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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앙·간증

희망을 품고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31.

20 대 중반이었을 때, 아날도
텔레스 그릴로 형제는 저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퇴직한 기술자였던 62세의 그릴로 형제는
포르투갈 오에이라스 지방부 회장단 보좌로 부름
받았으며 우리는 몇 년간 함께 봉사했습니다.
그분이 지닌 지혜와 경험에서 당시 젊은 신권
지도자였던 저는 매우 귀중한 조언과 식견을
얻었습니다. 그분은 타고난 낙천주의자였으며,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늘 밝은 면을 보았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그분의 태도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의 원천이 되었는데,
특히 저에게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분이
어떤 힘든 시련을 겪어 왔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기술을 전공한 그릴로 형제님은
포르투갈 국립 농촌진흥청에 연구원으로
들어갔으며 이후에 아프리카에 있는 포르투갈
식민지 중 한 곳에 가서 ‘면화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그분은
그 나라에 있는 국제적인 대규모 은행의 고위
임원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약 30년을 보내면서 그분은 가족을양육했으며, 분쟁과 전쟁이란 비극
때문에 포르투갈로 급히 귀국하기 전까지 멋진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해 마지 않던 그 나라에 전쟁이 남긴
참상을 목도한 그릴로 형제님과 가족은 일구어
놓은 모든 재산과 소유물을 그대로 남겨둔 채
떠나야 했습니다.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전쟁이
점차 평화와 안정을 모두 휘저어 생긴 혼란과 소요
가운데서도 그릴로 형제님은 한 친구를 구해 내기
위해 독일에서 구입한 값비싼 자동차를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그 차 덕분에 친구는 자신의 모친과
함께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릴로 형제님은 열심히 일하여 부를 얻었지만
그런 것 때문에 인생의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분명한 원칙과
가족에 대한 사랑 안에 굳건히 닻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52세 나이로 포르투갈에 돌아온 그릴로
형제님은 모든 것을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의 삶이
남달랐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그토록 긍정적이었을까요? 왜 그토록자신감이 충만했을까요?
그릴로 형제님은 포르투갈에서 교회가
초창기일 때 개종했으며 그 나라에서 단단한
기둥이자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왕복
4,50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오가며 가족을
스위스 성전으로 몇 번이고 데려갈 정도로 신앙과
헌신을 보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봉사하면서
그릴로 형제님 내외는 자녀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릴로 형제님은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와,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신다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신앙에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비롯된
것입니다.
신약전서는 위대한 희망찬 메시지로 끝을
맺습니다.1 계시자 요한 같은 선지자들은 미래에
닥칠 일들을 보았으며 의 안에서 끝까지 견딜 때
얻는 축복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요한은 일곱 인, 즉 일곱 시대를 보았고
어떻게 사탄이 항상 의로운 사람들을 대항하여
싸울 것인지를 묘사했습니다.(요한계시록
5:1~5; 6 참조) 그렇지만 요한은 사탄이 묶이며
그리스도가 승리 가운데 통치하시게 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요한계시록 19:1~9;20:1~11
참조) 마지막으로 그는 최후의 심판이 끝난
후 의로운 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임을
보았습니다.(요한계시록 20:12~15 참조)
오늘날 우리가 받은 커다란 과제 중 하나는
시련과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두려움과 절망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신문을 펴고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
뉴스를 듣다 보면 단 몇 분만에 날마다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와 자연재해 소식을 듣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악을 정복하시고, 진리가 어떻게
거짓을 이길 것인지에 대한 경전상의 약속을
이해하면, 희망과 낙관 속에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전쟁과 자연재해, 경제 위기를 목도합니다. 때때로 이러한 일들은 먼 발치서 구경하는 일이 아닌,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있는 소유를 잃었다 하여 슬퍼하거나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인생에서 누리는 단순하면서도 소중한 기쁨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날도 텔레스 그릴로 형제님이 보이신 모범에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영적인 것을 우선시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가족 관계나 타인을 위한 봉사와 같은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 크게 가치 있을”(니파이후서 25:8) 일들이었습니다.
악의 세력이 정복당할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모두 희망을 품고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시련을 겪을 때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경전과 살아 있는 선지자의 가르침, 신권 권세, 성전, 교회 회원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를 통해 “승리자”(교리와 성약 10:5)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께서 완벽한 속죄 희생을 치르셨으므로 우리 모두 영생에 대한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모로나이서 7:41 참조)
올바른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그분의 왕국, 가족을 맨 앞에 둘 때, 우리에게는 현재와 미래의 시련에 맞서는 데 필요한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호세 에이 테제이라 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