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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제  13  장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순종(킴볼 회장님의 가르침)

by 높은산 언덕위 2017.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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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순종

주님을 믿는 신앙은 우리가 기꺼이 계명에 따라 생활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축복을 받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생애에서

1972년 3월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 대리였을 때 심각한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다. 당시 그의 주치의들 중 한 사람이 러셀 엠 넬슨 장로였으며, 그는 훗날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넬슨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심장이 쇠약해져 가고 있고 죽음이 가까웠음을 느끼자, 킴볼 회장님은 교회의 상위 지도자들, 즉 제일회장단과 함께 회의를 가졌습니다. 요청에 따른 의학적 정보를 제공하도록 헌신적인 심장 전문의였던 어니스트 엘 윌킨슨 박사와 저를 불렀습니다.”

“킴볼 회장님은 가쁜 숨을 쉬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 목숨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속도로 악화되면 앞으로 겨우 두 달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 주치의가 의견을 말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윌킨슨 박사는 킴볼 회장님의 느낌을 시인했고, 회복될 가망이 없으며 머지않아 사망하실 것이라는 결론을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킴볼 회장님은 심장 전문의인 저에게 물었습니다. ‘수술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수술을 하게 된다면, 두 부분에 걸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선 대동맥 판막을 교체해야 하고, 그 후 막혀 있는 중요한 관상 동맥 하나에 우회로를 만들어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제일회장단의 해롤드 비 리 회장님이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수술에 따르는 위험은 무엇입니까?’

“‘모르겠습니다.’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일흔 일곱 살 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수술 중 하나만 해도 상당한 위험이 따릅니다. 그러나 심장이 쇠약해지고 있는 사람에게 두 가지 수술 모두를 실시하는 것은 너무도 큰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수술을 권할 수가 없습니다. …’

“지친 킴볼 회장님이 ‘저는 늙은 사람이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리 회장님이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리 회장님은 일어서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그가 가진 선지자로서의 권능을 갖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장님, 회장님은 부름을 받으신 분입니다! 죽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님은 자신을 돌보고 앞으로 더 살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하셔야 합니다.’

“킴볼 회장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수술을 받겠습니다.’

“그가 그 복잡한 수술을 받았던 것은 의학 전문가들의 견해로 볼 때 그 수술이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 위험과는 관계없이 교회 지도자를 통해 나타난 주님의 권고에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병세를 호전시켜 준 그 수술을 이겨내도록 축복 받았습니다.”1

킴볼 회장은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모범과 권고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그분에 대한 신앙을 보일 때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

참된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동기를 준다.

신앙을 행사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증거 없이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서 일을 성취해 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신앙]은 죽은” [야고보서 2:26] 것이고, 죽은 신앙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 삶을 변화시키거나 용감하게 봉사하도록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사람이 마치 확실히 알듯이 건설적이고 유익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해 줍니다.2

인간은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적과 관련된 기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기적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는 스위치를 눌러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가장 어두운 밤에도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기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거나 집에 배선을 하기 위한 지식은 그에게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등을 구해 오기에 충분한 신앙, 그리고 스위치를 켜기 위한 신앙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는 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그가 라디오를 만들거나 그 작동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도 주파수 다이얼을 돌려서 멀리서 오는 감미로운 음악을 즐길 수는 있지만, 라디오를 전기에 연결하고 다이얼을 올바로 맞추지 않는다면 그 축복은 결코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다이얼을 돌리고 맞춤으로써 영적인 축복과 나타내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 기도와 행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신앙입니다.3

우리는 지혜를 위해 기도하고, 그런 다음 영감을 얻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힘과 책, 생각과 의로움으로 구합니다. 우리는 판단력을 간구하고, 그런 다음 지혜롭게 행하고 지혜를 키우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우리의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기도하고, 그런 다음 열심히 공부하고 온 힘을 다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노력합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건강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고 우리의 몸을 건강하고 활력있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호를 위해 기도하고, 그런 다음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온당한 예방책을 세워야 합니다. 신앙이 수반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4

인간은 자신의 삶을 깨끗하게 해 주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을 잊고, 육신의 모든 약점을 이겨 내도록 해 주는 신앙입니다. 완전하면서도 지속적인 회개를 일으키며 또한 침례, 신권, 성전 의식으로 이끌어 주는 신앙입니다.5

오직 영의 눈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정으로 가득한 복음의 율법 아래, 부유하든 가난하든, 학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은 신앙의 눈으로 먼저 본 후, 노력을 통해 좀 더 높고 고귀한 삶을 삶으로써 그 신앙을 나타내도록 격려 받습니다.6

신앙에 기초를 둔 순종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다.

자진해서 겸손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우리는 현명하고도, 건설적인 순종을 바치게 됩니다.7

순종하는 것! 귀를 기울이는 것! 이 얼마나 어려운 요구 사항입니까!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거나 마실지 명령할 수 없어. 아무도 내 안식일을 정하거나, 내 수입을 가져가거나, 어떤 식으로든 내 개인적인 자유를 제한할 수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구! 난 맹목적인 순종은 하지 않는단 말이야!”

맹목적인 순종이라니오! 그들이 이해하는 바는 얼마나 작습니까! …

인간이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전제 군주에게 신하가 움츠리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고귀하고 기꺼운 순종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독재자는 야심차고 이기적이며 감추어진 동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의롭고, 모든 지시에는 목적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은 다스림을 받는 자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전자는 맹목적인 순종일 수도 있겠지만, 후자는 분명 신앙에 기초를 둔 순종입니다. …

“고압 주의”라는 표지를 존중할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아니면 위험을 알고 있는 전문가의 판단에 대한 믿음에 기초를 둔 순종입니까?

안전 벨트 착용 표시등이 켜져서 항공기 승객들이 안전 벨트를 맬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아니면 위험과 돌발 사태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에 바탕을 둔 신뢰입니까?

어린아이가 신이나서 탁자에서 뛰어내려 미소짓고 있는 아버지의 힘센 팔에 안길 때 그것은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아니면 붙잡아 줄 수 있음을 확신하며 생명 그 자체보다도 자녀를 더 사랑하는 애정 어린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까? …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 세상을 지으셨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감추어진 동기가 전혀 없이 우리를 위하여 건설적인 프로그램을 계획하셨고, 모든 자녀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모세서 1:39 참조]이 가장 큰 기쁨과 영광이신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와 명을, 제한된 안목과 초보적인 지식, 이기적인 소망과 마음 속의 동기뿐만 아니라 육욕적인 충동마저 갖고 있는 우리들이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과연 맹목적인 순종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8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자신을 이미 증명해 보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따르는 것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닙니다.9

경전은 신앙에서 나오는 순종에 관한 본보기를 제공해 준다.

의롭고 지혜로운 부모인 아담과 이브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훌륭한 순종에 대한 모범을 보였습니다.

“… 아담이 주의 계명에 순종하더라.”

“여러 날 후에 주의 천사가 아담에게 나타나 이르되, 어찌하여 너는 주께 희생을 드리느냐? 한즉, 아담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하노라.”

“이에 천사가 말하여 이르되, 이 일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희생하실 모형이니라.” (모세서 5:5~7)

맹목적인 순종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며, 에덴 동산에서 그분과 함께 걸었으며, 그분의 선하심, 공의로우심, 이해심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날” 동안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흠 없는 어린 양을 죽여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는 의로운 목적이 있으며, 순종한 후 그 이유가 밝혀질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0

히브리 사람들에게 말씀하던 중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히브리서 11:7)

그러나 비와 홍수의 징조는 없었습니다. 그의 백성은 그를 조롱하고 바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훈계는 무시당했습니다. 그의 경고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한 전례는 없었습니다. 대홍수가 땅을 뒤덮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태양이 빛나고 모든 것이 평소와 같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마른 땅에서 방주를 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방주가 완성되었습니다. 홍수가 닥쳤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거역했던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방주의 기적은 방주를 지을 때 보였던 신앙의 결과로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히브리서 11:11) …

100살 된 사람에게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이치에 맞지 않았으므로, 사라조차도 처음에는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한 고귀한 부부의 신앙은 효험이 있었으며, 만국의 아버지가 될 기적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초인간적인 시험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을 때 그는 대단한 신앙을 보였습니다. 그는 만국의 아버지가 될 운명을 타고난 그의 어린 “약속의 자녀”를 희생 제단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지만, 너무도 모순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 이삭이 어린 시절에 필멸의 생을 마친다면 과연 어떻게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의 아버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어찌하여 이렇게 끔찍한 행동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을까요? 그것은 모순되는 일이었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굽히지 않는 신앙은 그가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어린 아들과 함께 모리아 땅으로 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로마서 4:20~21)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으며, 알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삭은 분명히 살아서 수많은 후손의 아버지가 될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삭이 죽어야 한다 해도 그들은 이삭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삭이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질 수 있음을 알았으며, 이 신앙이 기적을 낳았습니다.11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이 처음부터 끝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 보지 못했어도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떤 문도 열려 있지 않았고, 라반은 술에 취해 있지 않았으며, 니파이가 신앙을 행사해서 판들을 얻기 위해 마침내 출발했던 순간에는 그 어떤 소망도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맹렬한 불길 속에는 세 히브리인을 죽음에서 보호하기 위한 어떤 내화성 의료 또는 그 밖의 평범한 보호 장치도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굴에 감금되었을 때 가죽이나 금속 재갈이 사자의 입에 물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

… 박해 받던 개척자들이 평원을 건넜을 때 유타에는 마을과 도시, 농장과 정원, 가옥과 창고가 하나도 없었으며, 번영한 사막도 없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지식을 갈구하던 조셉이 조용히 숲으로 들어가서 강둑에서 무릎 꿇고 기도 드리고 성스러운 언덕의 비탈을 올랐을 때, 팔마이라, 사스케하나 또는 쿠모라에는 하늘에서 온 사자가 없었음을 기억하십시오.12

신앙이 기적을 낳는다.

우리는 신앙으로 씨앗을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이 피는 기적을 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오해하여 그 과정을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심기 이전에 수확을, 봉사 이전에 보상을, 신앙 이전에 기적을 보고 싶어합니다. …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건강의 율법을 준수하지도 않고 강한 체력을 기대하며, 십일조를 내지도 않고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번영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금식과 기도를 하지도 않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의사소통을 원합니다. 안식일을 준수하지도 않고 주님의 다른 계명들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적절한 절기에 비를 바라고, 땅에 평화를 바랍니다. 뿌리를 심기도 전에 장미를 꺾고자 합니다. 곡식을 심고 경작하기도 전에 수확하고자 합니다.

모로나이가 기록한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 신앙이 없을진대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으심이라. …

“또 어느 때라도 신앙을 갖기까지는 아무도 기적을 행하지 못하였나니, 이러므로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더라.”(이더서 12:12, 18)13

이제 우리가 신앙으로 행동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들을 믿을 수 있다면, 순종하고 인내로 기다릴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풍성한 약속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고린도전서 2:9)14

돈은 부족하고 쓸 곳은 많을 때 십일조를 내기 위해서는 커다란 신앙이 필요합니다. 금식을 하고 가족 기도를 하고 지혜의 말씀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희생이 필요할 때 가정 복음 교육, [회원] 선교 사업, 그리고 다른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씨앗을 심는 일이며, 그에 따르는 수확은 충실하고 헌신적인 가족, 영적인 보호, 평화, 그리고 영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

… 굽히지 않는 신앙이 사자의 입을 멈추게 하고, 맹렬한 불꽃을 쓸모 없게 만들며, 강과 바다를 지나는 마른 길을 열어 주고, 대홍수와 가뭄에서 보호하며, 선지자들의 간청에 의해 하늘의 증거하심이 나타났던 것처럼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신앙은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애통하는 자에게 위안을 가져다주며, 유혹에 대한 각오를 강화시키고, 해로운 습관의 속박에서 구해 주고, 회개하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얻도록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꿋꿋한 신앙은 우리가 기꺼이 계명에 따라 생활하도록 돕고, 하나님의 왕국에서의 평화와 온전함, 그리고 승영과 함께 무수한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15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이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이 장의 제목을 살펴본다. 순종이 신앙의 행위인 까닭은 무엇인가?

        1972년 3월에 킴볼 회장이 내려야 했던 결정에 대해 읽는다. (135, 137쪽) 우리가 어려운 결정에 직면할 때 어떤 복음 원리들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는가?

        “맹목적인 순종”과 “신앙의 순종”에 대한 킴볼 회장의 비교를 읽으면서 어떤 차이점을 볼 수 있는가? (139~140쪽 참조)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중, 우리가 그분께 “자발적으로, 겸손하게 그리고 기쁘게”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 회원들이 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여러분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

        140~142쪽에 있는 경전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이 이야기들에 나오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에는 무엇이 있는가? 여러분은 그들과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여러분은 신앙이 기적을 낳는 것을 언제 보았는가?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142~143쪽을 참조 한다) 신앙이 기적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 가족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

관련 성구: 여호수아 22:5; 야고보서 2:14~26; 이더서 12:4~21; 모로나이서 7:33; 교성 130:20~21

1.       “Spencer W. Kimball: Man of Faith”, Ensign, 1985년 12월호, 40쪽.

2.       “The Fourth Article of Faith”, Instructor, 1955년 4월호, 109쪽.

3.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ward L. Kimball 편 (1982년), 62쪽.

4.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122쪽.

5.       “Beloved Youth, Study and Learn”, Life’s Directions (1962년), 188~189쪽.

6.       Conference Report, 영국 런던 지역 대회 1976년, 36쪽.

7.       Conference Report, 1954년 10월, 55쪽.

8.       Conference Report, 1954년 10월, 51, 52, 53쪽.

9.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59쪽.

10.     Conference Report, 1954년 10월, 54쪽.

11.     Conference Report, 1952년 10월, 48, 49쪽.

12.     Conference Report, 1952년 10월, 51쪽.

13.     Conference Report, 1952년 10월, 47쪽.

14.     Conference Report, 1952년 4월, 22쪽.

15.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년), 11,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