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사람 : 올리버 카우드리 : [참고 주: LDS Biographical Encyclopedia, Andrew Jenson, Vol. 1, p.246]
"몰몬경의 세 목격자중의 하나요, 교회의 첫번째의 기록인 이었던 올리버 카우드리(Oliver Cowdery)는 버몬트주의 Ruthland군에 있는 Wells읍에서 1806년 10월 3일에 태어났다. 올리버는 그가 뉴욕주 온타리오군 맨테스터읍의 학군에서 가르칠 때까지, 1828~1829년 겨울까지 한 상점의 서기로 고용되었다. 거기에서 올리버는 자기 학교의 학부모였던 조셉 스미스 일세 (선지자의 아버지)를 알게 되었고, 그의 집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었다. 그 당시에 스미스 가족은 어린 조셉이 몰몬경의 판들을 받았다는 상황을 그에게 연결시켜 주었고, 올리버는 깊은 흥미를 갖게 되어 이 기이한 일에 대한 특이함을 캐 내고자 결심했다. 그는 그의 마음에 가르침을 받고자 주님께 기도했고, 어느날 밤 그가 잠자리에 들었던 후 주님께서 시현을 통해 그에게 판들의 발견에 관련된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올리버는 이 일들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서 조셉 스미스를 방문하기로 결정했고, 드디어 1829년 4월 5일에, 뉴욕주에서 있었던 송사 (persecution) 때문에 잠정적으로 펜실베이니아주 하모니읍에 옮겨와 있던 선지자를 만나게 되었다. 조셉과 올리버의 만남은 올리버에게 뿐만아니라, 얼마 동안 몰몬경 판들의 보관자로 있으면서도 필사자 (scribe) 가 없어 번역을 해오지 못하고 있었던 조셉에게도 신의 섭리였다. 조셉에게는 올리버는 그의 일에 있어서 자기를 돕는데 적절한 사람으로 보였고, 만난지 이틀 후에는조셉 스미스는 필사자인 올리버와 함께 “몰몬경 번역을 시작했다.”
"며칠후에 조셉 스미스를 통해서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계시가 주어졌다. [D&C Sec. 6]. 1829년 5월 15일,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는 금판에 언급되었던 죄 사함을 위한 침례에 관하여 알고자 기도로 간구하기 위하여 숲속으로 들어갔다. 기도를 하고 있던 중에, 하늘의 사자가 빛 가운데 하강하여, 그의 손을 두 사람 머리위에 올려 놓고, 그들을 다음과 같이 “구세주의 이름으로, 그대들, 나의 충직한 종들에게 아론 신권을 부여하노니, 이것은 천사들 영역의 열쇠와 회개와 죄사함을 위한 물속에 잠김에 의한 침례에 관한 복음의 열쇠를 지녔으니, 이것은 레위 (Levi)의 자손들이 의롭게 주님께 제물을 다시 바칠때까지, 이 지상에서 결코 다시 거두어 들이지 않을 것이다.” 말하였다. 그 하늘의 사자는 또 그들에게 명하여 서로 침례받고 신권 성임을 하되, 조셉이 올리버를 먼저 침례 준 다음 올리버가 조셉을 침례 주도록 명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했고, 그후 조셉은 올리버의 머리위에 두손을 얹고 그를 아론 신권에 성임하였다. 그다음 올리버도 마찬가지로 조셉의 머리 위에 두손을 얹고 아론 신권을 성임하였다. 이른 유월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부인 그리고 올리버 카우드리는 뉴욕주 세네카군 페이에트로 옮겨 거기에서 몰몬경 번역을 계속하여 끝냈다. 그때는 1829년 6월달 중이었는데 세 목격자들에게 금판이 보여졌던 때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 의해 멜기세덱 신권에 성임되었다.
"교회가 페이에트에서 1830년 4월6일에 조직되었을 때, 올리버 카우드리는 초창기 여섯명 중에 하나였고, 조셉 스미스에 의하여 교회의 두번째 서열의 장로로 성임되었다. 4월11일에 올리버는 이 경륜의 시대에 장로로서는 첫번째의 설교를 하였다. 올리버 카우드리는 1832년 1월 22일에 미주리주 잭슨군의 Kaw읍에서 피터 휘트머 일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앤 휘트머와 결혼을 했다. 1835년 2월에는 세 목격자들은 교회의 장로들 중에 12명을 선택하여 12사도로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들을 축복하고 지도하는데 있어서, 올리버 카우드리는 현저한 역할을 하였다. 1836년 4월 3일, 선지자 조셉과 함께, 올리버는 구세주와 또 이 위대한 말일의 경륜의 시대의 사업을 진척시키기에 필요한 열쇠를 그들에게 위임했던 모세, 일라이어스와 선지자 엘리야를 보았고 그들의 말씀을 들었다. [D&C Sec. 110]. 1838년 4월 11일에, Symour Brunson 장로는 올리버 카우드리를 상대로 아홉건의 책임을 물어 파웨스트의 고등평의회(High Council)에 회부되었다. 올리버 카우드리는 교회로 부터 파문당한 뒤 미시건에서 사업법에 관련하여 변호사로서 역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몰몬경의 진실을 결코 부인한 일이 없었다.
"1848년 10월 21일에 아이오와주의 케네스빌(Kanesville)에서 사도 올슨 하이드가 감리하는 교회의 특별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그때에 올리버 카우드리가 거기에 와 있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친구들 그리고 형제님들, 내 이름은 카우드리, 올리버 카우드리 입니다. 이 교회의 초창기 역사에 있어서, 나는 교회와 함께 있어 왔고, 위원회의 일원이었읍니다. 하나님의 재능과 부름은 뉘우침없이 주어진다는 것은 사실이고, 나 또한 내가 부름을 받은 것이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니고, 단지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도록 주어졌읍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고귀하고 성스러운 부름을 주셨읍니다. 나는 나의 펜으로 직접 전 몰몬경 (몇페이지만 빼고) 을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권능으로, 성스러운 번역기라 불리기도 했던 우림과 둠밈의 도움으로, 번역되는 것이 그의 입술로 부터 떨어져 나오자 마자 손수 적어내려갔읍니다. 나는 내가 번역에 따라 적어내려 왔던 (필사 했던) 금판을 나의 눈으로 직접 보았고, 손으로 만져 보았읍니다. 나는 또한 “성스러운 번역기”인 우림과 둠밈을 보았고 만져 보았읍니다. 저 책 (몰몬경)은 진실된 것입니다. 시그니 리그돈이 쓴게 아니고, 스펄딩(Spaulding)씨가 쓴것이 아닙니다. 선지자의 입술로 부터 흘러 나올때에 내가 받아 적었읍니다. 그것은 영원한 복음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고, 요한이 보았던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지닌 한 천사” [계14:6] 의 계시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인간의 자녀들에 보내진것입니다. 이책은 구원의 원리를 지니고 있는데, 만약 내 말을 듣는 당신들이 이 원리들에 순종하고 빛과 함께 걷는 다면, 당신들은 저 위에 있는 하나님 왕국에서 영생과 함께 구원될 것입니다 [p. 250]. 올슨 하이드 형제님이 ‘모래 둔덕을 피하기 위해서 진리의 길로 걷는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바로 말씀하셨읍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길은 여기 이 말씀에 있읍니다. 성스러운 신권이 여기 있읍니다. 나는 하늘로 부터 하나님의 성스러운 천사가 나타나 우리에게 소신권 인 아론신권을 부여 (회복) 하셨을 때, 조셉과 함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말하길, 이 신권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지상에 남아 있을 것이라 하셨읍니다. 나는 또한 대신권인 멜기세덱 신권이 하늘로 부터 온 천사들에 의하여 부여될때에 조셉과 함께 있었읍니다. 그런후 우리는 이 신권을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의하여 서로 부여했읍니다. 이 신권도, 부여될 당시에 선포되었듯이, 지구의 마지막 날까지 지상에 남아 있을 것이라 하였읍니다. 우리는 그후 이 성스러운 신권을 마치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집행하셨던거와 마찬가지로 선하고 명확하게 많은 합당한 자들에게 부여해 왔읍니다. 나는 나의 손을 많은 자들의 머리위에 얹었고, 내 오른손을 (Hyde형제를 가르키며) 저 형제의 머리위에 얹고, 그에게 이 신권을 부여했읍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신권을 지니고 있읍니다. 그는 또 나를 통해서 믿음의 기도에 의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부름을 받았읍니다.”
"이른 11월달에 올리버 카우드리의 경우를 고려하기 위하여 하이드 장로는 Log Tabernacle에 고등평의원(High Councilor)들을 불러 모았다. 고등평의회(High Council)에 의하여 파문되었었기 때문에, 그의 축복을 회복시키는 데도 같은 조직이 고려되었다. 올리버 카우드리는 고등평의원들 앞에 서서 ;
“형제님들, 여러해 동안 나는 여러분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었읍니다. 나는 지금 다시 돌아오기를 열망합니다. 나는 겸손히 돌아와 여러분들 가운데 있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특별한 처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 회원들과 동일시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교회 밖에 있고, 교회 회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회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문(door)을 통해 들어오길 바랍니다. 나는 그 문을 압니다. 내가 여기 온것은 먼저 지녔던 위치를 찾고자 함이 아니고, 겸손히 결정에 따르도록 왔읍니다. 내가 아는 것처럼 이 High Council의 결정은 옳고 그대로 따르게 될것입니다.”
"하이드 형제는 올리버 카우드리 형제가 침례를 통해 교회에 다시 들어오고, 지난번의 모든 제한들은 없어지도록 제의 되었고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다. 그런후 곧, 올리버 카우드리는 침례를 받았다. 새뮤얼 W. 리차드 장로는 다음과 연계시키었다:
“1848-49 겨울 미동부로부터 올리버 카우드리와 그의 가족들의 카운실 블러프스(Council Bluffs) 도착은 교회의 역사에 한 흥미있는 사건이었다. 그의 가족과 함께, 그는 유타에 있는 교회로 향하고 있었지만, 기차가 평원을 가로질러 가기에는 시기가 너무 지났다. 그래서 그는 그 아내의 친구들인 미주리에 살고 있는 휘트머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미주리에 있던 친척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병이 들어, 말일의 역사에 있어서 훌륭한 신앙과 우정속에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세계에 알리길 원하는 가운데, 사망하였다.” [“Contributor", Vol. 5, page 446]. 올리버 카우드리는 미주리주 레이군 리치몬드에서 1850년 3월3일에 사망하였다.
"올리버 카우드리의 임종시에 같이 있었던, Phineas H. Young 장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조셉 스미스를 통해 계시된 복음의 진실과 신권의 행함을 통해 얻어 졌던 성스러운 신권의 권능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었다.”
"올리버 카우드리의 이복누이인 루시 P. 영(Phineas H. Young의 부인) 다음과 같이 말을 전했다: 올리버 카우드리는 그의 마지막 숨결이 넘어가기전에 거기에 있던 가족과 친구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려,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기를 침대에서 이르켜 앉히게 해달라 한후, 그는 그들에게 몰몬경에 있는 가르침대로 살도록 말하고, 그들에게 약속하길, 그렇게 할진데, 우리는 하늘에서 서로 만날 것이다 했다. 그런후 다시 말하길, “나를 내려놓아 잠들게 해달라.” 했다. 그런후 얼마의 순간 후에 아무 고통없이 숨을 거두었다. 데이비드 휘트머는 1878에 사도인 올슨 프랫과 조셉 F. 스미스에게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였다: “올리버는 내가 보아 왔던 사람중에 가장 행복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가족들과 악수를 하고, 그의 부인과 딸에게 입을 마춘 후 말하길, ‘이제 마지막을 위하여 나를 내려주오. 나는 주님께 가려하오;’ 하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는 저 세상으로 즉시 가버렸다.”
[“Millennial Star.” Vol. 40, p. 774] 다시 돌아온 사람들 (2편) : 올리버 카우드리 (번역, 최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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