니다. “10월에 양 떼를 몰고 작은 산을 내려와 에미그레이션캐년 어귀로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솔트레이크 밸리를 보았다. 마침내 ‘약속의 땅’을 보게 되었다는 기쁨 속에서도 나는 누가 나를 볼까 봐 두려워하며 지냈다. 내가 걸친 넝마가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고, 그렇게 헐벗은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땅거미가 질 때까지 숲 속에 숨어 지냈다. 어두워지고 나서야 들판을 가로질러 불빛이 비치는 집으로 가서 …… 소심하게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도 문을 열어 준 것은 남자였고, 촛불의 밝기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 눈에 들키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여정을 계속하여 부모님을 다시 뵐 수 있도록 벗은 몸을 가릴 옷을 좀 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옷 몇 가지를 받았으며, 다음 날 여행을 계속하여 1852년 10월 16일 솔트레이크에 도착했다. 아무 탈 없이 미래의 집에 도착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7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성한 축복을 돌이켜 볼 때면 제 마음에는 그토록 숭고하고 용감했던 선조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가득 차오릅니다. 제 증조모는 마거릿 맥닐이란 스코틀랜드 아가씨로, 열세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유타로 이주해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등에 어린 동생 제임스를 업고 암소를 몰며 대평원을 걸어오셨습니다. 할머니의 가족은 옥든 변두리에서 야영을 했는데, 후에 그분의 자서전에는 당시의 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들판을 가로지르면 작은 집이 있었는데, 텃밭에 호박이 많았다. 우리는 모두 굶주려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호박 하나를 얻어 오라며 나를 그곳으로 보내셨다. 우리는 돈이 한 푼도 없었고 아이들은 먹지 못해 아주 약해져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할머니가 나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서 들어오렴, 네가 올 줄 알았단다. 네게 음식을 주라는 말씀을 들었거든.’할머니는 새로 구운 커다란 빵 한 덩어리를 주시면서, 가서 어머니께 조만간 찾아가겠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 얼마지나지 않아 그 할머니는 정성껏 준비한 맛있는 저녁을 차려 오셨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8 실질적이고 영적인 구조 개척자들의 경험에서 우리는 165년 전에 대평원을 건널 때 어떤 참 신앙과 용기가 필요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비록 손수레 부대 개척자들은 1847년부터 1868년에 걸쳐 이주한 후기 성도 이민자 중 1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개척자 세대의 충실함과 희생을 대변하는 후기 성도 문화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윌리와 마틴 손수레 부대원들은 와이오밍에서 일찍 찾아온 눈에 갇혔고, 많은 성도가 추위 속에 죽어 갔습니다. 몇 년 전에 저희 가족은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도보 여행에 참가했는데, 윌리 부대가 고립되어 추위와 허기로 떨었던 스위트워터 지역을 내려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일지에서 우리는 그들이 겪어야 했던 혹독한 시련과 구조의 기쁨에 대해 읽습니다. 존 치슬렛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해가 멀리 언덕 아래로 아름답게 질 무렵 …… 몇 대의 포장 마차가 ……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을 보았다. 그 소식이 들불처럼 삽시간에 진영에 퍼졌다. …… 기쁨의 환호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햇빛에 그을린 강인한 남자들의 주름 깊은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 그날 저녁, 오랜만에 시온의 노래가 진영에 울려 퍼졌다. …… 허기를 달래고 하나님과 선한 형제들을 향한 감사로 마음을 가득 채운 채, 우리는 함께 기도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9 지금은 “에미넌스”라 불리는 언덕에 섰을 때, 함께한 사람들과 제 가족에게 간증을 나눠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충실한 개척자들이 구조대에게 그토록 감사했듯이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한 구조에 깊이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일행에게 어떤 종교를 믿든지 그에 상관 없이 세상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시며 모든 인류를 구조하실 것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속죄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오늘을 위한 희망과 영원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오늘날의 광야를 극복하여 개척자들은 고통을 겪어 냄으로써 삶의 힘을 구축했으며, 그 힘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소지품 몇 가지만 챙겨 마차나 손수레에 싣고 2,090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방식으로 신앙과 용기를 증명하도록 요구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늘날 다른 어려움이, 올라야 할 다른 산이, 건너야 할 다른 강이, “백합화 같이 피어[나는]”(이사야 35:1) 다른 계곡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복하도록 주어진 광야가 우리 개척자 조상들이 부딪혔던, 유타로 이어지는 바위투성이의 거친 길과 황량한 풍경은 아닐지라도 그곳보다 결코 덜 힘들다거나 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힘겨움은 죄와 영적 무관심에 흠뻑 젖어 어느 곳에서나 방종과 부정직, 탐욕이 가득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광야는 혼란과, 상충하는 메시지가 넘쳐나는 곳입니다. 개척자들은 시온과 솔트레이크밸리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신앙을 품고 바위로 뒤덮인 산마루를 넘고, 먼지 또는 눈으로 덮인 산길을 넘으면서 거친 자연과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우리는 개척자와 같은 근면과 신앙으로 무장하여 주님과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율법대로 살며, 모든 일을 신뢰할 만하고 정직하게 행해야 함을 결코 가벼이 여기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컴퓨터나 태블릿, 휴대전화 등을 통해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상의 악한 덫을 피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경시하고 건성으로 행한다면 루시퍼는 우리의 결의를 약해지게 하고, 우리의 신앙과 주님과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파괴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며, 우리는 이 세상의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해악을 피하려면 진정한 현대의 개척자로서 신앙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개척자로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며, 지역 사회에서 좋은 대의를 지지하며, 우리 가족과 가정을 강화하며 함께 걸어 나가야 합니다. 진심으로 믿는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좀 더 할 일이 없겠습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분명해진다면, 신앙은 우리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어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확신을 품고서 힘과 인도를 간구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발자취에 신앙’이란 말의 의미입니다. 우리 개척자 조상들이 그러했으므로 오늘날 우리도 그래야만 합니다. 개척자의 발걸음을 이끌었던 바로 그 기상을 우리 자녀를 비롯한 후손들에게 불어넣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개척자로 함께 서서 언제나 우리 가족을 인도해 주시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를 기원합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선조들을 공경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과거로부터 배우며 그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미래를 맞을 힘과 용기를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역이 우리 마음과 정신에 환하게 타오르기를 기원합니다. 후기 성도 개척자의 삶에서 그랬던 것처럼 간증의 불길이 우리 골수에서 타오르기를 기원합니다. ◼
(엠 러셀 밸라드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20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