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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회개·신권·구원

고통을 느끼는 것은 회개의 일부입니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4.

온 인류의 부활과 더불어 구주의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의 핵심이며 가장 강력한 개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의 삶에서 속죄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한 이해에

있어 근간이 되는 것은 공의와 자비와 속죄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이 신성한

과정에서 고통과 회개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오는 공의의 무서운 요구,

즉 경전에 묘사된 비참함과 끝없는 고통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중단되고 제거될 수 있습니다. 한편에 위치한

공의와 속죄의 관계와 다른 한편에 위치한 자비와 속죄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어 핵심 개념입니다.

몰몬경은 구주께서 죄 가운데 구속하시지는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악인은 사망의 줄이 풀리는 것 이외에는, 마치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같이 그대로 있게 되리니”(앨마서

11:41) 구주께서는 회개의 조건 하에, 사람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속하십니다.(힐라맨서 5:11 참조)

회개의 조건 중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며,

여기에는 그분의 속죄 희생에 대한 믿음과 의존이 포함됩니다. 앰율레크가 가르친

것처럼“회개에 이르는 신앙을 행사하지 아니하는 자는 공의의 요구의 온 율법에

드러나게 되나니, 그러므로 회개에 이르는 신앙을 가진 자에게만 크고도 영원한

구속의 계획이 이루어지느니라.”(앨마서 34:16) 이는 분명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자신의 죄에 대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회개하는

사람은 모든 벌을 구주께서 대신 받으셨으므로 전혀 고통을 받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구주의 다른 가르침들과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앨마서 34장 16절은 회개하는 자는 구주께서 그 죄를 위해

고통을 당하신 만큼 고통을 받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하는 죄인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들의 회개와 구주의 속죄로 인해, 구주께서 감내하신 것과 같은 격렬하고 극심한 고통을 겪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개와 용서에 대해 참으로 폭넓은 가르침을 주셨던 스펜서 더블류

킴볼(1895~1985) 회장님은 개인적인 고통이 회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해 강한 고통을 겪기 전까지는 회개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는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그분의 대속을 위한 희생이“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닌 모든 자를 위하여 율법의 목적에 부응하시나니, 그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율법의 목적이 부응될 수

없느니라”(니파이후서 2:7)고 말씀하시며 이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죄인은 죄에 대한 개인적인 고통과 괴로움의 과정을 겪습니다. 그 사람은 오직 진정으로 회개한 자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앨마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앨마 이세는 확실하게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모사이야서 27장과 앨마서 36장에 나오는 그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킴볼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 자주 사람들은 단지 안타까운 사건에 대해 슬픔과 후회를 표현한 것만으로 자신들이 회개를 했고 용서 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고통을 수반하며 회개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린도후서 7:10)은 몰몬이“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죄 중에서 행복을 취함을 항상 용납하지 아니하려 하심으로 인한 정죄 받은 자들의 슬퍼함”(몰몬서 2:13)이라고 묘사한 것과 같이, 죄가 드러났기 때문에 겪는 안이하고 비교적 고통 없는 슬픔 또는 잘못 때문에 겪는 슬픔과는 크게 다릅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20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