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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외 성신의 개별성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3.


5)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외 성신의 개별성  top

 

  (1) 갯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 시는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22장 39절-42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성구는 가롯 유다를 앞세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러 감람산에 도착하기 직전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성구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고 내 원대로 하지 마옵소서 라는 구절이 나온다. 
 분명히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뜻은 별개임을 설명한다. 즉 아버지의 의지와 아들의 의지가 별개이고 아들이 아버지의 의지에 순종함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가 같은 일체라면 어떻게 의지와 뜻이 다를 수 있을까?

 

   (2)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마태복음 27장 45절-46절)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성구는 낮 열두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어두움이 온땅에 덮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시간이다. 오후 세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경우 예수께서 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3)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한복음 20잘 16절-17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천사들이 그 여인에게 어찌하여 울고 있느나고 물었다. 마리아는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 누가 주님을 가져갔다고 대답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 예수가 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참 있다기 그 분이 예수인 것을 알고서 예수를 부르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지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아버지께 아직 가지 않았으니 만지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구가 확실한 것이라면 두 분은 존재가 다른 분이다.

 

   (4) 내 아버지는 곧 너희의 아버지이다 (요한복음 20장 17졀-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 성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아직 아버지께 가지 않았으니 자기 몸을 만지지 말라고 말하고 자기 아버지가 곧 우리의 아버지요, 자기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 영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형제가 되고 첫째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자요 우리의 맏형이 된다.

 

  (5) 심판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위 임 받음 (요한복음 5장 22절-24절)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이 성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상의 삶을 마친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질 심판을 집행할 권능과 권위을 위임한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개성과 개체가 다를 뿐 아니라 직분과 직능에서도 분리되어 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 자신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심 (마태복음 24장 36절, 마가복음 13절 3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위의 구절은 예수의 재림을 설명하는 성구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모든 족속이 가슴을 치겠으며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그가 천사들을 보낼 것이고 천사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을 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시는 날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 여기서 아버지의 권능이 아들의 권능보다 상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다른 장소에 동시에 나타남 (마태복음3장 13절-17절)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 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위의 성구는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단강에 계셨고, 성령은 비둘기 같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고, 하늘에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구는 우리에게 세분의 인격과 걔성과 존재가 분명히 구별 됨을 설명하고 있다.

 

  (8) 예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임 (요한복음 14장 6절-1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부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구절들은 심위일체설을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구이다. 이 문장은 두가지의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고 하니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라는 주장
 두 번째 해석은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은 육체나 신분이나 개체가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아버지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치려는 진리의 내용과 아들이 가르치려는 내용이 같다는 주장 

 이 중에서 두 번째 해석이 바른 해석이다. 6절 부텨 12절 까지를 다시 읽어보면 분명히 두 번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즉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는 구절을 보자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아버지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하나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 다음 기도 내용을 끝낼 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라고 마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하나님 아버지께 이어주는 중보자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인자이다. 아들을 맞아 들였다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함당한 권능을 위임하여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집행하라고 했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의사를 합법적으로 전달하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고 아들은 그것을 집행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서는 필요한 서류, 예를 들어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이나 기타 신빙성이 있는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증명만 있으면 바로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필요한 증명을 갖고 오셨다. 그는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교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꿰뚫어 보는 능력, 자신이 부활한 기적 등 수만가지의 증명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바로 이사실을 믿으라는 얘기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우리인간을 구원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나 깊은 통찰력을 가진다면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구이다. 12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같은 분이라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께로 간다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
 요한복음 17장 21절-23절은 다시 이 논증이 옳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는 성구는 앞서 인용한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설명해 준다. 
 형제끼리 서로 하나가 되라는 말은 서로 마음을 합한다는 뜻이다. 의사와 의지를 뭉치라는 말이지 육체적으로 한 몸으로 결합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께서 위 성구에서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은 아버지와 자기의 연합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9) 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 보내심을 받은 분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7장 16절-19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의 육체는 세상에 속해 있고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냈으나 그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제자들도 그렇게 되길 원하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을 통해 진리를 깨달은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거룩하게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분명히 세상에 보낸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고 보내심을 받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신분과 개체가 다른 분임을 알 수 있으며 아버지께 자신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간구를 했다. 같은 게체라면 어떻게 보낸 분이 있을 수 있으며 보내진 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분명히 다른 개체를 갖고 있으며 상하관계에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낮을 수 없으며 아들이 아버지보다 높은 위치를 가질 수 없다.

 

  (10)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 (요한복음15장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가 다른 인격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므로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의 영의 자녀이며 독생자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다. 그러므로 신분과 지위와 인격체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삼위일체설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혹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일체임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태양의 비유, 물의 원소의 비유 등이다. 그러나 비유는 사실을 분명하하게 하기 위해 만든 설득 방법이므로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을 인간의 두뇌로 비유를 만들어 성경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삼위일체의 논리적 모순을 또 한가지 살펴보자. 삼위일체설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는 육체가 없는 영이라고 한다. 성경에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육체로 세상에 오셨고 현재는 부활하셔서 육체를 갖고 계시고 언젠가는 그 육체를 가지고 재림하실 것이다.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개체라면 왜 하나님 아버지는 영만 갖고 계시면 육이 없는가? 하나님 아버지가 육체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육체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영으로 계신다고 하였으나 아들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지금도 육체를 갖고 계신다. 
 아버지는 영만 존재하고 아들은 육체와 영을 다 갖고 존재한다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본체와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삼위일체설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과연 삼위일체설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성립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자. 삼위일체의 기초 정의는 니케아 신조(Nicence Creed)에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피조된 것이 아니요, 아버지와 동질이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동질이라 함은 아들이 아버지와 본체 ,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뜻이다. 개신교회의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교회 역사(The Church in History, B.K. Kuiper 지음)에서 삼위 일체설의 역사적인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 (B.K. Kuiper의 같은 서적 41쪽 46쪽 참조).l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후 약 3백년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당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두 장로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아리우스(Arius)는 이 문제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질이라고 주장 했으니 즉 성부와 성자는 본체, 본질, 존재에 있어 꼭 같다고 주장했고, 아리우스는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첫째되며 아버지와 동질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그리스도도 하나님, 즉 아들 하나님 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 교회 지도자들은 양분되어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에 따르거나 아리우스의 이론에 따랐다. 

 한때는 아리우스의 이론이 더 맹위를 떨쳤으나 논쟁이 계속되어 그 해결을 위하여 당시 기독교인이 아닌 콘스탄틴 황제가 AD 325년에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종교회의를 니케아(Nicaea) 종교회의라고 한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아리우스의 의견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는 한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라면 이교도와 같이 다신을 믿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한분의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본체와 본질과 존재에서 같은 분이라고 규정해야 했다. 
 그러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에 반발이 심하였고 많은 감독들이 니케아 종교회의 결과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또한 니케아 신조는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토의하지 않았고 포함하지 않았다. 
 그래서 AD 381년에 제 2차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되었고 다시금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을 정리하여 재확인하였고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도 성부, 성자와 동일시하여 삼위일체교리(The Doctrine of the Trinity)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계속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AD451년 니케아 근처 갈게돈(Chalcedon)에서 다시금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삼위일체설을 확정했다.

 결국은 AD 321년부텨 AD 451년에 걸쳐 1백30년 동안이나 논쟁이 계속되어 결론이 맺어진 종교회의의 산물이다. 1백30년 동안의 논쟁의 산물이기에 더욱 오류를 가질 수 있으며 문제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리라면 계시로 한번에 결정되었을 것이다.
 
삼위일체설을 주장하게 된 근본 원인은 아버지와 아들이 개체가 다른 두분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이교도가 믿는 다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체와 존재는 같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분명히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는 아리우스의 주장과는 별개로 계시로써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말일성도는 아리우스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한 것과 관계없리 삼위일체설 즉,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니케아 신조를 부인한다. 다시 한번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니케아 신조를 기록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개체가 혼동되어 있지도 않고 본질이 나뉘어져 있지도 않은 삼위의 한 하나님 즉, 일체로서의 삼위를 경배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의 개체요, 아들도 하나의 개체요, 성신도 하나의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아들 성신의 신회는 하나이다. 그 영광도 같고 능력도 영원히 공존한다.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아들도 그러하고 성신도 그러하다. 아버지도 창조되지 않으신 분이며, 아들도 창조되지 않았고, 성신도 창조되지 않았다.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분이며, 아들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도 영원하며 아들도 영원하며 성신도 영원하다. 그러나 영원한 세분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이며,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세분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이고 창조되지 않은 세분이 아니라 창조 되지 않은 한 분이다. 
 아버지가 전능하신 것같이 아들도 전능하며 성신도 전능하나 전능자가 셋이 아니라 하나이다.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요, 성신도 하나님이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다.

 세상에 나와 있는 기록 중에 이 글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기록이나 예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세 개체를 설명하다 바로 하나의 개체를 설명하고 세 분이라고 했다가 바로 한 분이라고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과 계시를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어떻게 혼란되고 혼돈스럽고 모순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상상하기가 어렵다. 
 현재 영국 구교는 하나님에 대한 정통 교리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그는 육체나 지체나 감정이 없는 영원한 분이며, 그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은 무한하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영국 국교처럼 하나님께서는 육체와 감정이 없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다면 전술한 바와 같이 스데반이 예수님과 함께 본 하나님(사도행전 7장 55-56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구약성서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대면하였다. 주님은 모세를 대면하여 말씀하셨고(민수기 12장 8절), 아담과 이브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창세기 3장 8절), 가인조차 음성을 들었고(창세기 4장 9절)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이 음성을 들었으며(민수기 12장 4절),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신명기 5장 4절,23절-24절)
 감정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것도 성경과 일치되지 않는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기록했으며 출애굽기 20장 6절에 주님은 은혜를 베푸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 4장 31절, 신명기 7장9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9장 17절, 시편 116편 5절, 야고보서 5장 11절에는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경전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실체성을 부인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실체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신회 구성원중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주로 설명했으며 삼위일체의 논리성 문제를 토론했다. 지금부터 신회의 마지막 구성원인 성신에 대해 설명하겠다.