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말씀·경전

새로운 개종자가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24.


만약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면
교회의 일상은 상당히 자연스러울
것이다. 여러 모임의 규칙이나 우리가
드나드는 건물, 교회에서 입는 복장 등에도
익숙하고 성찬식에서 말씀하는 것이나 십일조 및
금식 헌금을 내는 일, 혹은 달마다 한 번씩 하는
금식 등도 일상의 일부일 테니 말이다. 지혜의
말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나 봉사 부름을
받아들이는 일, 순결의 법을 지키는 생활도
우리에게는 모두 익숙하다.
하지만 개종자들이 그런 것을 모두
받아들이고자 할 때에는 어려운 적응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확실히, 복음 진리에 대한
간증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이 되는
길에서 첫 걸음이다. 하지만 간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교회 회원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굉장히 낯설게 보일 수 있다
내 경험을 소개하자면, 나는 열세 살 때부터
후기 성도 친구들이 있었고, 마침내 19세가
되었을 때 교회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게
수년간 교회 문화를 접했지만, 변화하는
것은 어려웠다. 교회의 문화와 관습이 어찌나
낯설었던지 좀 괴상하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나는 여러분이 아는, 또는 여러분이 알게
될 이 교회와 여러 면에서 무척 다른 교회를
다니며 자랐다. 그곳에서는 성직자들과 성가대가
고등학교 졸업식 복장과 유사한 제복을 입었다.
성찬식에 해당하는 그들의 예배에서 목사의
설교를 들었는데, 설교 시간은 성직자 혼자서
모두 담당했다. 모든 사람은 일요일마다 일제히
주기도문을 암송했으며, 언제나 찬송가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불렀다. 아기들에게는 머리 위에
물을 뿌려서 세례를 주었고 확인 의식은 열네 살
정도가 되면 받을 수 있었다.또 성찬은 물 대신 포도주스를 사용했다. 주일학교 시간에는 고등학생들이 성인들과 같은 반에 참석하여 현 사회 쟁점을
토론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건물 자체도 후기 성도들의 건물들과는
달랐다. 그 교회는 유럽의 기독교 교회 건축 양식에 따라
지어졌는데, 높게 치솟은 지붕과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었다. 성가대 자리에는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커다랗고 아름다운 종탑이 우뚝 솟아 있다. 나는 예배 뒤에 그
종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종은 밧줄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
어린아이의 몸이 들릴 정도로 무거웠다.
관습과 사회적 신조도 달랐다. 우리는 술이나 담배를 피워도
괜찮다고 배웠다. 십 대 때 이성친구를 사귀어도 무방했다.
사실,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면 혼전 성관계도
가능한 것이라고 배웠다. 간증을 얻게 된 경험 같은 것은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금식 간증 모임에 참석했을
때 얼마나 놀라웠던지! 얼마나 이상해 보였는지 모른다. 과거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일어서서 자신의 믿음을
발표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로 오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한 침례나 전세의 삶과 같은 새로운 교리를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와 생활 방식, 목표의 변화를 의미했다. 그와 같은 차이를 해결하기까지 나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침례 뒤 첫 6개월은 굉장히 힘들었다. 나는 대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모든 게 너무나도 생소했고, 특히 나는 가족과
함께 교회에 오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과거와 멀어지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낄 뿐 아니라 몇몇 교리적인 문제로도 여전히 힘겨운
씨름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교회의 친구들은 인내하고, 친절히 대해 주며,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친구들은 나를 여러 활동 모임에
데려갔으며, 가정의 밤이나 저녁 식사 시간에 초대하기도 하고,
함께 기도도 해 주었다. 친구들은 내가 교회에 적응하는 것뿐
아니라 간증이 흔들릴 때 힘을 내고 계속 교회에서 활동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었다. 친구들의 도움 덕택에 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교회에 적응했고, 또 그러면서 어떤 것을 얻게되었는지에 대한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서, 새로운 개종자나 다시 교회로 돌아오려 하는 누군가가 힘을 내어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적응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여러분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침례받기까지 몇 년을 기다리면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회화반에서 선교사들을 만나 토론을 하고 교회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침례를 받겠다는 내 말에 굉장히 노여워하셨다. 부모님은 우리 교회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으셨고, 내가 혹시 위험한 곳에 빠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셨다. 부모님은 교회가 학업에 방해가 되고, 여러 가지 규칙 때문에 내 인생을 즐기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2년 반 동안이나 나는 침례 허락을 받지 못했다.그렇게 첫 발을 떼면서부터 시험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이나 침례받을 때를 기다리면서 나는 계속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신앙과 힘을 간구했다. 나는 교회에 참석하거나 선교사나 회원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다. 나는 혼자서 기도하고 경전과 현대 선지자들의 말씀을 공부하며 신앙과 간증을 쌓았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활동이나 흥미로운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로마로 오고 나서, 부모님이 엄청나게 화나셨을 때 감독님은 진실한 친구로서 내 곁을 지켜 주셨다. 감독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침내 침례를 받게 되었을 때, 많은 와드 회원들이 와서 지지해 주었다. 나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친구들의 우정과 친절함으로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신 그분의 모범을 따를 때, 최근 개종자와 구도자들은 우리가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타비오 카루소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현재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다.20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