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새신부였던 시절에 나는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었다. 학창 시절에 영어를 조금 배우긴 했지만, 강한 일본어 억양 때문에 내가 하는 영어를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영국식 발음을 알아듣는 것이 어려웠다.
남편과 나는 교회 회원이었지만, 결혼할 당시에 우리는 완전히 개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나 모임을 모두 다 참석하지 않은 채 성찬식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갔다. 또한 어떠한 교회 부름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교회 활동에 좀 더 참여하도록 돕기 위해 한 상호부조회 지도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매님은 다음 주 중에 상호부조회 모임에서 나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러겠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만한 어떤 것을 가져가야 한다는 전화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모임에 갔을 때, 나는 내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탁자 보와 꽃으로 꾸민 탁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위에는 “자매들을 알아봅시다”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그중 한 탁자에 “터켓 자매”란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나는 탁자 위에 놓을 물건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눈에 고이는 눈물을 애써 감춰야 했다.
성찬식 때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이미 서러움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이런 생각도 자주 했다. ‘도대체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렇기에 상호부조회 모임에 와서 내 실수를 깨달았을 때에는, 더는 교회에 다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든 숨고 싶었지만, 준비해 온 게 없다는 이야기를 상호부조회 지도자에게 말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말했다.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해서 탁자에 놓을 만한 물건을 아무것도 안 가져 왔어요.”
그러자 그 자매님은 나를 더없이 상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그러고는 나를 안아 주셨다.
나는 위로를 받았고, 그 자매님의 말은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는 메시지라는 것을 영이 속삭여 주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며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을 기뻐하셨다. 나는 영어를 잘 못했지만, 그 자매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영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느끼고 나서 나는 곧바로 마음을 바꾸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그처럼 사랑하시고 교회에 오기를 바라신다면, 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거야.”
그 이후, 남편과 나는 모든 교회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또한 영어를 배우기로 했다. 점차 영어를 더 잘 알아듣게 되었고 말하는 법도 배웠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해 준 그 자매님께 감사드린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일본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지방부의 상호부조회 회장단에서 봉사하고 있으며, 교회에서 통역사로 봉사하기 위해 훈련을 받아 왔다. ◼
(테루미 터켓 일본 2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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