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은 신성한 계획에 따라 여성이 받는 영적 유산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제 딸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으며, 이제는 손녀들에게서도 봅니다. 그 아이들은 걷기도 전에 작은 아기 인형을 꼭 안고 다니며 보살피고 싶어합니다.
저는 직업적으로 농사를 짓고 목장에서 일하면서 모성 본능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직접 관찰하는 특권을 누린 적이 있습니다. 봄이 오면 우리는 암소와 송아지 떼를 아이다호 주 스네이크 강 기슭으로 데리고 가는데, 그 산등성이에서 소들은 한 달 가량 풀을 뜯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소들을 모아서 길을 따라 내려가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고는 소들을 트럭에 싣고 몬태나 주에 있는 목초지에 가서 여름을 났습니다.
하루는 유난히도 무더운 봄날이었는데, 저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길을 따라 울타리 쪽으로 내려가는 소 떼 뒤에서 소몰이를 도왔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는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송아지들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느긋하게 해도 되는 일이었기에 생각에 잠길 여유도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송아지들은 그늘을 찾아 나무쪽으로 계속 뛰쳐나가려 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마음이 다른 곳에 쏠려 협착하고 좁은 길에서 멀어지는 교회의 청소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멀어져 교회를 떠났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 교회에서 자기 마음이 떠났다고 느꼈을 사람들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악하지 않은 것들도 충분히 우리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그 요인이 단지 그늘을 찾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길에서 벗어난 송아지들을 모으는 일을 몇 시간 동안 하고 나자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저는 송아지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냥 엄마를 따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엄마는 안단 말이야! 엄마는 전에도 이 길로 가 봤으니까!” 엄마 소들은 비록 그 길이 지금은 덥고 흙먼지가 심하게 일지만 마지막에는 출발지점보다 더 좋은 곳에 도착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소들을 모두 울타리로 몰아넣었을 때, 우리는 세 마리가 유독 초조한 모습으로 문 앞을 서성이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 소는 자기 송아지가 보이지 않자 아기 송아지가 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다고 직감한 듯했습니다. 소 치는 사람 중 하나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송아지들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요. 500미터 정도 되돌아가면 작은 숲이 있는데, 분명히 거기 있을 겁니다.”
제 예감이 맞았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송아지들이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다가가서 한쪽으로 몰려고 하자 송아지들은 깜짝 놀라 저항했습니다. 송아지들이 놀란 이유는 우리가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울타리 쪽으로 밀어붙일수록 송아지들은 더 강하게 버텼습니다. 결국 제가 말했습니다. “잠시만요,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울타리로 돌아가서 엄마 소들을 풀어 줍시다. 그럼 엄마 소가 송아지들을 데리러 올 거예요. 송아지는 엄마 소를 따라갈 거예요.”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예상대로 엄마 소들은 어디로 가야 새끼를 찾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엄마 소들은 새끼를 이끌고 다시 울타리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선택의지를 받았으며, 때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동안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들을 찾으러 가야 합니다. 결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선지자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서 구조하라고 간청하셨습니다.부모는 신권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길을 되돌아가서 잃어버린 자녀를 계속 찾아야 하며, 가족과 교회에는 언제나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정”이 있다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심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언제 마음을 돌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 영혼이 세상에 지쳐 힘들어 할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 자녀가 가장 먼저 마음을 돌리는 곳은 대부분 어머니의 품입니다.(2010,04,브래들리 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