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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玉盤佳言

구주의 구속에는 아담의 범법과 그 결과로 일어난 인간의 타락에 대해 속죄하는데, 이는 타락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 죽음과 영적인

by 높은산 언덕위 2019. 2. 26.


식민지 시절, 미국에는 노동력 수요가 많았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영국과 독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미국으로 이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여행경비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단 무임으로 배를 타고 가 도착하면 일정 기간 뱃삯을 갚기 위해 무급으로 일한다는 조건으로 노동 계약을 맺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밖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미국에 가 있는 가족들이 그들의 도착에 맞추어 뱃삯을 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왔습니다. 혹 가족이 돈을 내 주지 못하면 이 신참 이민자들은 무급으로 일하여 비용을 갚아야 했습니다. 이런 무급 노동을 하는 이민자들은 빚을 갚는 사람이라는 뜻인 “redemptioner[리뎀셔너]”로 불렸습니다. 그들은 노동을 해서 뱃삯을 갚고 자유를 사야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이름의 하나는 Redeemer[리디머], 즉 구속주입니다. 앞에서 짧게 설명한, 빚 갚아야 하는 이민자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redeem[리딤], 즉 상환이라는 단어는 채무나 빚을 갚는 것을 뜻합니다. redeem[리딤]은 또한 구속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몸값을 대신 치러서 그 사람을 구하거나 자유롭게 놓아 주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를 하고 나서 그것을 바로잡거나 그 대가를 치렀다면, 우리는 그가 자신을 구속했다고 말합니다. 

구주의 구속에는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의 범법과 그 결과로 일어난 인간의 타락에 대해 속죄하는데, 이는 타락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 죽음과 영적인 죽음의 극복을 통해서입니다. 육체적 죽음이 무엇인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육체적, 영적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러한 구속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조건 없이 주어집니다.(20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