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성도들은 세계적인 시야와 안목을 가지고 전통적으로 기독교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유태인과 이슬람 사람들과도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해왔다. 후기성도와 유태인들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상호 존중과 호감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후기성도들은 자기들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요셉의 후손에 접목된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유태인은 유다지파의 후손이라 하여 매우 가까이 느낀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에는 두 종교는 종국적으로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후기성도들은 자기들과 유태인은 하나님과 특별한 성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광야(사막)에서 시련을 겪고 심한 박해를 받는 등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1840년 조셉 스미스는 유태인인 올슨 하이드(Orson Hyde) 사도를 팔레스타인에 파견하였다. 이것은 유태인이 다시 모여 이스라엘을 건국하기 거의 1백년전 일이다. 1841년 10월 24일 하이드 사도는 감람산 위에서 팔레스타인 성지를 유다의 잔류민이 다시 모이게 될 땅으로 헌납하였다. 그 후 19세기와 20세기초에 걸쳐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앞으로 다가올 말일성도와 유태인의 화해를 예언하였고 팔레스타인을 순례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몰몬들은 선교사업을 그곳에서 일으키려고 노력하였다. 1972년 해롤드 비 리(Harold B. Lee) 대관장은 교회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1979년 스펜서 다블류 킴볼 회장은 엘든 태너(N. Eldon Tanner)회장과 네 사람의 사도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그곳에 살고 있는 2천명의 후기성도와 함께 옛날 올슨 하이드 사도가 139년 전에 그 땅에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감람산 위에 올슨 하이드 기념 정원(Orson Hyde Memorial Garden)을 헌납하였다. 또한 브리검 영 대학교 종교연구센터의 유태.기독교 연구과 과장인 트루맨 매드슨(Truman G. Madsen)과 예루살렘에 세워진 브리감 영 대학교 예루살렘 연구센터의 소장인 데이비드 갈브레이스(David B. Galbraith)는 이스라엘의 유명 대학인 하이파 대학과 히브리 대학의 교환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시작하였다. 갈브레이스는 1972년에 교회의 예루살렘 지부를 조직하여 지부장으로 취임하였으며 그 후 지부는 국제선교부 소속의 이스라엘 지방부로 발전하였다. 1972년 이래 1만2천명이 넘는 후기성도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근동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였다. 교회는 이슬람 세계에도 진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슬람은 기독교와는 원수간이며 유태교와도 나쁜 관계에 있다. 1983년 4월에 교회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첫번째 교구를 설치하였는데 1천6백명의 신자들이 수도인 리야드, 다란, 그리고 알코바 등에 흩어져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 종파 중에서 이슬람 국가에 예배당 설치가 허용된 것은 현재로는 몰몬들밖에 없다. 사우디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발전하고 있다. 신자 중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찾아 사우디로 온 미국 사람들이나 이들의 조용한 노력으로 사우디 사람 가운데도 신자가 있다. 사우디에서는 기독교회의 활동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후기성도들은 이와 같은 종교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