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막강한 선교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선교사업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선교사업은 그들을 상징하는 것이며 오늘날 각 나라에서 나온 5만 5천명의 선교사들이 세계 각국을 누비고 있다. 교회는 최근 20여년 동안에 지역 교회를 탈피하여 바야흐로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으며 세계의 어느 구석에도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를 포함하는 북미대륙과 서부유럽의 몇나라를 중심으로 하던 교회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지중해 연안의 남부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그리고 인근의 아랍제국 일부, 그리고 아프리카의 전역,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동남아 여러나라와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 홍콩을 거쳐 대만,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필리핀을 중심으로 산재한 태평양의 많은 섬들,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인근 남태평양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 북으로 알래스카 일대와 남으로 중미 그리고 남미 전역,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포함한 북부유럽과 그린랜드, 최근 개방된 중부 및 동부유럽의 모든 나라와 러시아 등에까지 선교의 힘을 뻗쳐 “전세계의 모든 백성이 이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계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선교사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은 젊은 선교사와 부부 선교사와 일반회원들이다. 젊은 선교사들은 대개 19세에서 20세 사이의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거나 대학교 1학년 또는 2학년 연령의 젊은이들이다. 이들 젊은이들은 선교사로 나가기위해 준비하고 교회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그러나 부름에 응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한다. 이들은 전도임무를 띠고 세상에 파송되었던 그리스도 당시의 칠십인들과 마찬가지로 둘씩 짝지어 여행하며 하루 16시간씩 1주일에 엿새를 전파한다. 이들의 규율은 매우 엄격해서 데이트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를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심지어 자기 고향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조차 자제한다. 신앙이 좋은 젊은이들은 선교사로 부름받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교육이나 직장 구하는 것을 미루고 결혼도 연기한 채 2년간 선교사로 봉사한다. 선교사로 활동하는 모든 비용은 자기가 저축한 것으로 부담하거나 부모가 부담하는데 월 450달러 정도가 평균적인 비용이다. 이렇게 많은 미혼의 젊은이들이 선교사로서 세계 각지에서 일하지만 탈선을 했다거나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선교사를 마치고 귀환한 젊은이의 97%는 십일조를 완전하게 바치고 교회의 높은 도덕적인 표준을 지키며, 95%는 성전결혼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미국의 젊은이들이 선교사업을 담당했으나 오늘날에는 세계 각국에 있는 교회의 많은 젊은이들도 선교사로 떠난다. 중남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의 60%는 같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 젊은이들이며 필리핀에서는 선교사의 75%가 현지인들이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 8백명 중 25%는 한국인이며, 한국인 선교사 중에는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태평양 제도에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 젊은이들은 선교사로서의 희생과 봉사를 통해 세계적인 안목과 시야를 갖게 된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은퇴한 부부들도 선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로 약 3천쌍의 은퇴한 부부들이 세계 각지에서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이들은 많은 교육을 받고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직장경험을 통해 좋은 인간관계와 지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우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후기성도의 선교사업은 놀랄 만한 크기와 조직과 열성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선교사의 숫자는 미국에서는 다른 교회의 모든 선교사를 합친 것보다도 훨신 많다. 미국 개신교 최대의 교파인 남침례교 총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는 신자수 1천4백90만명에 대하여 3천8백명의 유급 선교사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것은 몰몬교회의 무급 선교사 군단의 10분의 1에 미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일반회원들도 전도사업에 열심히다. 모든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이웃에게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도록 권고받고 있으며 좋은 모범을 보이려고 애쓰고 이웃을 돕는 일에 열성적이다. 교회의 성장은 이와 같이 비공식적인 회원가정 선교사업(Home Mission Program)과 공식적인 선교사업이 어우러져 이뤄진다. 후기성도들은 대단히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며 무섭게 부지런히 일하면서 높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신자들이 매우 많다. 이러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친구와 친척과 동료와 이웃에게 교회를 소개하고 선교사들은 그들을 가르친다. 교회의 대부분의 활동은 가족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특히 개종자가 어른일 경우에는 대개 자기 배우자와 자녀들을 교회로 데리고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은 회원가정에 의한 선교사업은 성공률이 매우 높다.
이 교회에는 바울 사도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전설적인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 중 한사람만 예를 들어보자. 1810년 웨일스 지방의 플린셔(Flinshire)에서 태어난 댄 존스(Dan Jones)는 1840년에 미국으로 이민갔는데 1843년에 몰몬으로 개종했다. 그는 순교 직전의 조셉 스미스와 함께 하였는데 조셉 스미스는 그를 보고 생애의 마지막 예언을 남겼다. “그대는 웨일스에 다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선교사업의 사명이 부여되어 생을 마치기 전 그것을 완전히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날 그는 폭도들의 총탄이 빗발치는데도 불구하고 카테이지 감옥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몇 달 후 과연 그는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부인과 함께 웨일스로 떠났다. 몇사람의 선교사와 함께 일하면서 그는 1845년에서 1848년까지 불과 3년 동안에 무려 3천6백명의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이 숫자는 당시 웨일스 사람을 2백78명에 1명꼴로 개종시킨 것이었다. 성공이 커짐에 따라 반대자들은 신문과 출판물을 총동원하여 공격해 왔으나 그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신의 출판물을 통해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의 출판물은 영어 이외의 언어로 된 최초의 간행물이었다. 그는 아주 대담한 전도방법을 썼다. 그는 한 마을에 전도하러 갈 때는 몇주 전부터 자기가 온 마을을 개종시키기 위해 간다는 광고를 했다. 그는 시장과 시의회와 성직자들과 경찰에 자기의 뜻을 알렸다. 그는 그 마을에 사는 교회성도들로 하여금 수천장의 전단을 만들게 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가 기착역에 도착할 때는 그 도시의 많은 공직자들과 신이 난 수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대중적 주의를 끌면서 시민들로 하여금 몰몬의 복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가 개종시킨 많은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귀국하는 길에 2백49명의 개종자들과 함께 배로, 다음에는 마차로 유타까지 여행했는데 여행기간은 무려 8개월이 걸렸다. 도중에 전체의 5분의 1이 넘는 67명이 콜레라에 걸려서, 아니면 추위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었다. 유타에 돌아와서 그는 맨타이(Manti)시의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1년후 그는 다시금 고향 웨일스에 가서 전도하도록 선교사의 부름을 받았다. 아무런 주저함 없이 1852년에 그는 웨일스로 출발하였다. 포장마차를 타고 솔트 레이크 시티의 동쪽 128Km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는 동쪽에서 오는 대규모의 웨일스 이주민을 만났다. 바로 몇 년 전에 자기가 개종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는 가난한 고향 사람들을 부탁하는 간곡한 편지를 교회지도자에게 썼다.
“존경하는 헌터 감독님, 많은 우리 고향 사람들이 그리로 갑니다. 저는 이 사람들의 정확한 재정상태를 모릅니다. 돈도 별로 없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들을 돌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와 주신다면 맨타이에 다시 돌아와 모두 갚겠습니다.”
웨일스로 다시 돌아와서 그는 다시금 모든 정력을 전도활동에 쏟았다. 2년간에 걸친 두 번째 선교사업에서 그는 2천명을 개종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