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탄절 아침 과테말라의 한 병원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와서 노래를 해 달라며 천사들을 부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노래를 불렀다. 불놀이와 폭죽, 화려한 성탄의 장면들, 타말리(으깬 옥수수와 다진 고기 등을 옥수수 껍질에 싸서 찐 음식)가 곁들여진 성찬, 그것이 바로 과테말라의 성탄절이다.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며 나는 내 고향 미국과는 다른 그곳의 풍습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향수병에 시달리며 나에게 이번 성탄절은 초라한 시간이 될 뿐일 거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동반자인 아나야 자매님은 이웃을 위해 봉사하면 즐거운 성탄절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아나야 자매님은 아침에 병원에 가서 노래를 불러 주며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했고, 곧이어 우리는 다른 선교사들도 동참하도록 초대했다.
병원 입구에 이르자 가족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먼지투성이 발에 샌들을 신고서 색이 바랜 옷차림을 한 그들은 표정이 어두웠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기다렸다. 마침내 건물로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은 우리는 녹색 페인트가 벗겨진 좁은 복도의 시멘트 바닥을 따라 걸었다. 나는 약품과 질병의 냄새에 압도되었다.
가려 주는 것도 거의 없이 환기도 안 되는 커다란 병실의 침침한 등불 아래 여러 침상에 누운 환자들이 보였다. 붕대를 동여매고, 수액 정맥 주사를 맞거나 산소호흡기를 달고 겨우 숨을 쉬는 사람들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문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아나야 자매님은 그렇지 않았다. 자매님은 각 침대로 다가가
아픈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안부를 묻고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라고 축원해 주었다. 그렇게 자매님의 용감한 모습에 우리도 이곳에 온 이유를 깨달았다. 우리는 성탄절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조용히 시작했지만 노래를 할수록 자신감이 더 커졌다. 몇몇 환자는 빙그레 웃었고, 또 몇몇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 채 그저 누워 있는 듯 보였고, 또 몇몇은 우리를 따라서 콧노래를 불렀다.
아나야 자매님은 손에 찬송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붕대를 휘감고 누워 있는 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 환자는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으며, 내 동반자는 사랑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환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여러분은 천사예요. 여러분은 천사예요.”
그때 아나야 자매님이 한 대답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녜요, 저흰 천사가 아니에요. 당신이 듣고 계신 것은 후기 성도의 노래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을 때, 한 천사가 그 소식을 알리고, 수많은 천군이 하나님을 찬송했다.(누가복음 2:8~14 참조) 나는 성탄절 때마다 그 천사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아나야 자매님도 생각한다. 자매님이 어떻게 우리를 북돋아서 병원에서 노래를 부르도록 해 주었고, 우리가 기쁨을 전파하며 기쁨을 찾도록 도와주었는지를 기억한다. 그 여성 환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자매님의 손길을 기억한다. 아울러 이웃을 섬기기 위해 천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후기 성도로서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
글쓴이는 미국 유타에 산다.
(제니언 젠슨 닐슨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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