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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안식일

안식일을 지키는 기쁨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31.


기 성도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는 환경에서 후기 성도로 성장했던 것이 제게는 어린 시절의 즐거운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생일과 공휴일, 축구 경기 날, 가끔 하던 가족 바베큐 파티에 가족과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이던 일이 특히 더 기억이 납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좋아하는 추억은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던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 드리는 것이 저희 가족에게는 기본이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저는 화요일 저녁마다 하던 축구를 언제나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또한 일요일에 교회에서 하는 성찬식 모임, 주일학교, 신권회 시간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복음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정말 좋아서 모임이 끝난 후에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제 유년시절에 보여주셨던 선한 모범의 참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한 가족의 가장이 되고서 저는 '[주님]의 거룩한 날에 기도의 집에 가서 [우리의] 성찬을 바[치는]'(교리와 성약 59:9)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축복들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에 친구들과 1년간 교회 모임에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진심으로 기뻐하던 일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충실히 교회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않게 자신을 지켰습니다. 즐거운 마음과 유쾌한 얼굴로, 참으로 기쁨이 가득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교리와 성약 59:9, 13~15 참조)

 

안식일 전통

여러 해 동안 저희 부부는 자녀들과 브라질 남부에 있는 저희 집 부근의 작은 해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때로 일 때문에 이사를 하기도 했으나 그 작은 해변에서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살아도, 우리는 큰 기대와 기쁨을 안고 매년 그곳으로 휴가를 갔습니다. 일가 친척과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1년에 한 번 모두가 함께 하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왔습니다. 모두가 최대한 일찍 와서 최대한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 조그만 해변에서 저희 가족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훌륭한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친척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이 아니었기에 우리와 종교적 믿음이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주의 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놀고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가족이 주중보다 주말에 해변에서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우리가 일요일 가족 모임에 오기를 바랐으며 심지어 저희 아이들조차도 끈질기게 졸랐습니다.

아이들은 어렸고, 복음 진리대로 사는 것을 막 배우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사촌들과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일요일에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유혹이 아이들에게는 아주 컸습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복음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안식일을 어기는 일을 합리화하는 것은 쉬웠을 것입니다. 아무튼 당시에 그 해변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는 96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습니다. 교회 친구들과 이웃들은 멀리에 있어서 저희가 일요일에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대신 해변에서 놀았다 하더라도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저희는 일년 내내 꼬박꼬박 교회에 참석했고 친척들은 1년에 고작 몇 주만 함께 모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일요일에 단 한번도 교회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저희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더욱 온전히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도록 나의 거룩한 날에 기도의 집에 가서 네 성찬을 바칠지어다.

이는 진실로 이 날은 네 일을 쉬고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네 헌신을 바치도록 너희에게 정해진 날임이니라. ……

그러나 이 날 곧 주의 날에는 네 헌물과 네 성찬을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바칠 것을 기억하라. ……

그리고 이 날에는 다른 어떠한 일도 하지 말 것이요, 다만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네 금식이 온전하게 되도록, 또는 다른 말로 하면 네 기쁨이 충만하게 되도록 할지니라.'(교리와 성약 59:9~13)

저희는 이 계명을 지키기로 했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이들도 이내 친구나 가족들을 기쁘게 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일보다 하나님의 거룩한날에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을 이해했습니다.

 

순종으로 받는 축복

해변에서 일요일이면 우리는 일찍 일어나 일요일 예배를 위해 옷을 차려 입고, 차로 제일 가까운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교회에 갔다 오는 동안, 그리고 그 날 내내 주께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평화와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저희는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한 이러한 느낌이 결코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뭔가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사촌 아이들 몇몇이 함께 교회에 가도 되겠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조카들도 저희가 느낀 평화와 기쁨을 교회 모임에 다녀오는 저희의 모습에서 느꼈다는 것을 저희는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커다란 축복이 임했습니다. 조카 두 명이 청소년이 된 후에 '후기 성도가 되고 싶어요.'라고 부모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곧 그 가족 모두가 침례를 받았으며, 최근에 그 자녀 중 한 명이 선교 사업을 마치고 성전 결혼을 했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매년 그 해변으로 갑니다. 하지만 일요일에는 저희 가족이 그곳에서 놀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대신 저희 가족은 함께 가려는 친지들과 함께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매년 그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월을 돌아보며 저희가 내린 선택을 생각해 볼 때, 옳은 일을 하며 자녀에게 그와 같이 하도록 가르치는 일을 용감하게 해낼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저희는 그 결정이 자녀들뿐만 아니라 일가 친척들까지 강화했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희의 선택을 소중히 하자 주께서 약속하신 평화가 왔고, 그것은 가족들이 개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영혼을 채우지 못할 여타 세상적인 일요일 행사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만족감을 축복 받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축복들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그분을 경배함으로써 오는 기쁨과 축복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저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는 것을]'(시편 144:15) 간증합니다

 

(마르코스 에이 아이두카이티스 장로 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