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두려움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건과 존중, 경외감이라는 깊은 감정(시편 33:8; 96:4 참조)과 그분의 계명에 대한 순종(신명기 5:29; 8:6; 10:12; 13:4; 시편 112:1 참조)과 그분이 주관하시는 마지막 심판과 공의에 대한 기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경건한 두려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질과 사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분의 뜻에 우리의 뜻을 기꺼이 순종하려고 하며, 모든 남성과 여성은 심판의 날에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비롯되어 발전합니다.(교리와 성약 101:78; 신앙개조 제2조 참조)
경전에서 확인해 주듯, 경건한 두려움은 “지식의 근본”(잠언 1:7), “지혜의 훈계”(잠언 15:33), “경건한 의뢰”(잠언 14:26), “생명의 샘”(잠언 14:27)이 됩니다.
경건한 두려움은 마지막 심판, 그리고 개인적으로 소망과 생각, 말, 행위(모사이야서 4:30 참조)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란 그분의 면전에 가서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 막연히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그분을 두려워할 것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우리의 합리화와 가정, 자기 기만에 대한 “완전한 지식”(니파이후서 9:14; 앨마서 11:43 참조)을 지닌 채 그분 면전에 서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상에 전에 살았고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 행위가 선하든지 혹은 그 행위가 악하든지 그들의 행위에 따라 그에게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모사이야서 16:10) 우리의 소망이 의롭고 행위가 선한 것이라면, 심판대에 서는 것은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야곱서 6:13; 이노스서 1:27; 모로나이서 10:34 참조) 그리고 그 마지막 날에 우리는 “보상을 받아 의에 이를 것[입니다.]”(앨마서 41:6)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소망이 악하고 행위가 사악하다면, 심판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우리가 감히 우리 하나님을 우러러보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만일 바위와 산들을 명하여 우리 위에 떨어져 그의 면전에서 우리를 가리우게 할 수 있다면 실로 기쁠 것[입니다.]”(앨마서 12:14) 그리고 마지막 날에 “악의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앨마서 41:5)
이는 전도서에 요약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도서 12:13~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경건한 두려움은 필멸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선해질 수 없으며 결코 주님의 요건이나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리를 짓누르는 근심조차도 없애 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행위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히 선해질 수 없으며 필요한 만큼 선에 부합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와 소망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후에”(니파이후서 25:23) 우리는 구주의 무한하면서도 영원한 속죄 희생으로 가능해진 자비와 은혜로만 온전해집니다.(앨마서 34:10, 14 참조) 분명,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온 인류가 복음의 법과 의식에 순종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신앙개조 제3조)
경건한 두려움은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더 온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그분을 더 완벽하게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완전한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모로나이서 8:16) 구주를 바라보고, 우리 삶을 그분의 기초 위에 세우며, 성스러운 결심으로 성약의 길로 전진해 나간다면 경건한 두려움이라는 밝은 빛이 필멸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낼 것(교리와 성약 50:25 참조)임을 약속합니다.(2015-04,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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